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자본 징검다리 누가 놓았나
그러나 대검 중수부의 다음 칼날이 기업보다는 ‘의외의 곳’으로 향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검찰 칼날의 각도를 예측하기 위해 대검 중수부 검사들이 요즘 읽고 있는 한 권의 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책은 <한겨레>의 이정환 기자가 쓴 <투기자본의 천국 대한민국>이라는 책이다.
박영수 중수부장을 비롯해 수사검사들이 두루 읽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책은 제목만 놓고 본다면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론스타와 관련된 책이군’이라며 쉽게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세부 내용과 검찰의 ‘열독률’을 연결시켜 보면 의외의 상황이 그려질 수도 있다.
이 책은 실제로 론스타를 비롯해 골드만삭스 칼라일그룹 등이 세계 각국에서 얼마나 손쉽게 돈을 벌고 있는지를 지적하면서 그 가운데 한 나라가 대한민국임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의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2003년 9월, 자산규모 62조 6033억 원에 이르는 은행의 소유권이 단돈 1조 3834억 원에 넘어갔다. 이 은행은 2년 반 뒤에 6조 4180억 원에 다시 팔려나갈 전망이다. 환차익을 감안하면 론스타의 시세차익은 무려 4조 5008억 원에 이른다.”
<한겨레>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21>의 기자인 저자는 4조 5000억 원이면 45억 달러 정도인데 그 액수에 대한 감이 잘 안 오니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기사를 인용해 설명한다.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와 골드만삭스의 차이를 아는가. 탄자니아는 1년에 22억 달러를 벌어서 2500만 명이 나눠 갖는데 골드만삭스는 26억 달러를 벌어서 161명이 나눠 갖는다.”
저자는 또 “외환은행의 매각을 국수주의적으로 보지 말자. 우리가 아쉬워서 손 벌려놓고 비싸게 되파니까 이제 와서 딴소리”라는 당시 금융감독원이나 재정경제부 간부의 시각을 반박하고 있다. 그는 외환은행이 헐값 매각이 아니라 불법 매각된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그 매각의 중심에는 바로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이라는 파워엘리트 집단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와 관련해 김&장과 연관된 의혹을 따로 하나의 장으로 페이지를 할애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론스타와 김&장 중심으로 얽혀 있는 담합 의혹을 파헤치는 게 검찰이 수사해야 하는 외환은행 불법매각 의혹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커다란 파문이 일 수밖에 없다. 법조계는 물론 사회 각 분야에서 김&장이 차지하는 엄청난 비중 때문이다.
김&장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물론이고 해외자본의 인수계약에는 어김없이 법률대리인을 해왔다. 국내 은행을 인수해 천문학적인 차익을 챙겼던 뉴브리지캐피털(제일은행), 칼라일(한미은행) 등 단기 투자를 통해 거액의 차익을 남긴 대규모 펀드의 법률 대리인을 김&장이 맡았다.
▲ <한겨레>의 이정환 기자가 쓴 <투기자본의 천국 대한민국>. 최근 수사검사들이 읽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더욱 화제가 된 책이다. | ||
이번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입 의혹을 선도적으로 제기했던 투기자본감시센터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2003년) 금감위 승인, 법률·회계적인 문제, 재정경제부 및 청와대 동의 등 난관이 많았는데 매우 일사불란하게 처리됐다”며 “이 과정을 누가 조율했는지 의문”이라며 문제제기를 했다.
실제로 론스타의 인수과정을 보면 황당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론스타는 금융회사가 아닌 펀드로 원래는 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외환은행의 BIS(국제결재은행)비율이 기준인 8% 이하인 6%로 떨어져 은행 경영이 어렵다고 판단해 예외적으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게다가 외환은행을 매각해야 한다는 잣대가 된 BIS비율 6%가 조작됐다는 감사원의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BIS는 1992년부터 국제업무를 하는 은행에 대해 위험가중 자산에 대한 자기자본 비율을 8% 이상 유지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즉 8%는 넘어야 우량은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장 측은 그러나 외환은행 불법매각 의혹과 관련해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언론 기사에 대해 “외환은행 매각행위에서 위법행위는 없었다”라고 거듭 강조해왔다. 또 외국투자자본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우리가 아니라면 누군가는 했을 일”이라며 “법률적 자문을 하는 것이 로펌의 역할”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현재 검찰의 론스타에 대한 수사는 ‘워밍업’ 수준으로 보인다. 검찰은 5월 초 우병익 전 KDB론스타 사장과 이대식 전 KDB론스타 상무를 각각 구속했다. 우 전 사장은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을 마치고 2000년 5월 론스타에 영입된 인물이다. 현대자동차 수사로 기업의 저승사자로 떠오른 채동욱 기획관은 “론스타 투자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사들의 불법행위를 조사하고 있다”며 “수사를 넓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주변의 관심은 과연 검찰의 ‘폭넓은 수사’ 대상에 김&장도 포함될지 여부다.
그러나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김&장 자체를 압수수색하거나 전격 수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김&장은 다른 법률회사들과 달리 창업 이래 지금까지 합동법률사무소 형태를 고집하고 있다. 외형만 보면 변호사들이 모두 개인 사업자로 등록돼 있고 개별적으로 사건을 수임해서 이익을 내고 책임지는 구조다. 따라서 외환은행 매각에 불법 개입했다고 해도 그것은 김&장의 조직 차원이라기보다는 개인들의 문제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또 이들 율사들이 론스타 등에 법률적 조언을 했고 그 대가로 컨설팅비를 받았다면 사법처리하기가 어렵다. 다만 변호사가 아닌 고문들의 경우 민간인 신분으로 법률적·행정적 자문을 하고 대가를 받았다면 이와 관련해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따라서 검찰이 론스타 사건에 개입된 것으로 의심받는 김&장을 압박하려 할 경우 다른 혐의보다 변호사 수임료의 탈세 등을 집중 수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검찰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의혹 역시 현대자동차 수사처럼 찬반양론이 뜨거워질 것으로 보고 이 사건을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과연 김&장과 관련한 수사가 이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박태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