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대 대작들 줄줄이 ‘진퇴양난’
세월호 침몰 사고 여파로 7~8월 대목을 기다리던 해상 블록버스터들의 마케팅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 4대 투자배급사 중 세 곳인 CJ E&M과 롯데엔터테인먼트, NEW는 올 여름 각각 <명량-회오리바다>(감독 김한민)와 <해적-바다로 간 산적>(감독 이석훈), <해무>(감독 심성보) 등을 연이어 선보인다. 세 작품 모두 100억 원 이상 투입된 대작. 하지만 모두 물과 배를 소재로 삼은 터라 자연스럽게 세월호 침몰 사고를 연상시킬 수밖에 없다.
특히 <명량-회오리바다>은 1597년 9월 정유재란 당시 명장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13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무찌른 명량해전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문제는 명량해전의 배경인 울돌목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맹골수도와 인접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명량-회오리바다>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강한 물살을 이용해 승리를 이끈 울돌목의 지형적 특성을 거론할 수밖에 없다. 한 영화 관계자는 “뉴스로 세월호 사건을 접하며 참담한 심경을 금할 수 없었다. 영화를 먼저 걱정할 시기가 아니지만 조만간 개봉을 앞두고 홍보 활동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해무>는 여섯 명의 선원을 태운 어선 ‘전진호’가 망망대해에서 밀항자들을 실어 나르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주연 배우들은 전진호에 탄 선원을 연기한다. 탑승자의 안전을 뒤로하고 먼저 탈출한 세월호의 선박직 선원 전원이 구속됐다는 상황이 영화를 소개할 때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해무>에 출연한 배우의 소속사 관계자는 “영화 촬영을 앞두고 실제 뱃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등 실감하는 연기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영화를 직접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지만 선원과 배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가늠이 안 된다”고 우려했다.
<해적-바다로 간 산적>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해적과 산적의 이야기를 동시에 다룬다. 국새를 삼켜 버린 귀신 고래를 찾아나서는 줄거리는 세월호 사건과 직접 연관 지을 만한 요소가 많지 않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개봉되는 물 소재 영화인 <명량-회오리바다><해무> 등과 같은 범주로 묶여 소개되는 과정에서 세월호 사건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관측됐다.
개봉을 기다리는 <해적-바다로 간 산적>의 스틸 장면.
관련 영화의 제작사와 투자배급사에서는 내부적으로 ‘개봉 시기를 연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여파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대중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회의적인 반응도 있다.
하지만 개봉 시기를 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형 투자배급사들은 1년 동안의 라인업을 미리 준비해둔다. 특히 명절과 연휴, 크리스마스와 여름 성수기 등에는 전략적으로 대작을 배치한다. 7월 말과 8월 중순 개봉 예정된 <명량-회오리바다> <해무> <해적-바다로 간 산적> 등을 하반기로 개봉 시기를 미뤄도 마땅히 대체할 작품이 없다.
제때 개봉되지 못하면 ‘창고 영화’가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물 소재 영화가 7~8월에 대거 배급되는 건 무더운 여름 시장을 공략하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100억 원이 넘는 거액이 투입된 영화가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며 “개봉 시기를 잡는 것 역시 흥행을 위한 하나의 전략인데 한 작품의 개봉 시기를 틀면 다른 작품들에도 도미노같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한숨지었다.
“결국은 홍보와 마케팅 전략을 잘 짜는 게 답”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이후 각 영화의 제작사와 투자배급사에는 개봉 시기 변경을 묻는 취재진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실질적으로 개봉 시기를 늦추는 것이 어렵더라도 “예정대로 개봉”이라고 답하긴 어렵다. ‘개봉 강행’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봉 연기’라는 표현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도 있다. 아직 정확한 개봉 날짜를 잡지 않았는데 세월호 사고의 여파로 일부러 개봉 시기를 늦췄다는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7~8월 개봉을 목표로 제작해왔지만 여건에 따라 개봉 시기는 유동적이다. 지금은 승선자들의 무사귀환을 비는 것이 우선이다. 영화의 개봉 시기를 먼저 따질 때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출연 배우들의 소속사도 냉가슴을 앓긴 매한가지다. 출연작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은 출연 배우들에 대한 이미지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배우들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와 방송 출연 등 홍보도 책임져야 한다. 영화 출연 계약서에는 홍보 참여에 대한 약속도 담겨 있다. 따라서 출연 배우가 임의로 홍보 참여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
<해무>에 출연한 한 배우의 소속사 관계자는 “물과 배를 소재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언론 인터뷰에 나서면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된 질문이 나올 것이다. 어떤 대답을 내놔도 여론의 반응은 엇갈릴 수밖에 없다. 홍보의 일선에 선 배우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 무겁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