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없는 재벌가 없네
지난 90년 11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장남 선재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미국 유학 중 2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아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김 전 회장 부부는 선재미술관을 만들었다.
과거 대우그룹 계열사에서 설립했던 아도니스 골프장도 선재씨를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도니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미소년의 이름으로 선재씨 넋을 기리며 붙인 명칭이라고 한다. 이 골프장엔 높이 5m, 길이 12m에 이르는 거대한 스핑크스 석조상이 들어서 있다. 이 석조상 제작에 참여한 대학원생 10여 명에게 이집트 답사를 보냈을 정도로 김 전 회장 부부가 이 골프장에 쏟는 열정이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외아들 원모씨는 지난 94년 1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원모씨 죽음과 관련해선 ‘불의의 사고’라고만 알려질 뿐 정확한 사인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구본무 회장은 독실한 불교신자로 알려진 부인 김영식씨와 함께 아들의 위패가 안치돼 있던 서울 삼청동 소재 칠보사를 자주 찾아 슬픔을 달랬다고 한다. 칠보사에는 원모씨의 극락왕생을 비는 구 회장 부부와 여동생의 바람이 석탑 한귀퉁이에 새겨져 있다.
원모씨가 살아있었다면 지금 30세 나이로 한창 경영수업에 뛰어들 법한 시기이며 LG는 4대째 장자 경영승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다른 재벌의 부러움을 샀을 것이다. 장자승계 원칙 고수를 위해 지난해 11월 구본무 회장은 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 광모씨를 양아들로 입양하기도 했다.
올 6월엔 신격호 롯데 회장의 동생 신준호 롯데햄우유 부회장의 장남 동학씨가 37세 나이로 숨을 거뒀다. 동학씨는 여행차 태국을 방문 중 콘도 베란다에서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했다.
이들처럼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한창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고 꽃을 피울 시점에 사망해 선대 경영자들의 안타까움을 샀던 경우도 적지 않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장남 몽필씨는 지난 82년 46세 나이로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는 동서산업과 인천제철 사장이었다. 그가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현대그룹 ‘왕자의 난’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90년 4월엔 넷째 몽우씨가 세상을 등졌다. 현대알루미늄 회장이었던 몽우씨의 사인은 정신질환에 따른 자살로 알려져 있다.
고 최종건 SK 회장의 장남 윤원씨는 지난 2000년 50세 나이에 미국 시애틀병원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SK케미칼 회장 시절 전문경영인 능력을 인정받았던 윤원씨는 사촌인 최태원 현 SK 회장과도 우애가 매우 좋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고 이임룡 태광산업 회장의 장남이자 현 이호진 태광 회장의 형인 식진씨는 지난 2003년 55세로 눈을 감았다. 부친인 이임룡 회장이 지난 96년 타계하면서 그룹 경영을 맡았지만 오랜 지병으로 인해 나래를 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