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면피 마누라, ‘쇠고랑’ 차고도 거짓말
전부인의 청부를 받아 남편 채홍덕 감독을 납치·살해한 20대 3명이 지난 1월 4일 현장검증을 했다. 2차 범행장소인 서울 남현동의 한 아파트에서 채 감독을 범행차량에 태우는 과정을 재연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2014년 1월 4일, 용인 휴게소에서 한 남성이 “사람 살려”라는 말과 함께 승용차 뒷좌석에서 뛰쳐나왔다. 곧이어 차에 타고 있던 3명의 괴한이 이 남성을 차안에 밀어 넣었다. 이 과정에서 주범 이 아무개 씨(27)는 준비해둔 흉기로 남성의 허벅지를 수차례 찔렀다.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남성을 차에 가둔 괴한들은 황급히 용인휴게소를 빠져나갔다. 이를 목격한 한 시민이 자신의 차로 괴한들의 차를 따라붙으며 경찰에 신고했다.
곧이어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해 범인들의 차를 향해 “정지하라”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 씨 일당은 이를 무시하고 시속 150㎞가 넘는 속도로 고속도로 차선을 넘나들며 필사적으로 도주했다. 이에 경기, 강원, 충북지방경찰청까지 동원된 대규모 고속도로 추격전이 벌어졌다.
경찰은 공포탄을 쏜 끝에 고속도로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이 씨 일당을 검거했다. 그러나 납치된 남성은 동맥 절단에 의한 과다 출혈로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납치된 남성은 천재 공연예술가로 촉망받던 채홍덕 감독(당시 40세)이었다.
채 감독과 전부인 이 씨의 결혼식 모습. <궁금한 이야기 Y> 방송 화면 캡처.
이 씨는 경찰조사에서 “위자료로 1억 원을 받을 게 있었다”며 ‘남편이 말이 통하지 않아 심부름센터를 이용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유가족 중 한 명이 채 감독의 방에서 2012년 11월 19일 양쪽이 합의해 공증 받은 ‘사실혼 부당 파기’에 따른 ‘위자료 지급 합의서’ 문서를 발견한 것. 문서에는 받을 위자료가 있었다는 이 씨의 주장과 달리 오히려 이 씨가 채 감독에게 매달 70만 원씩 총 70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모든 귀책사유가 이 씨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채 감독의 둘째누나는 “한번은 추운 겨울날 압구정에 있는 자기 집에서 먼 우리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기에 추운데 차 타고 오지 그랬냐고 다그치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자기 혼자 끙끙 앓고 있었던 것 같다”며 “나중에 동생이 이 씨에게 ‘마지막 피해자는 나이길 바란다’고까지 했다. 끝까지 배려해준 내 동생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토로했다.
현재 ‘강도치사’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이 씨는 여전히 범행동기의 원인이 사망한 채 감독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씨는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 처음에는 “1억 원을 위자료를 받을 것이 있었다”고 진술했다가 거짓으로 밝혀지자 “1억 원 상당의 혼수를 돌려받으려 했다”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채 감독의 외삼촌은 “혼수 비용으로 500만 원을 가져와 채 감독의 어머니가 100만 원을 보태 예단비로 줬다. 혼수는 숟가락 하나도 해 오지 않았다. 결혼식 비용 전액을 신랑 측에서 부담했다”고 말했다.
채홍덕 감독
전 부인 이 씨의 변론 공판은 오는 7월 8일 한 차례만을 남겨두고 있다. 남은 변론 공판에서는 이 씨의 석연치 않은 범행동기가 무엇인지, 계획적 살인 의도가 있었는지를 밝혀내는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채 감독의 외삼촌은 “이 씨는 처음부터 돈을 목적으로 한 사기결혼을 했다. 결혼을 통해 금전적 후원을 받을 것을 기대했지만 사실혼 관계가 파탄에 이르고 7000만 원의 위자료까지 부담하게 되자 이 같은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계획적 살인임을 주장했다. 채 감독의 가족들과 지인들은 진정서와 모아둔 증거자료들을 재판부에 제출하고 재판부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 씨에 대한 선고 공판은 오는 7월 22일 열릴 예정이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방청객 원성 부른 4차 공판 스케치 “안 찔렀는데 박혀있더라” 헉! 지난 6월 24일 오후 2시 수원지방법원에서 고 채홍덕 감독 사건에 대한 4차 공판이 열렸다.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심부름센터 직원 이 아무개 씨(26), 정 아무개 씨(26), 유 아무개 씨(26)와 ‘강도치사’ 혐의로 기소된 피해자의 전 부인 이 씨가 수의를 입고 재판장에 들어섰다. 이날 재판에는 처음으로 피해자 측 법정진술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재판은 살인의 계획성과 고의성 여부를 추궁하는 데 집중됐다. 범행 전부터 사우나에 공범들이 모여 범행을 모의했던 점, 미리 흉기를 준비했던 점, 목적지인 안동폐가에서 시체를 태우자는 등의 구체적인 시체 처리방법을 논의했던 점 등 살인의 계획성과 고의성이 지적됐다. 이에 살인 사건의 주범인 심부름센터 직원 이 씨는 “계획적인 살인이 아니었다”며 진술과정에서 검사의 회유와 협박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나서 법정공방이 가열됐다. 이 과정에서 이 씨는 ‘칼로 찌른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이 칼이 채 감독의 허벅지에 박혀있었던 것’이라는 취지로 자신의 살인혐의를 부인해 방청객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이어 채 감독의 외삼촌과 둘째누나의 법정진술이 이어졌다. 