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걱정되는 ‘그날’ 여직원은 밉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사용자는 여성근로자가 청구하면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03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되기 전인 구법에서는 생리휴가를 유급으로 부여했으나 생리휴가를 법으로 보장하는 나라가 거의 없고 주5일 근무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무급으로 바뀌었다. 금융권 여직원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생리휴가 무급화를 법제화하기 이전의 생리휴가에 해당한다.
생리휴가수당 청구소송의 첫 스타트를 끊은 것은 한국씨티은행이다. 생리휴가 무급 법제화(2004년 7월 1일) 이전의 생리휴가는 법정 유급휴가로써 미사용한 휴가에 대해서 수당 청구권이 발생한다는 것을 자문변호사를 통해 인지하게 된 것. 이에 여직원들은 2005년 5월 은행장을 상대로 1298명의 생리휴가 수당 지급을 요청했다(임금청구권 소멸시효기간이 3년인 것을 감안, 2002년 6월~2004년 6월까지 24개월분을 청구).
금액으로 따지면 정규직 약 300만 원, 비정규직 약 100만 원 등 총 35억 원 규모에 해당하는 거액의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판결에 따라 거액의 소송이 잇따를 수 있어 근로자와 사용자 모두의 눈과 귀가 법원으로 쏠렸다. 1년 뒤인 2006년 5월, 서울지방법원은 여직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은행 측은 즉각 항소했다. 그러나 2006년 8월 해당 여직원들에게 18억 7000만 원(1인당 144만 원)의 수당을 지급했다. 결국 생리휴가 근로수당 청구권을 인정한 것. 은행 측의 항소에 2007년 5월, 서울고법 민사15부는 또다시 여직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2002년 6월부터 2년간의 생리휴가 근로수당을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권에 미사용 생리휴가수당 공동 청구 소송이 진행됐다. 사무금융연맹이 산하 21개 노조 6000여 명을 모아 생리휴가수당 청구를 위한 집단 소송에 들어간 것. 2006년 9월에는 한국은행 우리투자증권 교보생명보험 동양생명보험 등의 여직원들이, 2006년 10월에는 대한투자증권 교보증권 하나증권 등의 여직원들이, 2006년 11월에는 서울보증보험 알리안츠생명 등의 여직원들이 청구소송에 나섰다. 총 17개 사업장, 4817명의 여직원들이 사용하지 않은 생리휴가 수당을 받겠다고 나섰다.
법원은 서울보증보험 여직원 277명이 낸 생리휴가 근로수당 지급 청구 소송에서도 “8만∼300만 원의 수당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한국은행 여직원 553명이 제기한 소송도 여직원들이 승소했다.
은행들은 소송비용을 분담하는 등 적극적인 공동대응 체제를 갖추기도 하였으나 이어지는 법원판결에 분위기가 반전됐다. 노사합의에 따라 소송을 취하하는 곳도 생겨났다. 2006년 12월 동양생명보험은 304명에게 8700만 원을, 같은 달 메트라이프생명도 186명에게 4800만여 원을 지급했다. 교보생명은 2007년 6월 1313명에게 7억 1800여 만 원을 지급했다. 알리안츠생명은 2006년 성과급제도 관련 마무리 교섭 과정에서 수당 미지급 상태에서 소송 취하에 합의했다.
사무금융노조 김금숙 여성국장은 “나머지 기업들도 올 상반기 대부분 합의를 통해 생리휴가수당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국장은 “생리휴가를 사용하려고 하면 ‘정말 그날이 맞느냐, 왜 날짜가 자주 바뀌느냐, 너무 자주 하는 것 아니냐’는 등 노골적인 핀잔이 많아 사용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돈보다는 휴가를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더욱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손해보험 노조가 각 손보사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생리휴가 사용 빈도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7.4%가 ‘전혀 사용하지 않음’으로 답변해 현장에서 생리휴가의 사용이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생리휴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55.9%가 ‘부서(장) 분위기(눈치)’때문이라고 답변, 마음 놓고 휴가를 쓸 수 있는 조직내부의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소송에 남성들의 의견은 엇갈리는 상황이다. ‘군 가산점이 폐지된 상황에서 여성들만 사용할 수 있는 생리휴가는 오히려 역차별이 아닌가’ ‘고통이 없는 사람은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남자도 한 달에 한 번 마법에 걸리고 싶다’는 등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었다.
반면 ‘같이 살아가야할 동료이며 내 어머니이며, 누나이며, 동생이며, 아내이며 딸의 입장으로 생각한다면 억울할 것도 없다’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한다면 문제될 것 없다’ 등 긍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녹십자생명 박주이 교육부장은 “업무상의 이유로 날짜를 제때 맞추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사전에 충분한 조율을 거친 뒤 사용한다면 업무 효율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영 객원기자 may424@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