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종로 옥인동 일대, ‘매국노 아이콘’ 이완용 저택의 진실 추적
이완용은 당시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수천 만 평의 땅을 받았습니다. 조선의 왕 다음으로 가장 재산이 많았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경술국치 이후 약 10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이완용 재산에 지금도 관심이 쏠리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온라인 공간에선 ‘이완용의 대저택이 종로 한복판에 아직도 있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넘쳐 납니다. 과거 이완용이 살았던 저택의 모습과 유사한 사진이 떠돌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사실일까요? ‘일요신문i’가 이완용의 집터로 알려진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 일대를 찾았습니다.
‘이완용 저택’ 관련 게시물. M 커뮤니티 게시판 캡처
대형 포털 사이트에 ‘이완용 저택’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오늘날에도 그대로 보존 중인 이완용 저택’, ‘현재도 남아있는 이완용의 저택’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게시물의 내용은 대부분은 비슷합니다.
게시물엔 “이완용 장례식 기사(1926년 2월 13일자 매일신보)에 나타난 이완용 가옥”이라는 설명과 함께 사진이 있습니다. 동시에 “이완용이 1913년 새로 지어 1926년 사망할 때까지 거주한 종로구 옥인동 가옥”이라는 설명과 또 다른 사진도 보입니다.
온라인 공간에 공유된 이완용 저택 과거 사진(좌), 현재 사진
캡처한 게시물 속 사진들이 보이시나요? 얼핏 보면 두 개의 집은 상당히 비슷해 보입니다. 원형 기둥은 물론 2m 정도 앞으로 나와 있는 출입구의 모습도 유사합니다. 누리꾼들은 이를 토대로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이완용의 저택이 남아있다고 추정합니다.
이들은 또 “개인 소유로 보이는 이완용 저택을 서울시에서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서울 한복판에 ‘만고의 역적’ 이완용의 집이라니…과연 이곳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는 걸까요?
친일파 이완용(좌)와 고종 황제
일제강점기는 친일 매국노들의 ‘전성시대’였습니다. 종로 옥인동 일대는 친일파 윤덕영의 벽수산장이라는 서양식 저택과 14동의 한옥이 있었습니다. 옥인동의 절반인 2만평이 윤덕영의 차지였습니다.
이완용도 옥인동 19번지 일대를 중심으로 4000평을 매입해 윤덕영 못지않은 저택을 지었습니다. 이완용 저택은 전형적인 조선 정승의 99칸짜리 기와집이었고 이완용은 그 한 모퉁이에 2층짜리 양옥을 짓고 살았습니다. 이완용과 윤덕영은 일본에 충성한 대가를 받아 자자손손 혜택을 누렸습니다.
이완용은 서울역 인근의 약현(현 중림동)에 살았지만 1907년 헤이그 밀사에 관련해 고종의 책임을 추궁해 퇴위를 강요한 결과, 성난 민중에 의해 이완용의 집은 불에 탔습니다. 이곳 옥인동으로 거처를 옮긴 까닭입니다.
이완용은 이재명 의사에게 칼에 찔리는 테러를 당한 이후 평생 동안 불안에 시달리다가 1926년 2월 11일 종로구 옥인동 자신의 집에서 병사했다고 합니다. 이완용이 종로 옥인동 일대에 거주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옥인동 19번지 안내 도로 표지만(좌)와 길 안내판
6월 12일 오후 12시경 기자는 이완용의 흔적을 찾기 위해 종로구 옥인동 19번지 일대에 도착했습니다. 옥인동은 청와대와 경복궁과 가까운 곳입니다. 약 100년 전, 조선의 최고위층 양반가들만이 이곳에 거주했다고 합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옥인동 절반이 이완용 땅이었다. 19번지 쪽은 전부 이완용 소유였다”며 그 이후에 토지가 쪼개졌고 개인이 소유 중이다”고 밝혔습니다. 옥인동의 한 주민은 “옥인동 전체가 이완용 집터였다. 그 위세가 대단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옥인동 지도. 네이버 지도 캡처
지도가 보이시나요? 과거의 면적과는 차이가 있지만, 이완용이 과거 상당한 규모의 토지를 소유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공인중개사도 “옥인동 19번지 일대가 이완용 집이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완용은 한일 한방 이후인 1910~1926년까지 영달을 추구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 시기는 일제에 의해 토지조사 사업과 임야조사 사업이 이뤄지면서 많은 땅이 국유지로 변했고, 그 국유지가 이완용 등의 ‘합방공신’들에게 대거 불하됐습니다.
옥인동에 있는 아름다운 재단(좌)과 옥인교회(우)
이완용 집터는 옥인동 19번지(2817평), 18번지(280평), 2번지(646평) 등 3필지로 약 4000평에 가까운 규모였다고 합니다. 광복 후 필지가 분할되면서 여러 부속건물들은 사라졌고, 현재 옥인교회, 아름다운재단, 길담서원 등이 이완용 집터 위에 있습니다.
옥인교회 관계자는 “옥인교회 부지뿐만 아니라 옥인동 전체가 이완용 집터였다”고 전했습니다.
옥인동 인근 저택
그렇다면, 누리꾼들이 성토한 저택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기자는 누리꾼들이 ‘이완용 저택’으로 지목한 옥인동 19-10번지에서 저택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인터넷에 공유된 사진 속 저택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주변 일반주택과 건물과 달리, 저택은 흡사 ‘서양식 궁궐’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이웃주민들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저택 인근에 사는 주민은 “일제강점기 시절 이완용이 거주했던 주택은 아니다. 지은 지 얼마되지 않은 주택이다”며 “가이드가 관광객들한테도 이완용 저택이라고 설명하는데…외관이 올드풍이라서 다들 오해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옥인동 인근 저택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이완용 저택이 아니다”며 “20년 전 우리가 왔을 때 저런 집은 없었다. 오히려 공터에 가까웠다. 옥인동 일대가 이완용 집터인 것은 맞지만 이 집은 개인이 새로 지은 저택이다”고 설명했습니다.
옥인동 19-10번지 부동산 등기부를 살펴보면, 더욱 확실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등기부에 따르면, 건물 소유자 윤 아무개 씨는 2003년 11월 4일 ‘소유권보존등기’를 했습니다. 소유권 보존등기는 부동산에 관해 최초로 행하여지는 등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신축한 건물에 대해 소유권 보존등기를 신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로구청 관계자도 “단독 주택이고 개인 소유의 집이다. 등기상으로 나오는 게 맞다”며 “건축물 대장에 사용승인일은 2003년도다”고 답변했습니다. 건축물대장상 신축건물엔 구청의 ‘사용승인’ 절차가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약 100년 전 이완용의 옥인동 저택은 현재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완용 저택’의 정체가 2003년에 지은 신축건물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이완용’이란 이름에 여전히 치가 떨립니다. 이완용이 워낙 악명이 높은 친일파였기 때문이죠. 약 100년이 지났는데도 이완용이 살던 곳이 누리꾼들의 입방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그는 영원히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할 듯합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