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구린 곳 확실하게 캐드립니다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혼 관련 서류대행, 소송 등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들도 급속히 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혼 소송의 원활한 진행을 돕는 각종 직업군이 생겨나고 있다. 소송에 필요한 증인 대행서비스를 해주는 업체뿐 아니라 배우자로부터 원활한 협의를 끌어내는 이혼협상전문가까지 등장했다.
이처럼 이혼율 증가로 ‘반대급부’를 누리는 수혜자가 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이른바 ‘이혼전문조사단’(조사단)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혼전문조사단이란 이혼 소송과 관련 각종 증거자료 수집과 배우자의 부정행각 등을 전문으로 조사해 주는 일종의 흥신 서비스 업체를 말한다.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이혼율 때문에 일각에서는 조사단 같은 서비스업을 새로운 블루오션으로까지 인식하고 있다. 아직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조사단. 그들이 과연 어떤 일을 맡아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 직업세계와 실체에 대해 파헤쳐 보았다.
“남편이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매일같이 폭언을 일삼고 수시로 따귀를 때리거나 발로 걷어차는 등 폭력을 휘두릅니다. 폭행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진 않지만 맞을 때마다 너무나 모욕적이고 제 인생이 비참해져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이혼을 결심하고 보니 그의 행동에 대한 증거가 없어서 난감합니다. 진단서도 없고 욕설하는 것을 따로 녹음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도와주세요.”
서울 강남의 한 이혼전문조사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김 아무개 실장(39) 앞으로 최근 들어온 상담 내용이다.
김 실장은 “하루에도 이런 내용의 문의가 평균 20건 이상씩 접수되고 있다”며 “문의 고객은 주로 여성들이지만 남성들도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7 대 3 정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여성들의 외도로 괴로워하는 남편들이 부쩍 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김 실장은 “우리 센터를 찾는 여성들은 대부분 이혼 소송에 필요한 자료를 원한다. 또한 이혼 후 재산분할 청구소송에서 배우자가 숨겨뒀던 재산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바란다”며 “요즘은 신혼이혼에서부터 황혼이혼까지 이혼연령층이 두텁기 때문에 연령대에 따라 이혼사유도 제각각이고 필요한 자료도 다 다르다”고 말했다.
예컨대 신혼이혼일 경우 주로 배우자의 전직이나 집안배경을 조사해 달라 하고 황혼이혼일 경우 숨겨둔 재산 또는 숨겨둔 자식 등을 조사해 달라고 하는 식이다. 김 실장은 이와 관련해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지난 2005년 9월께 결혼 4개월 차인 신혼주부 A 씨가 김 실장에게 자신의 남편 B 씨에 대해 조사를 의뢰해 왔다고 한다. 당초 A 씨는 ‘일본에서 유학하고 일본계 회사에 다니다 한국에서 사업체를 세운 젊은 실업가’라고 남편 B 씨를 소개 받았고 그로부터 6개월 뒤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결혼생활이 계속되면서 A 씨는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 시작했다. B 씨가 일본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도 정확하기 말해 주지 않을 뿐 아니라 해외 거래처 사람들을 만난다는 핑계로 외박도 자주 했던 것.
A 씨의 의뢰에 따라 조사단이 뒷조사를 한 결과 드러난 B 씨의 정체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가 일본에서 생활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유학생활과 직장생활을 이어온 것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호스트바에서 호스트 생활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한국에서 작은 식자재 납품 회사를 인수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해외 거래처 사람을 만난다는 핑계로 외박을 했던 데도 꿍꿍이가 있었다. 전부터 일본에서 알고 지내던 일본여성과 밀애를 즐기기 위해 거짓말을 했던 것.
조사단은 의뢰인 A 씨의 부탁에 따라 이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주변인들의 증언을 녹취하는 한편 B 씨의 과거 호스트 시절 사진 그리고 일본여성과의 휴대폰 통화 내역까지 뽑아다 줬다. 결국 A 씨는 재판을 통해 B 씨와 이혼했고 B 씨는 정신적·물질적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아 4000여만 원의 위자료를 A 씨에게 지급했다고 한다.
조사단은 의뢰받는 사건의 성격상 비밀스럽게 일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이들의 일은 <007> 같은 첩보영화에서나 볼 법한 상황들로 가득하다. 의뢰인이 제공한 배우자의 개인정보를 통해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뒷조사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숨겨왔던 학력이나 병력 그리고 집안 내력 등을 면밀히 파악해내기도 한다. 또 상황에 따라 고가의 첨단 장비를 동원, 집안에 몰래 도청장치와 카메라를 설치하고 자동차에 위치추적기를 달기도 한다.
김 실장은 “우리가 쓰는 장비는 대부분 외국에서 고가에 수입한 것들이다”며 “이런 것들을 설치하기 위해 집안에 몰래 숨어드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의뢰인과 협의 하에 의뢰인이 있을 때 설치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외도가 아니라 부부간의 성격차 등과 같은 문제는 딱히 재판에 유리한 증거를 잡기 힘들다”며 “이런 사안일 경우 의뢰인이 필요로 하는 증거를 잡아내려면 24시간 내내 집안을 감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습적으로 내뱉는 모욕성 발언이나 집안 기물을 부수는 등의 행동은 상대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큰 반면 증거 인멸이 쉽기 때문에 일일이 일상을 체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조사단의 업무 가운데엔 다른 흥신소 직원의 뒤를 추적하는 일도 간혹 있다. 의뢰인의 배우자에게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있을 경우 그 증거를 찾기 위해, 배우자가 의뢰인의 뒤를 캐려고 흥신소 직원을 고용했는지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다.
김 실장에 따르면 몇몇 조사단은 일부 이혼 전문 변호사와 연계해 업무를 진행하기도 한다. 변호사와 그 의뢰인의 원활한 소송 진행을 위해 의뢰인의 소장에 기록된 각종 사실들에 대한 증거물을 최대한 수집해 주는 것이다.
김 실장은 “우리 센터는 변호사와 고정적으로 일을 같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센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센터의 보수는 정하기 나름인데 보통 변호사는 의뢰인이 받아내는 위자료 등에서 10~20% 정도를 가져가고 센터는 다시 그중 20~30%가량을 변호사로부터 받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일부이긴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고 한다. 변호사의 의뢰인이 증거자료 수집을 희망할 경우 변호사가 의뢰인과 조사단 사이에서 ‘직거래’를 알선해주고 거래가 성사될 경우 조사단이 해당 변호사에게 수수료를 지불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에 따르면 조사단이 일에 착수할 때는 의뢰인이 소송에 유리한 입장인지, 소송에서 받을 최소 또는 최대 금액이 얼마인지, 의뢰 내용은 얼마나 까다로운지 등을 먼저 살핀 뒤에 보수 조건을 결정한다고 한다. 일단 일을 맡은 후에는 소송에 유리한 증거를 얼마나 많이 찾아 주느냐에 따라 보수가 달라지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 같은 보수 지급조건과 업무의 연동성 때문에 조사단들이 자연스럽게 변호사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게 김 실장의 설명이다. 또 아무리 조사단이 증거를 잘 찾아줘도 변호사가 믿을 만하지 못하면 수익도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조사단들은 유능한 변호사와 손잡고 ‘윈윈’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는 이미 이혼을 전문으로 처리해 주는 회사가 성업 중에 있다. 이들 회사에는 변호사팀과 함께 별도의 조사팀이 있으며 공식적으로 업무를 같이 진행한다. 이 이혼전문 회사의 조사관에 대한 사회 인식은 보험조사관과 유사하다고 한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