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뜨면 골치 아파져”
신 씨의 이감이 이뤄질 때마다 해당 교도소 측에서는 ‘비상’이 걸린다는 웃지못할 얘기가 들린다. 이번에도 교도소 측에서는 굳이 ‘티’를 안내려했지만 신 씨가 옮겨온 후 초비상이 걸렸음은 말하나마나다. 특히 신 씨가 치료를 위해 교도소 밖의 장소인 병원을 오갔다는 점에서 재소자 관리 책임을 지고 있는 교도소 측으로서는 적잖은 부담이 됐을 거라는 얘기다.
재소자 및 출소자들에 따르면 실제로 신 씨 같은 ‘요주의 인물’의 경우, 보통 6개월마다 한 번씩 다른 교도소로 이감을 시킨다고 한다. 교도소 내에서는 보통 ‘코꿴다’는 말을 쓰는데 ‘문제성 있는’ 재소자가 한 곳에 오래 머물 경우 교도소에 익숙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시로 이감을 시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 씨의 이감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5년 8월에도 신 씨는 복역 중이던 대전교도소에서 청송교도소로 이감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의 이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4년 말 청송교도소에서 대전교도소로 이감된 지 약 8개월 만에 그는 다시 청송으로 극비 이감됐다.
당시 신 씨의 남동생은 “교도소 측에서 형님을 무척 괴롭힌 걸로 안다. 형님이 많이 고생한 것 같고 힘들어했다고 하더라. 여러 가지 처우가 좋지 못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형님이 다시 청송으로 보내달라고 해서 옮기게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전교도소 측에서는 “신 씨의 이감은 신 씨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용처우상의 문제”라고 답변했다. “신 씨의 경우 아무래도 좀 더 각별한 주의를 요하는 것이 사실이다. 대전교도소의 경우 시설구조상 신 씨를 수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판단하에 이감을 결정했다. 6개월~1년마다 재소자들을 적절한 수용기관으로 옮기는 것은 신 씨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 대전교도소 측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신 씨는 줄곧 ‘청송’에서 수감생활을 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요주의 인물’들 위주로 행해지는 ‘수용처우상의 이감’도 신 씨에게는 어려울 듯 보인다는 것. 이감 과정 자체도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매번 양쪽 교도소 인력들이 초긴장해야 하는 비상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송교도소 관계자는 “여기는 100% 독방 시스템이다. 신 씨처럼 유명한(?) 인물일 경우 다수의 장기수들을 관리하는 대전교도소보다는 아무래도 이곳에서 관리하는 것이 수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어디서도 신 씨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 신 씨는 재검거된 후 착실하고 모범적인 수용생활을 하고 있지만 어떤 교도소에서도 신 씨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 “청송외에는 갈 곳이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