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봐주며 싹튼 밀월 ‘선’ 넘었나
▲ 조풍언( 대우정보시스템 대주주68)가 지난달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는 모습. 연합뉴스 | ||
이미 <일요신문>에서도 보도한 것처럼 구 씨는 손대는 주식마다 상종가를 치는 등 증권가에서는 ‘미다스의 손’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재미교포 무기중개상 조풍언 씨의 숨겨진 재산을 찾는 과정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구 씨의 이름이 검찰 수사망에 오르내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요신문>은 두 사람의 숨겨진 인연을 추적해봤다.
구본호 씨는 증권가 ‘미다스의 손’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그에 대해 알려진 건 거의 없다. 범한판토스와 레드캡투어의 최대주주지만 실제로 경영일선에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에 외부와의 접촉이 거의 없다. 오히려 LG가 3세로 구본무 현 LG그룹 회장과는 육촌지간이라는 사실로 더 유명하다. 물론 LG 쪽에서는 구 씨와 관련된 기사가 보도될 때마다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뺀다. 그런 구 씨가 난데없이 조풍언 수사에 이름을 올리며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재계인사들에 따르면 조풍언 씨와 구본호 씨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구 씨의 아버지 구자헌 씨로부터 시작된다.
LG 구본무 회장과 오촌지간인 고 구자헌 씨는 30년 전 한국과 LA를 기반으로 물류업과 캐피털 사업 그리고 여행업을 시작했다. 핵심사업이었던 물류사업은 LG그룹(당시 럭키금성)과의 거래를 바탕으로 성장해 나갔다. 당시 구자헌 회장이 창업했던 회사가 지금의 범한판토스(구 범한물류)와 레드캡투어(구 범한여행사)다. 현재 범한판토스의 최대주주는 구본호 씨지만 실질적인 경영은 어머니 조금숙 씨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구 씨는 매해 100억 원 이상의 배당금을 회사 측으로부터 받고 있다고 한다.
구자헌 전 회장은 LA를 기반으로 사업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LA 한인사회의 재력가인 조풍언 씨를 만나 가깝게 지내게 됐고 이후 막역한 사이로 발전해갔다고 한다. 조 씨는 이미 알려진 대로 무기중개업 이외에도 LA에서 호텔과 골프장을 운영해 교포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재력가였다.
어렸을 때부터 LA와 일본 등을 오가며 공부를 했던 구본호 씨는 주로 LA에 적을 두고 자라왔다. 특히 LA에 있는 동안에는 아버지의 막역한 친구였던 조 씨와도 잦은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조 씨는 구 전 회장과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아들뻘인 구본호 씨를 각별하게 대했다고 한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던 구 전 회장은 신장이 좋지 않은 관계로 주로 LA에 머물며 치료를 받다가 90년대 말 작고했다. 구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조 씨는 당시만 해도 20대였던 구본호 씨의 실질적인 후견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LA에서 구 씨와 관련된 일들에 대해서 조 씨가 적극적으로 도왔다는 것.
최근 몇 해 들어서는 입장이 바뀌어 구 씨의 투자에 조 씨가 높은 관심을 나타내며 투자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구 씨는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에도 자주 LA를 오갔다.
구 씨는 LA 한인사회에서도 유명한 인물이다. 다만 구 씨의 정확한 정체보다는 능력 있는 인물이자 상당한 재력가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미국 시민권자이기도 한 구 씨는 미국 이외에도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교육을 받았고 영어와 일어, 중국어에도 상당히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M&A와 금융 등 경제 관련 지식이 뛰어난 것으로 한인재력가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구 씨가 한국에서 손대는 종목마다 대박을 터뜨렸던 것도 이러한 그의 식견이 한몫했던 셈이다.
LA 지역 한 인사에 따르면 구 씨가 한국 증권가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릴 정도로 한국에서 주목받는 인물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교포사회에선 구 씨의 정체(?)보다는 그의 큰 씀씀이가 호사가들 사이에서 회자됐다는 것. 특히 ‘와인 귀공자’라는 그의 별칭은 교포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명하다고 한다. 구 씨는 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바(Bar)에 들러 비싼 와인을 미리 주문해 놓고 마시기 때문에 이 같은 별명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구 씨의 씀씀이를 보고 그가 상당한 재력가일 것이라고 미뤄 짐작하기만 했다고 한다. 그만큼 교포사회에서도 구 씨는 베일속의 인물이었던 것.
검찰이 구 씨를 불러 조사한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조 씨가 구 씨로부터 내부정보를 흘려듣고 차익을 얻었는지이며 다른 하나는 조 씨가 구 씨를 통해 김우중 전 회장의 돈을 세탁했는지 여부다.
한편 검찰은 이번 레드캡투어 유상 증자 이외에도 구 씨의 투자회사에 조 씨의 또 다른 자금이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구 씨가 증권투자라는 형식으로 조 씨의 재산을 관리해줬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 현재 구 씨는 동일철강, 엠피시, 엑티패스 등에 지분을 가지고 있다.
검찰은 대검에서 수사하는 것과는 별도로 서울중앙지검에서도 구 씨의 증권거래법 위반 여부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구 씨는 검찰에서 레드캡투어 유상증자에 글로리초이스차이나가 참여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관련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검찰은 미주 한인신문 <선데이저널>이 지난 2월 보도했던 재벌 3세의 거액해외도박 의혹에 대해서도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선 여기에 구 씨가 관련됐을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편 검찰은 조풍언 씨의 재산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조 씨의 부인인 이덕희 씨의 동생 이 아무개 씨를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국내 유명 여성 아나운서의 시어머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