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대는, 우리집 씨로…”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지난 7월 31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수정착상학회에서 스와 마터니티 클리닉의 네쓰 야히로(根津八紘) 원장이 발표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네쓰 원장은 “남편에게 정자가 없는 부부는 익명의 제3자로부터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실은 생판 모르는 남보다 가족의 정자 제공을 원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상담을 반복해 신중하게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정자를 제공하는 경우, 태어난 아이는 시아버지에게 ‘아들’이 되는 건지 ‘손자’가 되는 건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참고로 2003년 일본 후생노동성은 “가족관계의 혼란을 막기 위해 난자와 정자 제공자는 ‘익명의 제3자’로 한정하며, 형제자매의 제공은 배제한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말하자면 국가가 정한 윤리 규정과도 같은 것이다.
이번 발표는 그 윤리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셈이다. 따라서 그만큼 뜨거운 논쟁이 빚어지고 있다. 먼저 며느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일반적으로 여성은 시아버지의 정자를 몸에 넣는 것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다”고 운을 뗀 후 “무려 118명이나 되는 아이가 태어난 것은 아무래도 ‘강요’에 의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고 추측했다. 시댁에서 “어떻게든 ‘핏줄’로 연결된 아이를 낳으라”고 압력을 행사했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에 반해, NPO법인 ‘파인(Fine)’의 대표는 아이의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했다. 그는 “아무리 핏줄을 잇고 싶었다고 해도 아이의 행복을 위한다면, 시아버지의 정자를 선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신과 전문의로 유명한 가야마 리카 씨는 그동안 상담했던 사례를 기반으로 해, 이번 일을 가족관계의 붕괴로 연결 지었다. 그는 “문제는 늘 예기치 않는 곳에서 발생한다. 가령 ‘호적상의 손자’에게 애정을 느낀 할아버지가 갑자기 ‘내 아이’라고 주장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또 반대로 아이가 ‘혈연상의 아버지’를 진짜 아버지라 여기고, 이복형제인 ‘호적상의 아버지’를 경멸하는 일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실제 아이가 진실을 알게 된 뒤 호적상의 아버지와 친자관계를 단절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 일본의 법률상 친자관계는 혈연보다는 호적이 우선시 된다. 즉, 부부의 아이로 자랄 경우 비록 DNA감정에서 할아버지의 아이라고 증명되더라도 나중에 부자관계가 뒤집히는 일은 없다.
반면, 일부는 지지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의학 전문 저널리스트 후케 다카시 씨는 “정체불명의 제3자로부터 정자를 제공받는 것보다 유전자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쪽이 안전하다”면서 “익명의 제공을 조건으로 태어난 아이가 장래 정자제공자와 근친 결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생물학자이자 와세다 대학교수인 이케다 기요히코 씨는 “어디까지나 생물학적 관점에서 말하면, 시아버지의 정자 제공이 가장 이치에 맞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동물은 독점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자신 이외의 수컷은 모두 경쟁 상대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 본래 경쟁 상대인 아버지의 정자가 아내의 체내에 들어가는 것은 상당한 저항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저항감이 가장 심한 상대는 전혀 모르는 제3자인 경우라고 한다. 아내에게 다른 남성의 정자를 넣는다는 건 정신적으로 매우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는데, 가족은 비교적 저항감이 덜하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아버지는 먼저 세상을 떠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형제보다는 약한 경쟁 상대다.
‘만약 남편의 형제가 정자 기증자가 되면 그가 아기의 주변에 항상 삼촌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남편의 아버지는 다르다. 아기가 어른이 될 때 시아버지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후일지 모른다.’ 이런 이유로 이케다 교수는 “생물학적으로 봤을 때 남편의 아버지가 정자를 제공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발표로 국민적 논의단계에 들어선 일본과 달리, 미국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생식의료에 대한 시비가 불거져왔다. 단지 혈연관계를 중시하는 일본과는 분명 차이점이 존재한다. 정자 기증자들과 그들의 자녀를 연결하는 웹사이트 ‘DSR’의 설립자, 웬디 크레이머는 이번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은 남편의 아버지로부터 정자를 제공받는다는 것에 생리적으로 혐오감을 느낀다. 가족으로서의 구별이 모호해지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닌 제3자에게 정자를 받는 게 당연하다.”
오늘날 의료기술은 현저히 진보해 이른바 생명의 합성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관련 법률이 정비되지 않았고, 태어난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받을지도 분명하지 않다. 정자를 제공한 아버지, 이를 받은 부부, 그리고 아이까지. 각자의 인생에 일어날 일들을 충분히 고려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