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흐리는 미꾸라지들 ‘나가 있어!’
이번 징계 사례집에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대한변협 징계위원회에서 결정된 징계 사례 99건과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 이의 신청 사건 24건을 합친 총 123건의 징계 사건이 수록됐다. 대체로 사건 알선료 지급, 불성실 변론, 수임 규정 위반 사건이 주를 이루지만 변호사 명의를 대여하거나 공탁금을 착복한 특이 사례들도 눈에 띈다. 심지어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갖거나 해외에서 거액의 도박을 하다 징계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황당한 ‘문제 변호사’들의 비리 백태를 들여다봤다.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가 자신의 의뢰인에게 이처럼 ‘후안무치’할 수 있을까. 다음의 A 변호사 사례는 이른바 ‘나 몰라’형 변호사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1999년 사기 혐의를 받고 있던 한 의뢰인이 피해자들과 합의한 후 합의서, 고소취하서, 탄원서 등의 서류를 받아 사건을 수임한 A 변호사에게 가져왔다. 그러나 A 변호사는 이를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아 되레 의뢰인이 법정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게 만들고 만다.
후에 이 사실이 알려지자 A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8000만 원의 합의금을 주겠다며 사태를 무마시킨다.
그러나 이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고 이에 의뢰인은 다시 법원에 지불각서 지급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이 A 변호사에게 7290만 원과 지연손해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으나 그는 이번에도 버텼다. A 변호사는 결국 예전 의뢰인의 진정에 따라 지난해 7월 변협으로부터 ‘2년간 변호사 업무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그런가 하면 B 변호사는 ‘누워서 떡 먹는다’는 식으로 변호사가 아닌 일반인에게 2년 가까이 변호사 명의를 빌려줘 소장 등 법률 서류를 작성, 제출케 하고 매월 400만 원 상당의 ‘대여료’를 받다가 지난 2002년 아예 제명을 당했다. ‘가짜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겼던 의뢰인들로서는 돌팔이에게 수술을 맡겼던 셈이다.
변호사법 위반은 물론 사기와 특수 절도 사실까지 발각돼 정직 조치를 받은 일도 있다.
한 마을 부락회 대표로부터 마을 소유 재산에 관한 소송을 의뢰받은 C 변호사는 수임 뒤에도 소송에 거의 관여하지 않아 의뢰인으로부터 변호사법위반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자칫 구속될 처지에까지 이르자 C 변호사는 ‘재판부에 돈을 써서 재판에서 승소하도록 조치하겠다’고 거짓말을 해 의뢰인로부터 1억 60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또한 그는 또 다른 사건 의뢰인에게서도 사건 수사 검사에게 로비하는 ‘진행비’ 명목으로 600만 원을 받고, 한 승용차 절취 사건까지 제3자와 공모한 사실이 드러나 지난 2004년 변협으로부터 정직 1년의 징계를 받았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함께 하숙한 적이 있는 고교 및 대학 선배 검사를 찾아가 선배가 수사 중인 사건의 당사자인 자신의 의뢰인을 선처해 달라면서 검사와 의뢰인 사이에서 돈 흥정을 벌인 변호사도 변협에서 징계를 받았다.
조세포탈 및 윤락행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한 나이트클럽 사장으로부터 사건을 무마시켜달라는 부탁을 받은 D 변호사. 마침 사건 지휘 검사가 고교 및 대학 선배여서 그는 자연스럽게 검찰에 찾아갔다. D 변호사는 선배와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문제의 나이트클럽 사장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다.
이에 검사도 사건을 잘 봐주겠다며 오히려 후배인 D 변호사에게 의뢰인으로부터 2억 원의 선임료를 받을 것과 선임료 중 절반인 1억 원을 자신에게 달라는 황당한 제안을 했다. D 변호사는 사건 의뢰인에게 검사의 말을 그대로 전했고 의뢰인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내는 데까지 성공했으나 결국 꼬리가 잡혔다. 지난 2004년 변협은 법원 형사 판결문과 경위서를 토대로 D 변호사에게 과태료 1000만 원의 결정을 내렸고, 그의 이의 신청을 냈으나 기각당했다.
F 변호사는 검사 재직 시절 수사했던 사건을 변호사로 개업해 다시 수임한 사실이 들통 난 케이스. F 변호사는 지난 2002년 검찰에서 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사건을 지휘한 적이 있었다. 당시 피의자는 잠적했고 기소 중지가 내려진 상태였다.
그해 검찰에서 나온 F 변호사는 잠적한 피의자 변호인의 부탁을 받고 검찰에 자수한 피의자를 담당 검사에게 인계하면서 ‘선처’를 요청했다. 결국 F 변호사는 ‘공무원 재직 중 직무상 취급한 사건에 대해서는 변호사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변호사법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되어 변협으로부터 과태료 200만 원을 징계 받았다.
해외에서 상습적으로 도박을 하다 ‘품위손상’ 사유로 징계를 받은 G 변호사도 특이한 사례 중 하나.
지난 2003년 1월, G 변호사는 2001년 12월 중순부터 2002년 2월 초순까지 필리핀 H 호텔 카지노에서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미화 37만 달러(약 3억 3000만 원)의 ‘바카라’ 도박을 한 혐의가 검찰에 적발돼 구속 수감까지 됐다. 외환거래법 위반 혐의까지 적용돼 법원에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은 G 변호사는 결국 변협으로부터 과태료 2000만 원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지난 2004년 연말 미성년자인 16세의 유흥접객여성과 성매매를 한 혐의로 약식 기소됐던 H 변호사도 징계를 피해가지 못했다. 그는 당시 술에 만취해 접객여성과 여관까지 가게 된 상황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하소연했지만 변협은 품위유지 의무를 어겼다며 H 변호사에게 1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자신의 사건 의뢰인의 양해도 없이 그 의뢰인을 상대방으로 하는 또 다른 사건을 수임한 ‘뻔뻔한’ 변호사도 체면을 단단히 구겼다. I 변호사는 한 생명보험주식회사로부터 총 16건의 사건을 수임하면서 이 보험회사를 고소한 K 씨 등의 퇴직금 청구 소송의 변론을 맡는 신기의 ‘이중플레이’를 벌이다 결국 지난 2004년 과태료 200만 원의 징계를 받았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