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총리 얼굴 보고 믿었는데…”
▲ 지난 1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선서하는 한명숙 총리. | ||
일반인에게는 낯선 이 기업의 이름은 ㈜위베스트인터내셔널이었다. 청문위원인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은 “2만여 명의 피해자를 내고 사기혐의로 구속된 다단계 판매업자가 지난해 4월 주최한 행사에 한 총리가 참석해 축사를 했다”고 의혹을 제기하며 “이 회사의 홍보용 책자에도 한 총리에 대한 기사가 등장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지명자는 “지역구 행사에 의례적으로 초청된 것이며 그 사람을 잘 모른다”고 답변했다.
한 총리를 곤혹스럽게 만든 다단계 회사 ㈜위베스트인터내셔널을 취재했다.
열린우리당 한명숙 의원은 지난 17~18일 양일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19일 총리에 임명됐다. 한 총리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은 한 총리의 도덕성과 이념성향을 물고 늘어지면서 책임총리 능력이 없다고 질타했다.
인사청문회 내용 중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한 총리와 한 다단계 업체 간의 관련성에 대한 의혹이었다. 포문을 연 것은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이었다. 주 의원은 “한 지명자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문제가 있는 다단계 기업의) 행사에 참석한 것은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으로 이 회사와 부적절한 거래를 하거나 후원금을 받은 적은 없는지 등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지명자는 서면답변에서 “일산 지역구 관내 행사로 의례적인 초청에 의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주 의원이 제기한 의혹의 핵심인 ‘행사’는 바로 다단계 업체 ㈜위베스트가 지난해 4월 주최한 ‘고양 세계 빛 엑스포’였다. 이 회사의 대표 안홍헌 씨는 다단계 판매업계에서는 매우 유명한 인사다. ㈜위베스트의 자회사인 연예엔터네인먼트사인 케넷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한 이 행사에 한 총리는 지역구 국회의원 자격으로 참석, 축사를 한 바 있다. 위베스트가 발행한 당시 홍보책자에 따르면 한 총리는 축사를 통해 “절망의 암흑을 희망으로 바꾸는 빛처럼, 휘황찬란한 희망의 밤을 기대한다”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지난해 4월 22일 개막되어 6월 19일 폐막된 이 대형행사의 개막식 당시 이 곳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한 총리가 정치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참석했다.
▲ 왼쪽부터 지난 17일 인사청문회에서 질의하는 주호영 한나라당 의원. 지난해 4월 ‘세계빛엑스포’에 참석한 한명숙 총리(위베스트 발행 책자). | ||
지난해 3월 서울동부지검은 안 씨를 긴급체포하면서 그의 범죄행위와 관련 “위 업체(㈜위베스트)의 다단계 판매원이 되고자 하는 자 또는 다단계판매원 총 2만 7664명으로부터 후원수당을 받을 수 있는 다단계판매원 등록 조건부 물품구입비 겸 투자비 명목으로 합계금 1조 2980억 9000여만 원을 교부받아 다단계 판매원이 되고자 하는 자 또는 다단계판매원에게 1인당 44만 원 이상의 부담을 지게하고”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사건을 맡은 동부지검 측은 “사기로 인한 이득 금액이 50억 원 이상인 경우에는 피의자에 대해 무기징역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적용했다”며 “안 씨가 수차례에 걸쳐 같은 범죄를 저질러 부당이익을 챙기고 피해자를 만들었음에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여전히 사업을 확장하고자 하는 등 죄질이 나빠 이처럼 최고 형량을 구형했다”고 밝혔다.
당시 이 행사에 경기도와 문화관광부, 외교통상부 등이 후원을 했던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의혹을 제기한 주 의원 측은 “주최한 기업이 수만 명의 피해자를 양산한 다단계 업체임에도 불구하고 면밀한 검토 없이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후원을 해줌으로써 결과적으로 기업의 홍보를 도와준 점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위베스트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국회에 보낸 각종 탄원서에도 한 총리에 대한 언급이 담겨있어 주목을 끈다. 총리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있던 지난 18일 탄원인 신 아무개 씨 등 33명이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실에 보낸 탄원서에 따르면 “(위베스트 측이) 2005년 4월경 경기도 일산 빛 축제에 참석하라고 하여 가봤더니 그 곳에서 한명숙 국회의원과 위베스트 회장 안홍헌 씨가 아주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들이 참석해주어 참 고맙다는 국회의원 한명숙 씨의 말을 듣고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 시민들은 그래도 나라에서 신임하는 국회의원이 위베스트 회장과 친밀하게 악수도 나누고 해서 회사를 믿을 수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다들 했습니다”고 주장했다.
한 총리의 빛 축제 참석과 축사가 문제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던 인물의 행사에 참석, 문제의 인물로 하여금 친분을 과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하고 서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 것은 잘못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다.
문제가 된 ㈜위베스트는 대표인 안 씨가 1998년 6월 주식회사 쎄임월드라는 상호로 화장품 및 건강식품 등의 네트워크마케팅사업 등을 사업목적으로 설립, 2002년 11월 상호를 ㈜위베스트인터내셔널로 변경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회사의 회장을 맡고 있는 안 씨는 상호를 변경한 지 불과 2년 만에 304억여 원의 매출액을 올리며 업계 15위로 뛰어 올랐다. 다단계 업계에서는 신화와도 같은 기업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위베스트의 한 관계자는 각종 의혹에 대해 “회장님의 신상, 회사 운영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현재 위베스트는 안 씨에 대한 본격적인 검찰수사가 진행된 이후 사실상 영업이 중단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상진 기자 sjin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