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는 웃고 있어도… 로빈은 울고 있었다
할리우드가 깊은 슬픔에 잠겼다. 늘 밝고 유쾌하게만 보였던 로빈 윌리엄스가 지난 11일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향년 63세. 스크린 속의 ‘로빈 윌리엄스표’ 코미디에 매료되어 있었던 사람들은 그가 보기와는 달리 오랜 기간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었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 있다. 실제 지금까지 윌리엄스가 대중들에게 보였던 모습은 늘 밝고 긍정적이었다. 그는 학생들의 미래에 불을 밝혀준 자상한 ‘키팅 선생’이자 방황하는 천재의 내면을 이끌어낸 ‘숀 교수’였으며, 또한 모든 어린이들에게 꿈을 선사한 ‘지니’이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실수투성이의 사랑스런 ‘가정부 할머니’였는가 하면, 전쟁터에 웃음을 전파한 에너지 넘치는 ‘DJ’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온 후의 그의 삶은 스크린 속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는 줄곧 술과 약물, 그리고 고독과 외로움과 싸워왔으며, 두 번의 이혼으로 파산 직전에 몰린 나머지 생계를 위해 영화 배역을 따내야 하는 절박한 지경에 놓여 있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내몰았는지 그 슬프고도 어두운 이면을 살펴봤다.
로빈 윌리엄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와 그가 출연했던 영화 촬영장소 곳곳에 헌화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마린 카운티의 911센터에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온 것은 지난 11일 오전 11시 55분경이었다. ‘한 남성이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숨을 못 쉰다’는 내용의 신고였다. 하지만 응급 구조대가 출동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그렇게 윌리엄스는 손을 쓸 겨를도 없이 티뷰론 자택의 침실에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질식사였다.
경찰 조사 결과 윌리엄스는 허리띠로 목을 졸라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손목에 희미하게 칼로 벤 상처가 있었던 점과 근처에 주머니칼이 놓여 있었다는 점으로 미뤄 보아 먼저 동맥을 끊는 방법을 시도했던 것으로 추정됐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미 전역에서 애도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와 샌프란시스코 자택, 시트콤 <모크와 민디>의 찰영장소였던 집 앞, 그리고 <굿 윌 헌팅>에 등장했던 보스턴 공원의 벤치에는 헌화 물결이 이어졌다.
<굿 윌 헌팅>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벤 애플렉은 “그는 맷 데이먼과 나의 꿈을 실현시켜 주신 분이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인생 전부를 빚진 것과 다름없다”라고 추모의 뜻을 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는 “로빈 윌리엄스는 이등병이자 의사, 지니, 유모, 대통령, 교수, 피터팬 등 우리들 가운데 평범한 이였다. 하지만 그는 특별한 사람이었다”라면서 “그는 우리를 웃게 했고, 또 울게 했다. 우리에게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재능을 무상으로 나눠 주었다”며 애도를 표했다.
그의 죽음이 사람들에게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가 지금까지 일반 대중들에게 보여줬던 모습 때문이었다. 스크린 속에서, 그리고 브라운관 속에서 그는 늘 밝고 유쾌했으며, 항상 유머 감각 넘치는 재담꾼이었다.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해 보였던 그가 사실은 심각한 내면의 적과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은 뒤통수를 맞은 듯 놀라워하고 있다.
그는 무대에서 내려오고, 카메라의 불이 꺼진 후에는 줄기차게 내면의 ‘악마’와 싸워왔다. 가장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던 ‘악마’는 다름 아닌 술이었다. 데뷔 때부터 술 때문에 고생했던 그는 생전에 알코올 치료센터를 여러 차례 드나들었으며, 죽기 직전인 지난 6월에도 재활원에 입소해 12단계 재활 프로그램을 시작했었다. 그의 대변인은 “과도한 스케줄로 지친 몸을 재충전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그가 오랫동안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고 있었다는 사실은 할리우드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알코올 중독은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기 시작했던 70년대 TV 시트콤 <모크와 민디>에 출연할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그는 알코올뿐만 아니라 코카인 중독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1982년 절친이었던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존 벨루시가 약물과다복용으로 사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고 이듬해 첫째 아들인 재커리가 태어나면서는 마침내 10년 동안 마셨던 술과 코카인을 완전히 끊었다.