채 감독의 둘째누나는 법정진술에서 “고인은 살아가면서 제일 귀중하게 생각하며 실천했던 것이 돈도 명예도 아닌 인간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전부인 이 씨)은 내 동생이 평생을 쌓고 지켜온 인간관계까지 욕보이며 모욕하고 있다”며 “동생을 살해하기 위해 3개월을 미행하고, 납치시나리오를 제공하고, 카페를 물색하고, 범행자금까지 대주며 치밀하게 계획하고 완전범죄를 하려 했던 당신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피해자 측의 법정진술에도 별다른 동요가 없던 피의자들은 증인으로 부모들이 나오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피의자 부모들도 연신 눈물을 흘리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전부인 이 씨 측 증인은 아무도 나오지 못했다. 변호인은 “이 씨의 신상이 인터넷에 공개돼 친인척들이 증인을 서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별건의 납치사건으로 추가 기소된 심부름센터 직원 3명을 제외한 전부인 이 씨의 마지막 선고공판은 오는 7월 22일 열릴 예정이다. [배] |
채 감독이 녹취한 전부인 이 씨의 실체 내연남만 10명…이럴수가? 이 씨의 거짓말과 석연치 않은 범행동기에 의문을 품고 있던 채 감독의 가족과 지인들은 채 감독의 컴퓨터에서 믿기 어려운 자료들을 발견했다. 40여개의 녹취록이 그것이었다. 채 감독은 이 씨의 내연남 존재를 알게 된 날부터 이 씨와 이 씨 주변인들과의 대화를 녹취해 보관하고 있었다. 채 감독이 남겨놓은 증거를 통해 진실을 추적하던 가족들과 지인들은 그동안 채 감독이 덮어두려 했던 이 씨의 민낯을 마주했다. 한국에 귀국한 이 씨는 유복한 집안의 촉망받는 예술가였던 채 감독에게 접근하기 위해 또 다시 가면을 쓴다. 이 씨는 미국 보스턴에서 유학한 채 감독과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자신도 미국 보스턴대학 박사 출신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이 씨는 줄곧 학력을 속여 왔는데 이 때문에 피아노 레슨을 맡긴 학부모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하고 유명한 피아노 관련 카페에서 강제탈퇴를 당해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결혼 전 이 씨는 자신의 화려한 집안배경과 재력을 과시했다. 이 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외교관이며 어머니는 아나운서 출신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10억 원대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이 또한 모두 거짓이었다. 채 감독은 결혼 전 이 씨의 아버지와 50여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이 씨와의 결혼을 결심했지만 이는 이 씨가 쓴 ‘자작 메일’이었다. 미국에 거주한다던 이 씨의 외교관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해 대전에 머무르고 있었고, 간암에 걸려 투병 중이라는 이 씨의 어머니는 미국에서 자신의 두 번째 아이를 기르고 있었다. 이 씨가 채 감독을 속인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채 감독은 결혼식 전 종종 이 씨의 종아리에 멍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유를 물었지만 이 씨는 “잘못을 해 아버지에게 혼이 났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하지만 이는 외도남성과 가학적인 성행위를 하다 생긴 상처자국이었다는 사실이 내연남의 고백을 통해 밝혀졌다. “결혼하면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다”며 채 감독의 효심을 자극했던 이 씨는 결혼 후 돌변했다. 결혼 4개월째부터 가출을 시작한 이 씨는 11살 연하의 내연남 장 아무개 씨와 동거를 시작했다. 내연남의 아이를 임신하고 신혼집까지 예약했던 이 씨는 아이를 지우고 채 씨의 어머니를 찾아가 “남편 때문에 힘들어 아이를 유산했다”며 위로금을 요구하며 본색을 드러냈다. 이 씨는 “채 씨의 부동산을 정리해 돈을 마련해달라”며 채 감독 어머니를 설득하기도 했다. 이 씨는 채 감독의 본가에 돈을 요구할 때마다 “돈을 마련해 주지 않으면 남편과 살기 어렵겠다”며 “찾아온 것은 남편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입단속을 했다. 하지만 채 감독과 이 씨의 내연남인 장 씨가 만나게 되면서 이 씨의 거짓인생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연남인 장 씨는 자신의 부모님과 상견례까지 한 이 씨에게 남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채 감독과 장 씨는 흩어진 퍼즐을 맞춰 나가면서 이 씨의 실체를 하나씩 파악하게 된다. 채 감독과 장 씨가 함께 파악한 이 씨의 내연남만도 10명 이상이었다. 이 씨는 결혼생활 도중에도 내연남들이 만들어 준 카드와 핸드폰을 사용하며 함께 밀월 여행을 다닌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4일 4차 공판에서 이 같은 이 씨의 거짓말 중 일부가 피해자 법정진술을 통해 공개되자 이 씨의 변호인 측은 ‘2명의 아이가 피고인(이 씨)의 아이라는 것은 직접 확인한 사항인가?’ ‘증인(피해자의 외삼촌)은 피고인을 실제로 몇 차례 본 적이 있나?’ ‘피고인이 시모를 학대했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있나?’라는 질문으로 의견을 대신했다. 결과적으로 채 감독이 아내 이 씨와의 사실혼 관계를 정리하는 데는 이 씨의 습관적 거짓말이 원인이 됐다. 이 씨는 채 감독이 없어져야 자신의 거짓말 인생도 탄로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씨의 비밀을 덮어뒀던 채 감독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거짓말로 점철된 이 씨의 실체가 하나 둘씩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