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외국인 입양’ 보냈다가 데려왔다
해외입양아 중 80%는 미혼모가 낳은 아이라고 한다. 경제적인 문제와 더불어 냉소적인 사회의 시선이 갓난아기를 해외로 보내는 주된 이유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재벌가에서 해외입양사례가 나오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확률이 희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한 재벌가의 입양 사례가 발견돼 눈길을 끈다. 국내 10대 재벌 중 하나인 H그룹의 K 회장이 막내아들을 외국인 가정에 입양시켰다가 다시 데려온 것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K 회장에겐 세 아들이 있다. 20대인 장남과 차남은 각각 미국의 명문대에 재학 중이며, 우리 나이 18세로 미성년자인 삼남은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들 삼형제 중 막내인 삼남은 어릴 적 ‘부모가 잠시 바뀌는’ 곡절을 겪어야 했다. 1989년생인 삼남은 우리나이로 7세 되던 해인 1995년 2월에 유럽 국적의 양부모에게 입양됐던 것이다.
그런데 1년 10개월 만인 1996년 12월 K 회장은 협의파양을 신고하게 된다. 유럽인 양부모 G 씨로부터 삼남에 대한 친권을 다시 가져온 것이다.
K 회장 삼남은 왜 1년 10개월 동안 친부인 K 회장의 품을 떠나 유럽인 양부모 밑에 있어야 했던 것일까. K 회장을 둘러싼 친부 친자 확인에 대한 소송 같은 것도 없으며 호적상으로도 양부모 G 씨에게 입양됐던 것을 제외하면 어떤 하자나 다른 형제들과 차이가 없다. 재벌가에서 자식을 잠시나마 외국인 가정에 입양시켰던 점에 의문부호가 붙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H그룹 측은 “당시 주한 외국 대사였던 G 씨가 K 회장 삼남을 워낙 귀여워한 나머지 K 회장에게 ‘삼남의 후견인이 돼주고 싶다’고 의사를 전해 입양이 성사됐다”고 설명한다. K 회장 일가와 G 씨 일가와의 각별한 인연 때문에 이뤄진 일이라는 설명이다.
K 회장 일가는 선친 때부터 G 씨가 주한 대사로 있는 A국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H그룹 창업주인 K 회장 선친이 그룹을 이끌 시절부터 A국 진출 사업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그 덕에 역대 주한 A국 대사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K 회장 역시 지난 1984년부터 1993년까지 주한 A국 명예영사직을 맡았으며 1986년엔 A국 대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K 회장이 외국인 가정에 삼남을 선뜻 내준 점도 의아스럽지만 당시 A국 대사가 K 회장 삼남을 입양한지 1년 10개월 만에 다시 K 회장이 삼남을 자신의 호적으로 데려온 까닭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에 대해 H그룹 측은 “당시 A국 대사이던 G 씨가 1996년 말 임기가 끝나게 되면서 본국으로 다시 돌아가려는데 K 회장 삼남을 데려가기가 여의치 않아서 협의파양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K 회장 삼남의 입양기록과 H그룹 측 설명을 합쳐 요약하면 대충 이런 내용이 된다. ‘K 회장 삼남을 너무 귀여워한 주한 A국 대사가 K 회장에게 입양을 요청해 K 회장이 이를 승낙했다. 그런데 1년 10개월 만에 본국으로 가기 전 삼남을 데려갈 수 없는 상황이 생겨 K 회장에게 다시 돌려줬고 K 회장은 이를 받아들인다.’
간단명료하지만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도 없지 않다. 주한 A국 대사가 입양을 결심했을 땐 본국으로 데려갈 생각을 분명히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입적이라는 번거로운 절차를 택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1년 10개월 만에 그 생각이 바뀌었다는 점이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아무리 절친한 사이라도 자신의 아들을 외국인에게 선뜻 내주는 K 회장의 결심 배경 역시 의문이다.
그렇다면 H그룹이 설명한 것 외에 삼남이 K 회장 품을 떠났어야 할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현재 그룹 내 삼남의 위상을 봐서는 그가 집안에서 홀대를 받는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삼남은 올 2월 현재 H그룹 지주회사의 지분 0.99%를 갖고 있다. 이 지분가치를 3월 23일 현재 주가로 환산하면 200억원을 상회한다.
H그룹 지주회사의 최대주주는 K 회장이며 장남이 3.09%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차남은 삼남과 마찬가지로 지분 0.99%를 갖고 있다. K 회장 부인 S씨 지분율 0.41%보다 삼남 몫이 더 크다.
삼남의 재산은 이것뿐이 아니다. H그룹의 한 비상장 계열사 지분 16.5%를 보유해 이 회사 2대주주로 군림하고 있다.
미성년자인 삼남이 수백억 원대의 주식을 사들일 재력은 사실상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인 K 회장으로부터 수백억 원대 재산을 물려받은 셈이다.
K 회장 삼남은 어려서부터 승마를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 역시 부모의 관심과 전폭적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H그룹은 A국 대사와의 인연 외에 입양 배경에 대한 다른 설명은 하지 않고 있다. 아쉬울 것 없는 재벌가에서 외국인 가정에 막내아들을 선뜻 양자로 내줬던 배경에 대해 단지 ‘외국 관료와의 깊은 관계’ 때문이었다고만 밝힐 뿐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