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180억’ 말 못할 과거있나
그런데 이 사건에는 박 전 장관뿐 아니라 그의 부인 현경자 씨와 처남 현 아무개 씨 그리고 전·현직 측근 인사들까지 연루되어 있다. 박 전 장관의 고소 이전에 이미 부인과 처남도 각각 십수억대 횡령 혐의로 A 교수를 고소한 것. 또한 박 전 장관은 경북고 동기동창이자 오랫동안 자신의 재산을 관리해왔던 전직 은행지점장 서 아무개 씨를 역시 횡령 혐의로 고소해 현재 송사가 진행 중이다.
박 전 장관 일가는 왜 이렇게 여러 건의 고소 사건을 일으킨 것일까. 박 전 장관 일가에게 고소당한 A 교수는 누구이며 무슨 연유로 고소를 당한 것일까. 또 고소 사건의 대상이 된 180억이라는 거액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박 전 장관을 둘러싼 거액 횡령 고소사건에 궁금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박 전 장관을 포함해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상대로 송사의 내막을 추적해보았다.
이번 송사가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박 전 장관의 처남인 현 씨를 통해서였다. 박 전 장관의 부인 현경자 씨의 손아래 동생인 현 씨는 얼마 전 기자와 만나 “박 전 장관으로부터 거액을 위탁받아 관리해오던 A 교수를 16억 원 횡령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박 전 장관은 (A 교수를 상대로 한) 또 다른 거액 송사의 직접적인 당사자이기도 하다”며 저간의 사정을 자세하게 털어놓았다.
현 씨의 주장에 따르면 A 교수는 박 전 장관의 자금 관리를 위탁받았던 인물인데 그가 이 과정에서 박 전 장관의 돈 180억 원가량을 횡령했다는 것이다. 또 그는 “그 자금의 일부는 박 전 장관의 처가 쪽의 것이며, 그래서 누나(현경자 씨)와 내가 A 교수를 고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현 씨는 “박 전 장관도 직접 자신의 이름으로 18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A 교수를 검찰에 고소한 상태로 알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만약 현 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박 전 장관은 장관과 국회의원 등을 지냈고 현직 변호사로 활동하는 공인. 대체 박 전 장관이 A 교수에게 관리를 맡겼다는 180억 원의 출처는 어디일까. 박 전 장관은 A 교수와 어떤 관계이기에 이 같은 거액을 맡길 수 있었던 걸까. A 교수는 왜 그 자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는 것일까.
현 씨는 이에 대해 “박 전 장관과 A 교수는 1995년에 처음 만났고 그 후 오랫동안 긴밀한 인연을 맺어왔다”면서 “원래 박 전 장관의 자금을 관리하던 인물이 따로 있었으나 A 교수가 더 높은 이율을 보장해 거액을 맡기게 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현 씨가 주장하는 박 전 장관과 A 씨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이들의 입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과거 10여 년 넘게 박 전 장관을 보좌했다고 하는 한 측근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박 전 장관과 A 교수의 ‘만남’은 한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자금을 위탁했다는 얘기도 마찬가지다”라고 전했다.
박 전 장관의 또 다른 옛 측근은 “A 교수가 박 전 장관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을 당시 박 전 장관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위탁받았는데 관계가 정리되고도 돈을 돌려주자 않아 박 전 장관이 A 교수를 고소한 것”이라며 “A 교수는 ‘박 전 장관이 준 돈은 그보다 적은 액수이며 과거 인연을 맺었을 때 받은 돈이므로 돌려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소한 박 전 장관이 A 교수에게 거액의 자금을 위탁한 일은 사실인 듯하다. 박 전 장관은 물론 피고소인으로 알려진 A 교수의 가족 그리고 사건을 맡은 검찰 쪽에서도 박 전 장관을 둘러싼 거액의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맡은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청의 담당 검사는 박 전 장관과 관련된 횡령사건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자세하게 답할 수는 없다”면서 “현재 여러 고소건이 중첩돼 있어 수사가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라고만 전했다.
지난 15일 서울 강남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박 전 장관은 180억 원대 횡령 고소사건에 대한 질문에 “현재 수사 중에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어떠한 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특히 그는 “내 돈을 뜯어가기 위해 몇몇 사람이 떠들고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언짢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또 그는 자신과 A 교수에 대한 주변의 얘기에 대해 “지금은 아무것도 말할 수 없고 수사가 끝난 뒤 결과를 보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덧붙였다. 이어 박 전 장관을 보좌하는 사무실 직원 역시 “최근에 박 전 장관에 대해 근거 없는 음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에 대해 나중에 적절한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피고소인인 A 교수 역시 고소사건에 관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상황. A 교수는 현재 휴직계를 내고 학교에도 나오고 있지 않고 있으며 외부와도 접촉을 끊고 있다. 그의 변호를 맡고 있는 담당 변호사 역시 “이번 소송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A 교수의 친언니를 통해서 고소사건에 대한 입장을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A 교수의 친언니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박 전 장관에게 받은 돈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우리는 아무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언론에서 취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현재 동생은 투병 중에 있으며 지방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상태”라며 “동생을 고소한 이들을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만약 억울한 일이 있으면 우리가 직접 언론에 호소를 하겠지만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박 전 장관을 둘러싼 여러 건의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 하지만 양측 당사자들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 정확한 소송의 내막을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번 고소사건과 관련해 경찰은 고소인과 피고소인 조사를 마친 상태고 현재 박 전 장관과 A 교수의 대질심문 절차만 남겨둔 것으로 알려졌다.
양자의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이번 송사는 법정에서 흑백을 가리게 될 전망이다. 아울러 180억 원의 향배 역시 재판 과정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정에서 180억 원의 출처까지 밝혀질지는 미지수다. 박 전 장관의 몇몇 예전 측근들은 이 돈이 과거 정권 실세 시절 박 전 장관의 비자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박 전 장관 측은 거액의 출처에 대해 자신과 일가친척들의 자금을 모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액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미모 여교수와 옛 정권의 실력자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관련된 고소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류인홍 기자 ledhong@ilyo.co.kr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