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아도 시청률이 최고라고?
<앞구정 백야> 출연진이 대본 리딩을 하고 있다. 왼쪽은 드라마 예고 동영상 캡처. 사진제공=MBC
하지만 <압구정 백야>는 철통방어다. 현재까지 ‘방송사 예능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라는 점과 어떤 배우들이 출연하는지 외에는 공개된 정보가 없다. 임성한 작가는 유명 배우를 주연으로 발탁하는 경우가 드물다. 항상 신인을 기용해 성공사례를 남기는 것이 그의 주특기다. 이번도 예외는 아니다. 신인 강은탁과 박하나를 주인공에 앉혔다. 재미있는 건 그들의 <압구정 백야> 출연 소식을 알리는 보도자료에조차 드라마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최근 공개된 짧은 영상 속에서 박하나가 “내 이름은 백야, 사람들은 나를 야야라고 부른다”고 말하는 모습을 통해 여성이 주인공이고, 제목인 <압구정 백야> 속 백야가 그의 이름이라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항상 독특한 작명으로 눈길을 끌었던 임성한 작가는 남자 주인공에게도 의미심장한 이름을 선물했다. 강은탁의 배역은 화엄이다. 강은탁은 남자 주인공 화엄 역을 맡으며 “호흡이 긴 드라마에 출연하게 돼 벅차면서도 두렵다. ‘화엄’이 매력 있고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짧은 각오를 전했다.
임성한 작가의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배역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지 못하는 편이다. 다른 드라마처럼 긴 시놉시스와 인물소개 자료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집필하는 작품마다 성공시키는 임성한 작가에 대한 믿음으로 출연을 결심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얼마 전 <압구정 백야>의 대본 리딩에 앞서 연출을 맡은 배한천 PD가 각각의 배역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구정 백야>의 두 주인공 강은탁(왼쪽)과 박하나.
두 신인 배우 외에는 일명 ‘임성한 사단’이라 불릴 만한 배우들이 다시 모였다. 한진희, 이주현을 비롯해 임성한 작가의 조카인 백옥담이 또 다시 출연하고 <오로라 공주>에서 나타샤 역을 맡았던 송원근도 합류했다.
임성한 작가의 컴백은 유명 스타들의 컴백만큼이나 화제를 모았다.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과연 어떤 문제작을 내놓을지에 대한 궁금증과 걱정이기도 하다. 임성한 작가의 작품은 소위 ‘막장’ 논란에서 자유로운 적이 거의 없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이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를 비롯해 갑작스러운 죽음과 귀신의 등장이 난무한다. <오로라 공주> 때는 개 떡대의 출연 분량이 엄청났으며, 남자주인공이었던 오창석은 드라마가 끝나기 전 사망해 퇴장했다. 그는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내가 죽는 걸 몰랐다. 대본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요한 건 임성한 작가가 계속 성공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성공이란 높은 시청률과 대중의 관심을 뜻한다. 임성한 작가의 작품은 항상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였다. 욕은 하면서도 챙겨보는 대중 때문에 시청률이 높게 나오고 이는 광고 판매로 이어져 방송사에 큰 이익을 안긴다.
특히 MBC는 임성한 작가의 덕을 많이 봤다. KBS 1TV 드라마가 ‘시작이 20%’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전했던 MBC는 임성한 작가가 쓴 <보고 또 보고>와 <인어 아가씨>로 연일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고, <아현동 마님>과 <오로라 공주>는 평일 저녁 시간대 시청자들이 채널을 MBC로 돌리게 만들었다.
이 시간대 드라마는 단순한 시청률 외에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바로 방송사의 메인 뉴스와 이어지기 때문이다. 시청 관성을 가지고 있는 시청자들은 보던 채널을 그래도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일일극의 시청률이 높으면 이어서 방송되는 메인 뉴스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오로라 공주> 방영 당시 개 ‘떡대’의 출연 분량이 엄청나게 많아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한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욕은 먹더라도 당연히 인기와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를 편성하고 싶을 것이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경영상의 이유로 돈 버는 드라마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MBC는 이미 ‘임성한 효과’를 톡톡히 봤기 때문에 여러 논란이 있더라도 임성한 작가의 차기작을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작 집필에 앞서 임성한 작가는 독특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포털사이트에서는 더 이상 임 작가의 정보가 검색되지 않는다. 올해 중순 검색 서비스에서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그의 전작인 <신기생뎐> <오로라 공주>부터 과거 작품은 <인어 아가씨> 등을 검색해도 ‘극본 임성한’이라는 정보는 모두 삭제됐다.
인물 정보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얼마든지 포털사이트 측에 요청해 삭제하거나 추가할 수 있다. 임 작가는 <오로라 공주>를 마친 후 포털사이트 측에 정보 삭제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임성한 작가는 남편의 죽음을 비롯해 작품과 관련된 여러 논란과 루머 등 여론에 치여 많이 지쳤다고 한다. 때문에 온전히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기 위해 포털사이트 등에 여과 없이 노출된 자신의 정보를 거둬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짐작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