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네덜란드 출신의 영장류학자이자 <착한 인류>의 저자 프란스 드 발은 동물들도 남을 돕고, 공감 능력을 갖고 있으며, 공정함과 정의의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동물들은 보상이 없어도 선행을 베푼다. 유인원들은 자기 몫의 일부를 잃을 수 있는데도 자발적으로 문을 열어 동료가 먹이에 접근하게 해준다.
관절염이 심한 늙은 암컷 침팬지를 무리의 다른 암컷들이 도와준다. 몸이 불편한 동료가 이동할 때 도와주고, 물을 떠다준다. 우울해 하는 동료를 안아주고 입 맞추고 위로한다. 포유류는 타자의 감정에 민감하고 그들의 필요에 반응한다.
다윈이 진화론을 제시한 후 오랫동안 자연은 약육강식의 야만적인 투쟁이 벌어지는 검투장과 같은 곳으로 묘사되었다. 동물은 자기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며, 인간도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도덕성이란 우리의 이기적인 본성을 겨우 가려놓은 얇은 판뚜껑에 불과하다는 이른바 ‘판뚜겅 이론’이 지난 30년간 인간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로 자리잡았다.
오늘날에도 종교인들은 신이 없다면 인간은 도덕적으로 살 수 없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철학자들 역시 초월적인 이성의 원리에서 나온 도덕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인간 행위에 부과된다는 점에서 동일한 관점을 공유한다.
저자는 인간의 도덕성이 신이나 도덕 원리 같은 저 높은 곳에서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에 닻을 내리고 있다고 말한다. 생긴 지 겨우 2000년 정도 된 현대 종교가 나타나기도 훨씬 전에, 도덕성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이미 출현했다. 우리는 합리주의적 반성 과정을 거쳐 차근차근 도덕성을 발전시킨 게 아니다. 도덕성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배경으로부터 강력한 압력을 받은 결과로 형성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도덕성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출현했다. 어딘가에 속하고, 함께 생활하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우리가 의지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을 촉구한다. 공정함과 정의의 감각은 오래된 능력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가운데 공동체의 화합을 유지해야 할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우리는 우리라는 존재의 도덕성 가능성에 대해 보다 낙관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다.
프란스 드 발 지음. 오준호 옮김. 미지북스.정가 1만 8000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