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소자라고 맘대로 해도 된다 이거요?
▲ <일요신문>이 입수한 ‘탈주범’ 신창원의 자필 서신. 교도소 안의 부조리와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 ||
영화사와 국가를 상대로 또 한번 ‘큰일’을 치르고 있는 신 씨의 근황을 신 씨의 최근 서신과 지인을 통해 자세히 알아봤다.
지난 97년 1월 부산교도소를 탈출, 2년6개월 동안 신출귀몰한 도피행각을 벌이다 99년 재검거된 신 씨의 파란만장한 얘기는 영화사들이 눈독을 들이는 소재 중의 하나로 거론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유는 ‘신창원’이라는 인물의 파급효과로 인한 흥행성 때문이다. 영화사 안팎에서는 신 씨가 전례없는 탈옥기록을 세웠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의 성장환경 및 범행수법, 도피과정에서 남긴 무수한 뒷얘기들, 그리고 탈주과정에서 남긴 세심한 기록들 및 ‘신창원의 여인들’을 둘러싼 수많은 비화들은 충분히 흥행의 요소를 갖췄다는 것이 영화업계의 평이다. 심지어 ‘신 씨의 도피행각에 농락당한 수많은 경찰인력들과 그 가족들만 극장을 찾아도 흥행은 보장된다’는 웃지못할 얘기까지 나올 정도니 영화사들의 ‘러브콜’도 무리는 아니다.
신 씨의 측근에 따르면 실제로 신 씨는 검거된 이후 상당히 많은 영화사로부터 ‘영화제작’ 요청을 받아왔다고 한다. 개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영화사 및 감독들도 있었지만 심적으로 복잡한 상황에 있던 신 씨가 원하지 않아 결국 무산됐다는 것이 이 측근의 전언이다.
그런데 최근 신 씨가 화가 난 이유는 일부 영화사가 신 씨와 정식 계약을 하지 않고 그의 얘기를 영화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신 씨는 “내 얘기를 다루려하면서 당사자인 나와 계약하기는커녕 통보조차 하지 않고 영화사 마음대로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내가 아무리 안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이럴 수는 없다”며 적잖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보도를 접한 신 씨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제작되는 것에 찬성한 바 없다며 지난 2월 중순경 씨네2000 측에 ‘내 허락없이 영화를 만들면 법적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지난 10일 씨네2000 이춘연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신 씨로부터 위 내용이 담긴 서신을 받은 적이 있으며 <거북이가…>라는 영화를 준비 중인 것도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이 영화가 ‘신창원’을 소재로 한 영화는 아니다”라고 시비가 일고 있는 부분을 부인했다.
“신창원이라는 실존인물을 다룬다면 당연히 신 씨 측과 사전협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준비 중인 영화는 시골의 한 경찰서에서 무위도식하는 형사에 대한 것으로, 그 마을에 탈주범이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얘기다. 영화 전체가 충청도 사투리로 되어 있는 등 신창원 씨 사건과는 관계가 없다. 다만 극 중 탈주범이 등장하다보니 일부 언론에서 탈주범의 대명사로 통하는 ‘신창원’을 끌어붙인 것 같다. ‘이동건이 신창원 역을 맡는다’는 식의 보도 역시 그래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신 씨에게 항의를 받았고 해당 언론사에 그 기사를 내리도록 요청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서신을 신 씨에게도 보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신 씨를 소재로 제작한다고 알려진 영화는 또 있다. 신 씨는 최근 영화사 관계자를 통해서 “‘동양시네픽쳐스’라는 곳에서 <탈주>라는 영화를 준비 중인데, 판권계약은 수감 중인 신 씨 대신 신 씨의 누나와 정식으로 했다”는 내용의 통지를 받았다. 하지만 신 씨가 확인한 결과 누나는 어느 누구와도 계약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에 신 씨는 동양시네픽쳐스 측에 내용증명을 보내며 누나와 계약한 것이 사실이면 계약서 사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1999년 7월 전남 순천에서 붙잡힌 뒤 부산으로 압송돼온 신창원이 탈출했던 부산교도소에 재수감되는 모습. | ||
현재 신 씨는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얘기를 영화에 담으려는 일부 영화사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고 그럼에도 자신의 경고가 통하지 않을 경우엔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신 씨는 ‘탈옥수’가 등장하는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 측에서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에도 애꿎게 자신의 이름을 투자자 모집이나 홍보에 이용하려는 듯한 의도까지 엿보인다며 불편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신 씨는 국가를 상대로도 중요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또다른 주목을 받고 있다. 신 씨의 한 측근에 따르면 신 씨는 지난 2월 재소자들의 인권 및 처우개선을 골자로 한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고 한다. 이 소장은 현재 접수가 완료되어 사건번호를 받은 상태로 조만간 재판이 진행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신 씨는 한 지인에게 보낸 서신에서 “내가 아무리 성실히 살아도 윗분들의 편견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며 힘든 심정을 토로했다. 이 서신에선 또 “기본적인 처우를 받기 위해서 나는 매번 밑바닥까지 망가져야 하는 현실에 두손 들고 말았다”며 소송을 진행하게 된 배경에 대해 밝히고 있다.
“아프고 병에 걸려도 좀처럼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다. 앞으로 담 안의 잘못된 제도와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신 씨는 “추후 내가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라도 교도소 안에서 재소자들을 상대로 벌어지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부분들이 세상에 드러나게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소송문제를 놓고 신 씨는 상당히 오랜 고민을 했으며 적잖은 심적 갈등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신 씨가 가장 우려한 것은 세상 사람들의 편견. 서신을 통해 신 씨는 “법정에 서는 것이 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모습으로 비춰질까봐 싫었고 나를 보살펴준 많은 분들에게 누가 될까봐 참고 자제를 했었다”며 그간의 복잡한 심경을 밝혔다. 하지만 신 씨는 “이제는 (주변의 시선이나 편견에 상관없이) 문제 해결에만 전념하려 한다. 이 일로 인해 내가 지금보다 몇 배 더 힘들어지겠지만 문제를 개선하는 데 조그마한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