그렇게 20년 동안 술을 멀리 했지만 내면의 악마는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난 2006년 다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그는 <퍼레이드>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았다. “알래스카에서 <인썸니아>를 촬영하던 도중이었다. 어느 날 가게에 들어갔는데 잭다니엘 작은 병이 눈에 띄었다. 그때 어떤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를 ‘낮은 목소리’라고 부르는데, 그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이봐, 그냥 맛만 보는 거야. 그냥 딱 한 병만.’”
결국 그의 알코올 중독을 견디다 못한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그는 다시 재활원에 들어갔다. 벌써 두 번째였지만 술의 유혹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술에 의존하게 된 이유에 대해 윌리엄스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외로움과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렵냐는 질문에는 “모든 것이 두렵다”라고 말했다. 혹시 오랜 절친이었던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의 죽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에 대해 그는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리브는 1995년 승마 경기 도중 낙마해 사지가 마비됐으며, 지난 2004년 세상을 떠났다.
할리우드의 생리가 그렇듯 누군가에게 잊히고 퇴물이 되어간다는 것은 배우에게는 견딜 수 없는 치욕이자 아픔일 터. 윌리엄스도 그랬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고 대중들에게 서서히 잊히자 술 대신 몰두할 수 있는 다른 것을 찾기도 했었다. 한때 그가 비디오 게임에 중독되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우울증을 떨치기 위해서 그는 하루 종일 비디오 게임에 빠져 지냈으며, 캐릭터를 업그레이드하거나 레벨을 올리면서 현실 대신 가상세계 속에서 위로를 찾았다. 그의 딸인 ‘젤다’의 이름도 <젤다의 전설> 게임 시리즈에 등장하는 ‘젤다 공주’에서 따왔을 정도였다.
1980~90년대 <굿모닝 베트남> <죽은 시인의 사회> <미세스 다웃 파이어> <알라딘> <굿 윌 헌팅> 등 히트작을 내놓으면서 빛을 발했던 그의 명성은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쇠락했다. 더 이상 그를 찾는 영화사들도 없었고, 대중들은 그의 유머에 열광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할리우드에서는 이런 농담까지 돌 정도였다. “이 영화는 꼭 봐야 한다. 정말 재미있다. 로빈 윌리엄스도 나오지 않는다!”
<박물관이 살아있다>로 가까스로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여전히 그를 불러주는 영화사는 많지 않았다. 할리우드에서 로빈 윌리엄스란 이름을 흥행 보증수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이제는 2급 배역만 들어오자 그의 우울증은 더욱 심각해졌다.
급기야 TV 브라운관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이마저도 쓴맛을 봐야 했다. 지난해 가을 CBS 방송의 코미디 쇼프로그램인 <크레이지 원스>에 캐스팅됐던 그는 재기를 위해 몸부림쳤다. 30년 만의 브라운관 복귀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은 곤두박질쳤으며, 결국 CBS 측은 시즌2 제작을 포기했다.
이에 한 측근은 “윌리엄스는 몹시 부끄러워했으며, 좌절했다. 그는 60대 노인이었고, 돈을 벌기 위해서 TV 드라마 배역을 따내야 하는 처지였다. 이런 자신의 모습은 그가 생각했던 노년의 모습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사실 영화를 하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많은 영화들이 아예 배급사조차 찾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현재 내 재정 상태는 나빠졌다.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어서 나파 밸리에 있는 집을 내놓은 상태다”라고 말했다.
최근 윌리엄스가 <미세스 다웃파이어 2>에 출연하기로 결심했던 것 역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그는 이 역할을 맡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가 이렇게 경제적으로 허덕이게 된 이유는 비단 할리우드의 외면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 번에 걸친 이혼으로 막대한 위자료를 지불하게 된 것 역시 치명타로 작용했다. 첫 번째 부인이었던 발레리 벨라르디와 두 번째 부인이었던 마샤 가르시스와의 이혼 소송으로 총 3000만 달러(약 306억 원)를 지불해야 했으며, 이로 인해 그의 우울증은 더욱 심각해져 갔다.
