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도 학교도 가정도 뚜껑 열렸다
▲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서울시 양천구에 사는 고3 여학생 신 아무개 양은 지난달 29일 MBC에서 방영된
온라인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주장은 오프라인 모임으로 진화했다. 오프라인 모임이 처음 열리던 지난 2일, 고3인 신 양도 학원에 가야한다는 핑계를 대고 학교를 조퇴하고 청계천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촛불 집회에 참가한 연령층 중 신 양은 나이가 많은 편에 속했다. 중1 정도밖에 되지 않는 동생들도 적지 않아 보였다.
2일 청계천에서 열린 촛불집회는 3일과 4일 그리고 6일에도 이어졌다. 정부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10대들의 집회 참여는 늘어갔다. 지난 9일엔 전 세대로 확산돼 전국에서 2만여명이 참가했다. 신 양은 “중고등학생들은 주로 온라인 ‘댓글놀이’를 통해 정보를 접하기 때문에 정부에서 어떤 해명을 내논다 해도 잘 듣지 않게 된다”고 말해 정부의 해명이 학생들에게는 좀처럼 먹혀들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각종 사이트의 온라인 게시판은 이미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찬성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한 ‘성토장’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실제로 온라인상에서 네티즌들의 댓글을 보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부각시키는 글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간간이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식의 댓글이 올라오면 그 댓글에는 수많은 반박글이 달리는데 그 중엔 상대를 무참히 짓밟는 인신공격성 글도 적지 않다.
이처럼 10대들의 반대 여론이 줄어들지 않자 정부에서는 배후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경찰과 검찰은 배후세력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됐다. 국정원 일부 직원들도 촛불집회 분위기를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다.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판단에서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본래 업무도 많은데 중고생들 뒷꽁무니 쫓아다니기에 정신없다”고 푸념을 늘어놨다.
▲ 한승수 국무총리가 지난 8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
광우병 광풍은 언론계에도 거세게 불어왔다. 조선 동아 중앙 문화 등 보수신문들은 쇠고기 협상 타결 이후 먹거리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다 정부가 뒤늦게 해명에 나서자 정부 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7일자 사설에서 ‘미국서 광우병 발생하면 즉각 수입중단이면 됐다’라는 사설을 통해 정부 측의 발표를 옹호했다. <동아일보>는 지난 9일자 1면에서 ‘광우병 괴담 근거 없는 과정 많다’라는 기사를 통해 역시 정부 측의 입장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나타냈다. 상대적으로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적 신문들은 정부 측의 해명을 비판하거나 이를 옹호하는 보수 신문들의 행태를 지적하고 있다. 지난 정부 때 제2의 국정홍보처라 비판받던 신문들이 이제는 정부 측의 입장을 앞장서서 비난하며 공수가 뒤바뀐 모습이다.
일반음식점도 마찬가지다. 지난 7일 서울 신문로에 위치한 한 곱창집. 곱창, 대창 등 소의 내장 부위를 주로 판매하는 이 가게는 평소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볐으나 쇠고기 파동 이후 손님이 절반으로 줄었다. 대형마트에도 쇠고기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상대적으로 돼지고기의 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치고 있다. 최근 서울에서 발생한 AI(조류 인플루엔자) 때문에 닭고기 소비마저 줄어든 상태여서 국민들은 먹거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상대적으로 요식업에 종사하는 업주들은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며 한숨 짓고 있다.
햄버거를 파는 패스트푸드점도 울상이긴 마찬가지. 햄버거에 들어가는 쇠고기 패티가 광우병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는 소문이 나면서 매출이 줄어들었다.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쇠고기를 들여온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해도 효과는 거의 없다.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산, 호주산, 뉴질랜드산 심지어는 한우까지도 소의 원산지 구분이 무의미해진 셈이다.
현재 정부는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여론 진화에 애쓰고 있다. 과학자들과 민간 경제단체까지 나서 정부 측 입장을 거들고 있지만 ‘민심’은 좀처럼 이들의 진정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아무리 정부가 광우병 발병 확률이 낮다고 주장해도 국민들은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의 말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정부 측이 일정대로 15일 쇠고기 합의안 장관 고시를 발표하면 성난 민심이 어디로 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국면이다.
‘뼛조각의 추억’이 광우병 논란을 키운 것일까. 이미 지난해 들어온 미국산 쇠고기에서 여러 차례 뼛조각이 발견됐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사태의 본질은 정부가 쇠고기 시장을 완전히 개방, 광우병 발병의 위험이 국민들 피부에 와 닿은데 있지만 한편으로는 신뢰받지 못하는 미국의 검역체계도 한몫했음이 분명해보인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