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9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법에 출두한 정대철 전 의원. 구치소에 있는 그를 찾는 방문객이 아직도 많다고 한다. | ||
이들의 다양한 이력과 개성만큼이나 구치소 내에서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아예 마음을 비운 채 건강관리에 힘쓰거나 독특한 취미 생활에 열중인 ‘거물’이 있는 반면, 아직도 자신이 구속된 것에 대해 ‘분’을 삭이지 못하는 인사들도 있다. 항소심에서도 유죄가 인정돼 실형이 확실시되는 거물 중에는 오랜 독방 생활로 지병이 악화돼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노력은커녕 재기 의지조차 상실한 인사도 있다. 검찰의 ‘시퍼런’ 사정 칼날에 베인 채 1평 남짓한 독방에 몸을 뉘인 주요 거물급 인사들의 근황을 살펴봤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캠프의 선대위원장으로서 대선자금 명목으로 대우건설 등으로부터 25억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지난 6월18일 징역 6년과 추징금 4억원을 선고 받은 정대철 전 의원(열린우리당). 정 전 의원은 미처 예상치 못한 중형이 선고되자 수일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점차 안정을 되찾는 중이라는 게 측근들의 얘기다. 그러나 굿모닝시티로부터 4억원을 받은 혐의가 재판부에서 유죄로 입증된 부분에 대해선 여전히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라고.
건강은 별다른 이상은 없지만 수감 이후 체중이 10kg 이상 빠져 가족 및 측근들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는 상황. 정작 본인은 “술을 마시지 않으니 자연히 살이 빠지는 게 아니냐”며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웃어 넘겼다고 한다. 그러나 혈압만큼은 꼬박꼬박 약을 챙기면서 내심 각별한 신경을 쓴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정 전 의원은 1심 판결 이후 <뜻으로 보는 한국역사> 등 신간이나 북한·통일 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이전 비서진들에게 각종 베스트셀러는 물론 주요 신문 뉴스만을 편집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 와중에도 자신을 보좌하던 측근들에게 편지를 보내 노고를 격려하거나 지인들의 경조사를 빠짐없이 챙기고 있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얘기다.
‘정계의 마당발’인 그에게 면회는 하루 일과 중 빼놓을 수 없는 부분. 최근 정부와 각 당의 진용이 개편되면서 면회객도 상당히 늘었다는 게 측근들의 귀띔이다.
▲ 김영일(왼쪽),최돈웅 | ||
지난 대선 당시 현대자동차, SK 등으로부터 32억6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상수 전 의원(열린우리당)은 단전호흡과 독서로 ‘외로움’을 잊고 있다. 판결에 대해서는 “당의 선거 책임자로서 불가피한 일이었다”며 오히려 체념한 듯한 모습이라는 게 측근들의 말이다.
서양화가이자 중랑문화센터 원장인 부인 안승씨는 “(남편이) 구속 직전 배운 단전호흡과 독서로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며 “특히 ‘무겁고 두꺼운’ 책만을 골라 하루 종일 그것을 읽는 데 몰두하기도 한다”고 이 전 의원의 근황을 전했다. 안씨는 “내색은 하지 않지만 큰 자물쇠가 세 개나 채워진 좁은 방에서 24시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답답해하는 듯하다”며 “특히 5월15일 결혼기념일에 곁에 있어 주지 못한 것을 계속 마음에 담아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태권도연맹과 국기원의 공금을 유용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김운용 전 민주당 의원은 구치소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전 의원의 부인 박동숙씨는 “최근 남편이 당뇨 증세가 악화돼 약을 두 배로 늘리고 신경안정제도 하루 세 알씩 복용한다”며 “혈압이 최고 200까지 올라가 한 번은 구치소 내에서 실신한 적도 있고, 게다가 심근경색 증세까지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의원은 최근 얼굴 부위에 피부병까지 생겼으나 구치소측이 비누를 바꿔준 덕에 많이 호전됐다고 한다.
과거의 동료인 민주당 의원들이 거의 면회를 오지 않아 주로 가족들만 접견하던 김 전 의원은 최근 연세대 후배인 김우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찾아와 오랜만에 ‘바깥소식’을 전해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차떼기’ 역풍을 맞은 한나라당 의원들도 저마다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선 당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으로부터 10억원을, 김성래 썬앤문 부회장으로부터 대선자금 명목으로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서청원 전 의원.
서 전 의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치소 관계자들로부터 수감된 거물 인사들 중 감방 생활에 가장 잘 적응한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최근 협심증 및 허리디스크 증세가 도져 부쩍 쇠약해진 모습이다. 지난 6월7일에는 협심증 증상을 진단받기 위해 한양대학병원에 입원했으며, 7월5일에는 허리디스크 수술까지 받았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모금을 주도한 혐의로 1심에서 모두 중형을 선고 받은 김영일 전 의원과 최돈웅 전 의원도 수개월째 독방에서 외로움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김 전 의원은 독방에서 독서로 하루를 보내고 있고, 최 전 의원도 아들이 보내주는 각종 역사 장편 소설 등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 전 의원측 김상돈 전 보좌관은 “7권으로 된 책 <적과 동지>를 다 읽고 최근에는 <태맥산맥> 같은 장편 대하소설 등을 읽으면서 별 탈 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다. 구속된 국회의원들 중 유일하게 의무실과 병원에 가지 않을 만큼 건강 상태도 양호하다”며 김 전 의원의 근황을 전했다. 최근 김원기 국회의장과 이회창 전 대표, 당내 4~5선 중진 의원들이 잇달아 면회를 와 격려해줘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