한편, 로빈 윌리엄스의 부인 수전 슈나이더는 “남편이 파킨슨병 초기 진단을 받고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고 밝혔다. 슈나이더는 “윌리엄스는 알려진 대로 알코올중독과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이같은 증세가 재발한 상태는 아니었다”며 “남편은 우울증과 불안감, 초기 단계의 파킨슨병과 홀로 싸울 만큼 용감한 사람이었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무엇보다도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어쩌면 대중에게 알려진 모습과 진짜 모습 사이의 괴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대중들이 요구하는 이미지가 실제 자신의 모습과는 다를 때마다 그는 고통스러워했다. ‘래프 팩토리’의 창업자이자 윌리엄스의 친구였던 제이미 마사다는 이렇게 말했다. “윌리엄스는 늘 캐릭터 안에서 살고 있었다. 진짜 윌리엄스의 모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를 35년 동안 알고 지냈지만 나는 아직도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그에게 ‘지니’는… ‘돈’ 대신 ‘명예’ 가져다 줘 로빈 윌리엄스는 <알라딘>에서 지니 목소리 연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난 11일, 로빈 윌리엄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아카데미 측이 트위터를 통해 밝힌 애도 성명이다. 아카데미 측은 서로 껴안은 채 눈물을 흘리면서 작별 인사를 나누는 ‘지니’와 ‘알라딘’의 사진을 함께 올렸고, 이 트위터를 본 많은 사람들은 ‘완벽한 작별 인사’라고 입을 모으면서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라딘>의 ‘지니’는 바로 로빈 윌리엄스였기 때문이었다. 1992년 디즈니의 대히트작이었던 <알라딘>에서 ‘지니’의 목소리 더빙을 맡았던 윌리엄스는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서는 애니메이션 더빙 열풍의 선구자로 통한다. <알라딘>의 성공으로 곧이어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슈렉> 등에서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앞 다퉈 목소리 연기를 맡기 시작했으며, 목소리 하나만으로 수억 달러의 개런티를 받는 배우들도 등장했다. 허나 <알라딘>은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윌리엄스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흥정 끝에 디즈니와 달랑 7만 5000달러(약 7700만 원)에 계약을 맺었던 것이 실수였다. <슈렉 4>의 마이크 마이어스가 분당 10만 8000달러(약 1억 원)를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였다. 결국 영화는 2억 달러(약 2000억 원) 이상의 흥행 수익을 거두었지만 윌리엄스는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런 불편한 심경을 윌리엄스는 영화 개봉 1년 후에 <투데이쇼>를 통해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그가 적은 액수의 계약을 맺으면서 붙인 조건이 있었는데 디즈니가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맡은 ‘지니’ 캐릭터를 어떠한 마케팅에도 사용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었다고 말하면서 “나는 내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디즈니 측에 ‘지니’를 어떤 상술에도 이용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붙였지만 그들은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디즈니는 영화가 성공하자 ‘지니’를 마케팅에 대대적으로 이용했으며, 심지어 광고 속에서는 그의 목소리를 사용하기도 했다. ‘지니’가 버거킹 광고에 등장해 햄버거를 팔거나 장난감으로 팔리는 것을 보면서 윌리엄스는 절망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디즈니는 ‘시샘하는 것’이라고 맞받아치면서 사과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결국 이런 갈등 끝에 <알라딘> 속편에서는 윌리엄스 대신 <심슨 가족>의 호머 심슨 목소리 역할을 맡은 댄 카스텔라네타가 캐스팅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둘 사이의 분쟁은 디즈니 측이 윌리엄스에게 사과의 뜻으로 피카소 그림 한 점을 선물하면서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1994년에는 공식적으로 사과문을 밝히기도 했으며, 이를 받아들인 윌리엄스는 <알라딘3>에서 다시 ‘지니’ 목소리를 연기했다. 지난 2009년 윌리엄스는 디즈니판 ‘명예의 전당’인 ‘디즈니 레전드’에 이름을 올렸고, 디즈니는 이런 윌리엄스를 가리켜 ‘진정한 디즈니의 전설’이라며 추켜세웠다. 그리고 ‘전설’의 죽음에 다음과 같은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진정한 디즈니의 전설이자 우리 디즈니 가족의 사랑받는 일원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를 몹시 그리워할 것이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