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장 신설 자작극설부터 미수범 이스라엘 연계설까지…좌우에서 모두 “조작” 의심, 불신의 시대 반증

현지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용의자는 범행 당시 순식간에 보안 구역을 지나 만찬장 쪽으로 돌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만찬장 근처에는 가지도 못한 채 현장에서 즉시 제압됐고,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경호국 요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다. 경찰은 앨런의 단독 범행으로 보고 있지만, 정확한 타깃이나 범행 동기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토드 블랜치 법무장관 대행은 NBC 방송 ‘미트 더 프레스’를 통해 “용의자가 행정부 인사들을 노린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이와 전혀 다른 의혹이 퍼지기 시작했다. X, 블루스카이, 인스타그램 등에서는 사건 직후부터 “조작됐다”는 주장이 쏟아졌으며, 이는 좌파와 우파 계정 모두 마찬가지였다. 대개의 경우 음모론은 상대 진영을 통해서만 생산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번에는 좌우 양측이 약속이라도 한 듯 ‘조작된(Staged)’이라는 단어를 공유하기 바빴다. 분석 업체 ‘트윗바인더’의 집계에 따르면, 사건 발생 후 일요일 정오까지 X에서 이 단어가 포함된 게시물은 무려 30만 건이 넘었다.
이에 음모론 연구자인 마이크 로스차일드는 음모론이 좌파 자유주의 콘텐츠 제작자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고 있는 동시에 트럼프에 대한 신뢰를 잃기 시작한 우파 사이에서도 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극우 집단 ‘큐아논’에 해당하는 극좌 진영의 ‘블루아논’은 트럼프가 지지율 정체와 이란 전쟁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혹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위험한 연극을 꾸몄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와 관련, 텍사스주 민주당 하원의원 재스민 크로켓은 스레드를 통해 “이렇게 많은 암살 시도를 겪는 대통령이 있단 말인가. 가짜일 수도 있고… 누가 알겠느냐”며 노골적으로 의구심을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이 사건이 트럼프가 백악관 신규 연회장 건설 계획을 밀어붙이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벌인 자작극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4억 달러(약 590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이번 사건을 꾸몄다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는 평소 백악관 내에 전용 연회장을 짓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드러내왔다.
정말 그래서일까. 트럼프는 사건 발생 몇 시간 후 열린 브리핑에서 “우리에게는 더 안전한 연회장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극우 팟캐스터인 잭 포소비엑, 보수 활동가 톰 피턴 등 우파 인사들도 연회장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트럼프를 거들고 나섰다.
이 밖에도 자작극을 의심케 하는 기묘한 장면은 곳곳에서 포착됐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만찬 전 가진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농담을 두고 “오늘 밤 총성이 울릴 것(Shots will be fired)”이라고 말한 표현도 음모론의 재료가 됐다. 원래는 비유적 표현이었지만 총격 사건 이후 일부 누리꾼들은 이를 사전 암시처럼 해석했다. 또한 현장에서 경호 요원들이 트럼프 대통령보다 밴스 부통령을 먼저 대피시켰다는 점도 의심을 샀다.
음모론은 국경을 넘어서도 확산됐다. ‘전략대화연구소’에 따르면 러시아와 이란 등 국영 매체들은 암살 미수범인 앨런이 이스라엘 군대와 연결돼 있다는 추가 음모론을 제기했다. 가령 러시아의 국영 방송인 RT는 소셜미디어에서 떠도는 확인되지 않은 가짜 뉴스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이란 측 매체들은 이번 사건을 현재 진행 중인 전쟁과 결부시키려 했다. 이를테면 앨런이 이스라엘의 지령을 받았다거나, 혹은 이스라엘 군대(IDF) 출신이라는 식의 근거 없는 주장을 유포하면서 반이스라엘 정서를 자극했다.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음모론에 대해 트럼프 역시 날 선 비난을 쏟아냈다. CBS 뉴스 ‘60분’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총격 사건이 조작됐다고 믿는 사람들을 두고 “사기꾼이라기보다 병든 사람들에 가깝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또한 “보통은 두세 달쯤 지나야 음모론이 돌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너무 빠르게 나왔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지 않는다. 메릴랜드대 젠 골벡 교수는 제도에 대한 불신,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하는 능력이 결합될 경우 음모론이 만들어지기 쉽다고 분석했다. 요컨대 음모론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단서를 찾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가령 음모론자들은 사진 한 장, 끊긴 방송 한 장면, 정치인의 말실수 하나를 붙잡고 거대한 퍼즐을 맞추려 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남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찾아냈다며 희열을 느낀다.
결국 이번 총격 사건은 미국 사회의 균열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됐다. 한쪽에서는 트럼프가 실제 위협을 당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위협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더욱 복잡해진 문제는 이런 의심이 이제 진영을 가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트럼프를 지지했던 일부 우파 인사들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트럼프에게는 여간 거슬리는 부분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조작된’의 역사…1835년 잭슨 저격 사건 때도 솔솔~
정치적 암살 시도가 발생할 때마다 뒤따르는 단어가 하나 있으니, 바로 ‘연출된’, 혹은 ‘조작된’을 뜻하는 ‘Staged’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 단어의 역사가 꽤나 오래 됐다는 사실이다.
‘Stage’는 13세기경 건물의 층이나 구조물을 뜻하는 명사로 쓰였고, 이후 동사로 확장된 후에는 건설 현장에 발판을 설치하거나 무언가를 준비 혹은 연출하는 의미를 지니게 됐다. 14세기 들어서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행위로, 더 나아가 ‘준비와 계획이 필요한 모든 사건’으로 의미가 더 확장됐다. 오늘날 흔히 사용되고 있는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꾸며낸 상황’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더해진 것은 1930년대부터였다.
실제 1935년 ‘아메리칸 매거진’에는 취업을 위해 일부러 말다툼을 ‘연출(Staged)’한 첫 번째 사례가 소개됐다. 기사에 따르면 한 남성은 목재 회사 감독관의 신뢰를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갈등 상황을 꾸며냈다. 그는 마치 우연히 벌어진 일처럼 보이도록 다른 사람과 말다툼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정직하고 능력 있는 인물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다. 즉, 실제 상황이 아니라 미리 계산된 행동을 통해 특정 이미지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 같은 의미 확장은 정치와 범죄가 결합된 사건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암살이나 암살 시도는 그 자체로 극적인 사건인 만큼 ‘조작’이라는 의혹이 따라붙기 쉬운 구조를 가졌다. 가령 1835년 앤드루 잭슨 미국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당시 야당은 “동정 여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꾸며낸 음모다”라며 비난을 퍼부었으며, 1995년에는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암살 사건을 두고도 ‘실패한 연출’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한 2022년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부통령을 향한 총격 미수 사건 역시 정치적 목적으로 연출된 자작극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