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한덕수 등 주요 국무위원 대다수 수사 대상…국회 역할 목소리 높지만 탄핵 표결 ‘블랙홀’
#윤 이어 핵심 인사들 줄줄이…
12월 3일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령 후폭풍은 거셌다. 계엄 직후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 방한은 취소됐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는 ‘윤석열 사람들과 상종 못 하겠다’는 취지의 보고를 본국에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계엄령으로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기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이 ‘제2의 계엄은 없다’고 밝혔지만, 국제사회 불신은 여전하다. 한국 정치권에는 미국 워싱턴 정가와 월가의 한국 정세에 대한 문의가 쏟아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월가 ‘큰손’들은 한국 일정을 취소했고, 다른 투자처를 모색하고 있다. 한국 국내 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치적 불안이 경제 위기로까지 번지고 있는 셈이다.
김지수 한반도미래경제포럼 대표는 “지금 심각한 점은 신용 평가하는 사람들이 대놓고 정치적 리스크가 장기화했을 때는 한국에 대한 신용도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김 대표는 “윤 대통령의 2선 후퇴는 미국에서도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 나토 등 (서방 세계도) 모두 (2선 후퇴를) 거부할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탄핵당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 대한 우리의 신용도가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문제를 수습해야 할 정부는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핵심 고위직들이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윤 대통령에 대해 내란·직권남용 등 혐의로 법무부에 출국금지를 신청했다. 법무부는 이를 승인했다. 검찰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에 윤 대통령을 ‘내란 수괴’로 적시했다. 윤 대통령은 ‘첫 현직 대통령 출국금지’와 ‘내란 수괴 지목’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부처 장관들도 수사대상이다. 계엄령 선포 직전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이 국무회의에 참석한 인원은 모두 11명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조태열 외교부 장관, 김영호 통일부 장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관련 법령에 따라 조태용 국정원장도 배석했다. 이중 이상민 전 장관은 사임했고, 김용현 전 장관은 구속됐다. 일부 부처 수장 자리가 공석이 됐다.
계엄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군과 경찰 수뇌부도 수사 대상이다. 군에서는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여인형 방첩사령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문상호 정보사령관 등이 계엄군 동원에 앞장선 인물로 지목됐다. 경찰에서는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목현태 국회경비대장 등이 계엄령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장관과 경찰 수뇌부를 ‘내란 중간지휘자’로, 군 수뇌부를 ‘내란·반란 중간지휘자’로 분류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연일 이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있다. 각 부처에 이들을 직무 정지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국방부는 ‘중간지휘자’로 분류된 이들 대부분을 직무 정지했다. 경찰도 계엄 당일 국회 봉쇄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목현태 경비대장을 직무 배제했다고 밝혔다. 국방과 치안에 심각한 지휘 공백이 생긴 셈이다.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한덕수 총리를 비롯한 전·현직 국무위원에게 내란 피의자로 소환을 통보했다.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청장은 긴급체포했다. 12월 11일에는 대통령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과 공수처도 경쟁적으로 김용현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전 장관은 12월 10일 구속됐다. 군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국회 조타수 역할 나섰지만…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2선 후퇴와 ‘책임총리제’ 등을 거론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한동훈 대표는 대통령의 조기 퇴진, 직무배제, 국무총리와 여당의 국정 운영 등을 수습책으로 내놨다. 그러나 곧바로 위헌적인 약속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헌법은 하야나 탄핵당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을 직무에서 배제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대통령 권력을 여당 대표에게 위임할 수 있다는 조항은 없다. 대통령 유고로 직무수행이 불가능할 때는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권력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행정부 통할권, 공무원 임명권, 법령심의권, 외교권 등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다. 윤 대통령은 12월 6일 장관급인 진실화해위원장에 박선영 전 의원 임명안을 재가했고, 8일에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 사의를 수용했다. 인사권을 행사한 셈이다. 국방부는 현재 국군통수권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총리 약속은 ‘공수표’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필립 골드버그 대사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만나 ‘한-한 체제’가 한국 헌법에 부합하는지 물었다. 미국조차 정부·여당의 수습책에 불신을 보내고 있다는 평가다(관련기사 어디에도 근거 없다…한동훈-한덕수 ‘위헌통치’ 논란 일파만파).
국민의힘 내분도 문제다. 현재 국민의힘 주류인 친윤계에선 대표 비토 기류가 빠르게 커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친한계에서도 한 대표가 내놓은 수습 방안에 대한 견해차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친한계 장동혁 의원은 한 대표의 ‘내년 2월 혹은 3월 퇴진 로드맵’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여기에 추경호 전 원내대표까지 경찰 소환 통보를 받았다. 앞서 민주당은 경찰에 추 전 원내대표가 계엄해제요구안 표결을 방해했다며 경찰에 내란 등 혐의로 고발했다.
국민들은 전국 곳곳에서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항의 집회를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이 12월 7일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하면서 비판 여론이 더 거세졌다. 국민의힘에 ‘내란의힘’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내우외환에 빠진 여당이 이 국면을 수습할 여력이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은 정국 안정을 위해서는 ‘윤석열 탄핵’이 우선이라는 기류다. 윤 대통령이 군 통수권을 가진 만큼 여전히 ‘2차 계엄’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이유다.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일요신문에 “(계엄 가능성은) 50~60%로 낮아진 것 같다”면서도 “지금 윤석열이 자리에 있고, 군이라는 무력 체계가 살아있고, 경찰 기동대가 서울에 대폭 강화돼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국정수습에 앞장서면서 수권정당의 면모를 부각하려는 시도도 병행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계엄 선포 다음 날인 12월 4일 주식시장과 경제 상황을 우려하는 메시지를 냈다. 서울 용산역 철도 파업 현장을 찾아 정부 측과 노조 측을 중재하겠다고 약속했다.
각 국회 상임위에서는 현안질의를 통해 행정부와 수습책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일단 국회가 조타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 의원은 “현재 한국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정부는 결정을 못 한다. 그럴 때는 국회가 (각 부처에) 진행 상황을 알려주고,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해야 한다. 여야가 논의해서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해외에 보여주는 게) 안정성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이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탄핵 소추안 표결이 모든 이슈를 덮으면서다. 법사위, 국방위, 행안위 등에서는 계엄령 책임 소재를 따지는 데 주력하고 있다. 탄핵을 두고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힘겨루기에 집중하면서 시급한 민생 문제는 뒤로 밀려난 상황이다. 민주당 등 야권은 임시국회 회기를 1주일 단위로 쪼개 매주 탄핵소추안 표결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타협안이 나올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탄핵소추안이 계속 부결되면 계엄 수습 정국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