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스토리] ‘그림자 실세’ 정윤회 ‘박근혜와 스캔들’ 정면돌파 까닭

‘아니 땐 굴뚝 연기’ 직접 진화 나섰다

[일요신문] 박근혜 대통령의 ‘그림자 실세’로 불리는 정윤회 씨가 8월 검찰에 출석해 세월호 사고 당일 자신과 박 대통령이 몰래 만났다는 내용의 보도에 대해 알리바이를 대며 이 내용을 보도한 일본 <산케이신문>에 대한 처벌 의지를 표명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로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비서실장’ 역할을 맡았음에도 나이(1954년 생)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인적사항마저도 공개하지 않으며 철저히 신비주의를 지켜왔던 정 씨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자신으로 인해 오해를 받자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다는 듯 일정 정도의 신상 노출을 불사하면서까지 검찰에 출석해 적극적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논란이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초기에 차단함으로써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의도로 읽히는 대목이다.

연합뉴스

검찰에 따르면 일본 <산케이신문>의 보도 내용과는 달리 정윤회 씨는 세월호 사태 당일인 지난 4월 16일 청와대에 출입한 흔적이 없고 평소 친분이 있는 한학자를 만났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정수봉)는 <산케이신문>의 허위 보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박 대통령의 사생활 의혹 당사자로 지목된 정 씨를 8월 15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8월 7일 자유청년연합 등 보수단체의 고발로 검찰 수사가 시작됐지만 명예훼손죄는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없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나 정 씨의 처벌 의지 확인이 중요했다. 

정 씨는 검찰 조사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당일 한학자를 만나고 있었고 청와대에 출입하지 않았다”고 진술하며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서울지국장을 처벌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는 지난 4월 16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청와대에서 꽤 거리가 있는 서울 강북의 모처 식당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한학자를 만나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진술했다. 이후 정 씨와 만난 해당 한학자도 최근 검찰의 참고인 조사에서 같은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한학자의 진술이 정 씨의 주장과 일치한 점과, 참사 당일 청와대 출입기록, 대통령 일정, 경호 관련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산케이신문>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 아닌 걸로 잠정 결론 내렸다. 또한 검찰은 휴대전화 발신지 위치 추적을 통해서도 두 사람이 실제로 청와대와 상당히 떨어진 서울 강북의 모처에 함께 있었던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정윤회 씨가 4월 16일 만난 것으로 알려진 한학자는 사주를 보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산케이 신문의 의혹 보도는 오보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산케이신문> 가토 지국장은 8월 3일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나’ 제하의 온라인 기사에서 박 대통령의 사생활을 둘러싼 루머를 언급하며 정 씨와 박 대통령의 밀회에 대한 내용을 내보냈다. <산케이신문>은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사건 발생 당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의 행적이 묘연하다고 지적한 뒤 ‘정권이 혼탁해질 만한 사태’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마치 비선의 누군가를 접촉한 것처럼 보도했다. 이는 과거 측근이었던 정 씨와의 접촉설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돼 파문이 일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8월 13일 세월호국정조사특위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박 대통령은 4월 16일 총 21차례의 유선 및 서면보고를 받았고 청와대 경내에 머물렀다”고 해명했다.

박 대통령의 이날 행적에 대한 논란은 지난 7월 국회서 열린 기관보고에서 야당과 청와대 김기춘 실장이 주고받은 문답에서 비롯됐다. 당시 야당은 ‘사고 당일 대면보고를 받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고 김 실장은 “대통령 동선을 모두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야당은 박 대통령의 동선을 밝히라고 채근했고 청와대는 “대통령 동선은 보안”이라며 즉답을 피한 게 결과적으로 논란을 키운 꼴이 됐다. 이 단계에서 자연스레 과거 비선이었던 정 씨가 등장했고 “그가 박 대통령과 만난 게 아니냐”는 식의 소문이 여의도 정가와 증권가에서 떠돌기 시작했다. 일본 극우 성향 매체 <산케이신문>은 지난 7월 중순 게재된 <조선일보>의 기명칼럼까지 인용해 가면서 관련 루머들을 전격 기사화하면서 논란은 사정기관으로까지 그 무대를 옮겼다.

8월 3일 일본 <산케이신문>이 보도한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나’ 제목의 기사.

박 대통령과 정 씨의 관계에 대해 무성한 소문들이 나돌았던 것은 정 씨의 이혼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특히 정 씨가 지난 5월 아내인 최순실 씨(지난 2월 ‘최서원’으로 개명)와 이혼 조정을 하며 재산권·양육권을 포기하는 대신 ‘결혼 생활 중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선 누설하지 않는다’는 특이한 조건을 달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박 대통령과 정 씨의 관계를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산케이신문>이 박 대통령의 사생활 의혹 기사에서 <조선일보> 칼럼을 인용해 정 씨의 이 같은 특이한 이혼조건을 거론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정 씨는 검찰 조사에서 논란이 된 해당 조건에 대해 관행인 줄 알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정 이혼을 할 때 합의문에 통상적으로 쓰이는 문구인 줄 알아 큰 의미를 두지 않았으며, 재산 등의 포기가 결혼생활 함구에 대한 반대급부가 아니었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등에서 비슷한 내용을 게재한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문제를 삼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산케이신문>과의 형평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조선일보>의 칼럼과는 달리 산케이 신문은 대통령의 사생활에 초점을 맞췄고, 칼럼에는 나오지 않는 의혹들에 대해 <산케이신문> 측이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가토 지국장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는 방안을 조심스레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라는 것 외에는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던 정 씨가 검찰 출두를 하면서까지 <산케이신문> 처벌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이유는 뭘까. 더 이상 박 대통령을 둘러싼 사생활 논란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정치평론가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정윤회 씨로서는 어떻든 보좌하는 입장에서 자신이 모셨던 어른이 자기로 말미암아 피해를 보게 생겼기 때문에 분명히 처벌 의사를 밝혔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있으면 ‘부적절한 만남’이라는 루머가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근거 없는 하찮은 얘기에 대응할 필요가 있겠나 싶겠지만, 말이 말을 만들며 불필요한 루머가 더욱 양산되는 형상이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