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장성 진급비리의혹’ 사건이 예측불허의 방향으로 자꾸 치닫고 있다. 사건이 불거진 지 한 달여 만에 이번에는 군 검찰이 도마에 올랐다. “수사를 방해받고 있다”며 사상초유의 ‘보직해임 요구’로 불만을 표출한 군 검찰관 3인에 대해 “공명심에 들뜬 돈키호테”라는 비난과 “군 개혁의 파수꾼”이라는 격려가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
이번 파문을 지켜보는 정치권과 군 주변의 시각은 혼란스럽다. 당초 권력의 힘을 배경으로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를 것으로 생각했던 군 검찰이 ‘엉뚱하게’ 그 칼날을 권력 쪽에 겨눈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여전히 여권의 개혁 소장파 세력들은 군 검찰의 목소리에 동조하고 있다. 진급비리 사건이 제2, 3의 파문으로 이어지자 정가에선 여권 내의 개혁파와 보수파의 대결 양상으로 보는 시각도 차츰 대두되고 있다.
군 출신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기자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자칫 이번 사건이 혼란스럽게 보일 순 있지만, 큰 맥락은 의외로 단순하다. 검찰과 같은 수사기관이 힘을 받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권력의 힘을 등에 업는 것과,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대검 중수부의 대선자금 수사가 그 한 예다.
군 검찰도 다르지 않다. 지난 5월 사상초유의 현역 대장 구속 사태나 11월의 육본 압수수색은 권력의 힘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여기서 더 가속페달을 밟으려면 여론의 지지가 필요하다. 수사기관이 여론을 등에 업으려면 눈길을 끌기 위해서라도 일정부분 다소 무리한 구속 수사 강행이 불가피하고, 민감한 수사 상황을 언론에 흘릴 수밖에 없다.
군 검찰은 수사가 권력으로부터 제지를 당한다고 여겨지자 여론에 직접 힘을 구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름대로 일종의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한 가지가 있다. 군 검찰과 일반 검찰은 분명히 다르다는 점이다. 군의 특수성을 감안할 필요가 없다면 그냥 검찰청에서 수사하면 될 것을 굳이 군 검찰단이라는 제도와 기관을 따로 만들어 운용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그의 말에 따르면 군 검찰이 수사 초기에는 권력의 힘을 받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견제를 받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전직 군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당초 11월말 괴문서가 발견되고 곧바로 육본에 대한 압수수색과 육본 인사참모부 영관급 장교들의 잇따른 소환 조사 때만 해도 분명 권력의 힘은 군 검찰 쪽에 쏠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1월25일 남재준 총장의 사의 반려 파문이후 급격하게 기류가 바뀌었다. 정치권의 논리가 개입됐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현재의 제도에서는 군 검찰이 지휘권자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군 검찰로서는 당연히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군 검찰의 ‘불만’에 대해서도 해석이 다양하게 제시된다. 가장 눈에 띄는 얘기는 “정치권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군 검찰을 들었다 놨다 했던 것이 아니냐”는 것. 야당 주변에서는 여전히 “군 검찰의 뒤에는 여권의 386 세대 정치인들이 있다”며 둘 사이의 교감설이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 군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여권의 소장파 의원들은 평소 군 검찰의 독립권을 주장했다. 군 검찰단과 이해가 맞아떨어진다는 점이 있다. 또한 이번 사퇴 파동의 주인공들 또한 모두 일반대학 출신의 80년대 학번이라는 점도 부각되고 있다.
즉 괴문서가 발견될 당시만 해도 여권의 개혁 세력 목소리에 상당한 힘이 실려 있었다는 것. 따라서 강도 높은 수사의 필요성이 권력 핵심부에서 강력하게 제기됐을 것이란 주장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하지만 11월22일 육본 압수수색 강행에도 불구하고 이후 별다른 단서가 나오지 않은 데다, 군내 신망이 두터운 남재준 참모총장의 사의 표명으로 육본의 분위기가 격앙되자 여권 내 보수 세력의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힘을 더해가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때마침 정국은 여야 대립으로 얼어붙었고, 강경으로 치닫는 양당 주도 세력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APEC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노 대통령의 발언도 사뭇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기업에 대한 찬사와 언론관에 대한 변화의 시각이 그것. 특히 이라크 자이툰 부대 깜짝 방문이 이어지면서 일부에서는 “부시 재선 이후 우향우로 선회하는 것이냐”는 얘기마저 들릴 정도였다.
군의 한 관계자는 조심스럽게 “사실 처음 육본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어지고 했을 때는 국방부와 육본의 갈등으로 인해 이미 위에서부터 어느 정도 정해진 수순에 의한 수사인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남 총장에 대한 빠른 재신임 천명과 윤광웅 장관이 사태 수습을 부쩍 강조하는 것을 보면서 군 검찰이 너무 공명심에 들떠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군 검찰의 수사의지에 대한 순수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군의 한 관계자는 “군 검찰은 인사 비리에 대한 확신에 빠져 수사를 한 방향으로만 몰고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괴문서의 최초 작성자다. 이들에 대한 수사는 왜 하지 않는가”라고 의문을 표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으로 이해하는 측면도 있다. 군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군 검찰 출신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인사비리를 다뤄보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그만큼 군 내부에서 들려오는 인사비리는 많다. 하지만 워낙 예민한 부분이고 또 접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알면서도 못 건드리는 화약고였다. 이번에 후배들은 언젠가는 해야 할 숙제를 명예를 걸고 한번 건드려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나선 경찰, 경호처에 막혀 진입 실패
온라인 기사 ( 2024.12.12 0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