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역사학자 이이화의 첫 책으로 초판 출간 당시 독서계에 허균 바람을 일으켰던 ‘위험한 책’ <허균의 생각>이 수정·보완을 거쳐 새로 출간되었다. 신군부가 등장한 1980년에 월간 <뿌리깊은나무>가 강제로 폐간당한 후 같은 회사에서 단행본으로 처음 출간되었고 한때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번 개정판에는 허균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글을 추가로 풍부하게 실었다. 이 책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나 끝내 역모죄에 얽혀 능지처참에 처해졌던 허균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사상을 오롯이 담고 있다.
허균은 정치의 바탕을 민본에 두었다. 이와 관련한 그의 대표적인 글로 <호민론>을 꼽을 수 있다. 허균은 <호민론>에서 민중을 ‘호민’, ‘원민’, ‘항민’으로 나누어 각 부류의 정치성향을 분석했다. 항민은 무식하고 천하며 자기의 권리 및 이익을 주장할 의식이나 지식이 없는 우둔한 민중을 말한다. 원민은 부당한 사회에 대한 의문을 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소시민이나 나약한 지식인을 말한다. 호민은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 저항하고 도전하는 무리이다.
허균의 ‘호민’은 그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에서도 잘 나타난다. 빈민을 구제하고 썩은 관료계급을 베어버리고 토호가 날뛰는 것을 막으며, 민중을 착취하거나 억누르는 세력이 없는 이상국가인 율도국을 건설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얼들을 대표하여 개혁을 꾀하다 죽은 서양갑과 친분을 나누고 그를 후원하며 이론적인 뒷받침이 되었던 점에서도 허균의 급진적 정치성향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허균이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조일전쟁(임진왜란) 이후의 시대상황과 그의 집안내력을 살핀다. 그리고 정치, 학문(종교), 문학의 세 갈래로 그의 삶을 재조명한다. 사대부 자제로서 유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는데도 당대 권위에 과감히 도전했던 그의 고발정신과 저항정신, 그리고 개혁의지와 냉철한 현실인식은 지금의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개혁사상가 허균, 오늘의 우리에게 허균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이화 지음. 교유서가. 정가 1만 5000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