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박쥐 박’은 얼굴마담이었나
▲ 박기영 전 보좌관. 청와대사진기자단 | ||
특히 황 교수 파문이 불거지기 이전은 물론, 불거진 이후에도 정부가 직접 나서 황 교수 감싸기에 급급했던 데에 박 보좌관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은 계속되고 있다. 차관급인 박 전 보좌관이 ‘황우석 교수 연구지원 모니터링 팀’의 사실상 팀장 격으로 관련 행정 부처를 조율하고 이끌었다. 복지부 장관을 제쳐놓고 박 전 보좌관이 복지부 차관에게 직접 전화로 지시 또는 협조를 구한 흔적도 드러나고 있다.
과연 박 전 보좌관의 파워가 그 정도였을까. 그 파워의 배경에 숨어있는 또 다른 이면은 없었는지 갈수록 의혹만 무성해지고 있다.
황우석 교수 파문이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22일 MBC 'PD수첩'이 난자 제공 윤리 문제를 거론하면서 부터였다. 박 전 보좌관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대책 마련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 박 전 보좌관은 이미 그 전부터 정부의 황 교수 지원 정책을 총괄적으로 주도하고 있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황우석 교수 연구지원 모니터링 팀 구성·지원’ 문건에 따르면, 박 보좌관은 국무조정실의 경제조정관, 국정원 실장, 과기부, 복지부, 외교부의 각 담당 국장, 특허청의 담당 과장 2명 등 관련 6개 부처의 7명과 함께 팀을 이루고 있었다. 민간인으로는 이화여대 신아무개 교수가 참여했다. 직급으로 볼 때 이 팀의 팀장격은 당연히 박 전 보좌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팀의 산하에는 8개 관련 정부부처의 과장급으로 ‘실무 TF팀’을 구성했다.
▲ <일요신문>이 입수한‘황우석 교수 관련 정부 지원내역’ 문건. | ||
이에 대해 복지부는 최근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비교적 소상히 설명했다.
‘복지부 송재성 차관이 24일 오전 7시반부터 열린 과학기술장관 회의 종료 후 박 전 보좌관에게 “조사결과를 IRB 관계자가 복지부 기자실에서 오전 10시 발표토록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오전 10시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이동중이던 송 차관에게 박 전 보좌관이 직접 전화를 걸어 “이영순 위원장이 복지부에서 발표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므로 복지부로 이동중이던 이 위원장에게 전화해서 가지 말라고 했다”고 통보했다.’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초 IRB가 기자회견 하루 전날인 23일 조사결과 보고서를 복지부에 팩스로 제출했는데, 그 다음날 기자회견 직전에 몇 가지 내용을 갑자기 수정해서 다시 제출했다는 것. 즉 당초 원문에는 ‘황 교수가 2003년 8~9월경 처음 여성연구원의 난자제공 가능성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튿날 수정문에는 이 부분이 삭제된 채 발표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오후 3시 황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나는 <네이처>지의 문제 제기(2004년 5월) 이전에는 난자 제공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IRB의 최초 보고서 내용과는 달리 수정 보고서 내용과 똑같은 입장을 밝힌 셈이다.
사실 복지부의 발표대로라면 박 전 보좌관은 이 엄청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심지어는 황 교수와 밀접한 접촉을 통해 IRB의 조사 발표 조작에 까지 나선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사기에도 충분한 셈이다. 실제 기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IRB측은 당시 핵심적인 내용을 수정하면서 23일과 24일 사이 단 한번도 IRB 회의를 가진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 위원장이 위원들 몰래 독단적으로 고쳤거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 고쳤다는 뜻이 된다.
이에 대해 박 전 보좌관은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번 의혹의 또 다른 주요 당사자인 이영순 위원장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복지부의 발표 내용은 전혀 틀린 것”이라고 전면 부인하고 있어 또 다른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그와의 일문일답은 이렇다.
―지난해 11월24일 오전 복지부에 발표하러 직접 갔다가 박 전 보좌관의 전화를 받고 발길을 되돌린 것이 맞는가.
▲ 이영순 위원장 | ||
―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박 전 보좌관의 전화를 받고 발표를 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나는 박 전 보좌관을 잘 알지도 못한다. 또 내가 그런 사람의 지시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왜 당초 계획대로 이 위원장이 발표를 하지 않았나.
▲나는 처음부터 그 발표를 서울대 수의대 IRB가 하는 것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다. 2004년도 논문은 한양대 IRB가 맡았던 것이었다. 그때는 서울대에 IRB가 만들어지기도 전의 일이었다. 또 난자 제공의 불법성은 미즈메디병원을 직접 조사해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주요 이슈는 서울대 연구원들의 난자 제공 문제였다.
▲그래서 그 부분은 내가 조사했다. 당시 35명의 학생들 가운데 박을순 연구원을 제외한 34명을 모두 조사했고 그 결과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박 연구원은 아무리 연락을 해도…. 황 교수가 직접 나서서 연락을 해도 안 받고 답장도 안 보내서 제외됐다.
―당초 복지부에 제출한 문안에서 막상 발표시에는 빠진 부분이 있다. 왜 빠졌는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정확히 확인을 못하겠다. 미안하다.
이 위원장은 “이제 거짓말하면 안 된다. 금세 탄로나게 되어 있다”는 말로 박 전 보좌관과 통화한 사실이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다. 박재완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나 복지부의 발표 등 어느 하나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에 대해 복지부측은 “우리 부서에서 발표한 자료에 조작이나 거짓이란 절대 있을 수 없다”며 모든 것이 사실임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이번 파문은 또 다른 의혹을 다시 낳고 말았다. 모든 것을 박 전 보좌관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면 표면상 박 전 보좌관을 내세웠거나 아니면 함께 대책 마련에 주도적으로 나섰던 또 다른 ‘손’이 있었다고밖에는 보기가 힘들다. 박 전 보좌관은 사퇴하자마자 직접 순천대 복직을 신청한 채 이러한 모순투성이의 이야기들에 대해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