욕설 전파·웃음 송출… 고개 숙인 보도국
세월호 참사 취재진들의 모습.
사건 발생 이후 지상파를 포함해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 등은 약 일주일 간 세월호 특집 방송 체제를 가동했다. 어느 채널을 틀어도 세월호 이야기다. 명분은 있다. 사태의 심각성과 국민 정서를 고려하며 국민의 ‘알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드라마 예능 등 타 프로그램 편성을 배제하고 세월호 소식 전달에 매진하겠다는 다짐이었다.
하지만 덩치는 키운 반면 내실은 기하지 못했다. 부족한 정보로 24시간을 메우려니 같은 내용이 반복돼 ‘앵무새 보도’라는 지적도 받았다. 취재를 통한 차별화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현장 분위기를 전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다 보니 피해자 가족들의 얼굴과 실명이 고스란히 노출되며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다. 또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발표를 토대로 사건 추이를 전달하다 보니 탑승자 수가 수차례 변하는 등 잘못된 정보를 미디어가 고스란히 대중에게 전달하며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질타도 나오고 있다. ‘특보’ ‘속보’ 등의 수식어를 붙였지만 변죽만 울리기 일쑤였다.
수박 겉핥기식 보도가 이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지나치게 많은 인력이 투입돼 전문적이고 심층적인 취재가 이뤄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세월호 사태가 발생하자 타 부서에 근무하던 기자들도 대부분 이 사건 취재에 투입됐다. 현재 진도 팽목항에는 취재진의 수가 피해자 가족의 수를 넘을 정도다. 철저한 준비 없이 무작정 취재를 시작하니 기사의 깊이는 얕을 수밖에 없다.
욕설 방송사고를 낸 KBS 2TV ‘굿모닝 대한민국’과 세월호 특보 중 대기 중인 기자의 웃는 모습이 그대로 나간 SBS 방송 화면 캡처.
MBN <뉴스특보>는 자신을 민간잠수부라고 밝히고 “배 안에 생존자의 신호를 들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그러나 해경이 민간 잠수부 투입을 막고 있다. 지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정부 관계자는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가라고 말했다”고 말한 홍 아무개 씨의 거짓 인터뷰를 여과 없이 내보냈다. 결국 홍 씨는 잘못을 시인했고 검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한 JTBC <뉴스특보>는 구조된 학생에게 앵커가 “한 명의 학생이 사망했다는 걸 혹시 알고 있습니까?”라고 부적절한 진문을 던져 구설에 올랐다.
지상파 방송사들의 실수도 이어졌다. MBC <이브닝 뉴스>는 사고 당일 실종자 수색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인명피해가 났을 경우 1인당 최고 3억 5000만 원 배상’, ‘여행자보험에서 상해사망 1억 원’ 등의 내용이 남긴 리포트를 내보내 빈축을 샀다. KBS 1TV <뉴스특보>는 “선내에 엉켜있는 시신을 다수 확인했다”는 자극적인 내용을 내보냈고 KBS 2TV <굿모닝 대한민국>은 사고현장을 연결하던 중 한 남성의 욕설을 약 30초간 방송했다. SBS는 팽목항 현장을 연결해 소식을 전달하던 도중 기자와 출연자가 웃는 모습을 노출해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다.
세월호 사건 발생 이후 일주일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에 오른 지상파 보도는 총 9건. 지난 21일 의견진술이 결정된 MBC <이브닝 뉴스> 등 4개 프로그램을 포함해 세월호 사고 보도와 관련해 23일까지 의견진술이 결정된 사안은 지상파 3건(KBS 2건, MBC 1건), 종합편성채널 5건(MBN 2건, JTBC 2건, TV조선 1건), 보도전문채널 1건(뉴스Y 1건) 등이다.
한 종합편성채널 관계자는 “현재 보도 행태에 문제가 있다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다”면서도 “하지만 긴박한 사건의 경우 정확성 못지않게 신속한 보도도 중요하다. 두 가지를 모두 챙기기 위해 좀 더 신중한 자세한 필요한데 매체간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시청자들의 불신만 쌓는 결과를 초래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JTBC와 MBN이 방송 실수를 공식 사과하는 모습.
이번 사건 발생 이후 국가적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재난안전대책본부가 명확한 행동지침을 갖추지 못했다는 질타와 더불어 국가기간방송이자 재난주관방송사인 KBS를 비롯해 각 언론사들의 재난보도 매뉴얼의 부재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졌다.
이런 지적이 이어지자 한국기자협회는 20일 세월호 참사 보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세월호 참사 보도는 신속함에 앞서 무엇보다 정확해야 한다 △피해 관련 통계나 명단 등은 반드시 재난구조기관의 공식 발표에 의거해 보도한다 △진도실내체육관, 팽목항, 고려대 안산병원 등 주요 현장에서 취재와 인터뷰는 신중해야 하며,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해 보도한다 등 총 10개항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사후약방문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세월호 사태 발생 일주일이 지나자 24시간 특보 체제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이 속속 나오고 있다. 주요 뉴스를 제외하면 지상파 3사의 특보 시청률은 대부분 2~5%정도다. 반면 21일 편성이 일부 정상화되자 MBC <기황후>를 비롯해 대부분 드라마의 시청률은 정상궤도를 찾았다. 세월호 사건과는 별개로 정상 편성을 원하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이미 많은 시청자들이 세월호 관련 중복 보도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도덕적인 이유’로 누구 하나 정상 편성을 주장하기 힘든 상황이다. 일주일간 지상파를 비롯해 모든 채널은 세월호 관련 보도만 들려주며 전국민적 우울증을 가속화시켰다는 지적도 있다”며 “재난 방송에 대해 각 방송사들이 보다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고 말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