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집은 건 인터넷 아닌 단추야
역사학자 모티머는 “사실 달 착륙이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은 별로 없다”며 “황량하고 단조로운 달 표면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게 된 것보다 우주 비행사가 달의 궤도에서 촬영한 지구 사진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영국에서 출간된 신간 <세기의 변화(CENTURIES OF CHANGE)>의 저자이자 역사학자인 이안 모티머는 ‘과연 그럴까?’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그는 책에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노트북 없이 생활하는 1년과 단추 없이 생활하는 1년이 어떨지 상상해 보라. 과연 어떤 생활이 더 불편하겠는가?’ 모티머의 답은 명확했다. 그는 “사람들은 노트북 없이는 그럭저럭 살 수 있지만, 단추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요컨대 단추가 인터넷보다 세상을 더 혁신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모티머는 우리가 그동안 간과했던 위대한 발명품들에 다시 주목해볼 것을 권했다. 그가 말하는 것은 우주 탐사와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지난 10세기 동안 우리 생활 깊숙이 영향을 미쳤지만 지금은 너무나 당연시 여기고 있는 세기의 발명품들로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봤다.
지난 10세기(1000~2000년대) 동안 사람들의 생활을 가장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시대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20세기라고 답할 것이다. 가령 비행기술의 발달, 자동차의 대량 생산, 우주 여행, 첨단 무기, 원자력 발전소, 전화기, 라디오, TV, 컴퓨터 그리고 아이패드까지. 그야말로 20세기는 다방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룬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모티머는 “역사는 발명품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보다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난 변화”라고 말한다. 특히 어떤 한 시대를 주도한 ‘아이디어’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모티머는 오늘날 사람들이 과거의 많은 발명품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너무나 당연시 여겨서 고마운 줄 모른다는 것이다. 가령 앞서 말한 단추의 경우를 다시 보자. 1330년대 등장한 단추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외모를 바꿔 놓았다. 헐렁한 옷차림이 몸에 딱 맞게 변하면서 보다 단정하고 말쑥한 차림이 가능해졌다. 의복뿐만 아니라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또한 1400년 경 처음 등장한 시계탑은 공공장소에서 누구나 시간을 보는 것을 가능케 했다. 개인 손목시계가 19세기에 들어와서야 보급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공공장소에서 시계를 본다는 것은 분명 획기적인 일이었다.
거울, 굴뚝, 유리창은 사람들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발명품이다.
1500년경 발명된 거울만큼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깊은 영향을 미친 발명품은 없을 것이다. 거울을 보게 되면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정확히 알게 됐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를 생각해보라. 사람들은 거울을 통해 비로소 자기 자신을 하나의 ‘개인’으로 여기게 됐다. 그 전까지는 자신을 한 무리에 소속된 구성단위로만 생각했을 뿐, ‘개인’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거울의 등장은 후에 초상화, 자화상, 자서전, 그리고 일반적인 자아의식에 대한 욕구로 이어졌다.
1500년대 일반인들에게 보급된 굴뚝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굴뚝으로 연기를 내보낼 수 있게 되면서 집안에서도 더 이상 그을음으로 고통 받지 않게 됐다. 유리창 역시 마찬가지다. 유리창이 발명되면서 집집마다 창문을 사용할 수 있게 됐고,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집안으로 햇빛이 들어오면서 보다 쾌적한 생활이 가능해졌다. 또한 유리창은 겨울에는 추위를 막아주는 역할도 했다.
1851년 대영박람회에서 처음 소개된 수세식 변기는 그야말로 혁신적이었다. 집안에서의 위생 문제가 해결됐고, 곧 부유층들을 위한 전용 화장실도 등장했다.
19세기는 아마도 가장 획기적인 발명이 이뤄진 시대일 것이다. 바로 증기기관차의 발명 때문이다. 증기기관차의 등장과 함께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일상생활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영국의 인구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유럽 각지에서 그리고 영국 각지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대도시로 떼 지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현상에 대해 모티머는 “대도시는 시골의 인구들을 빨아들였으며, 철로는 마치 빨대와 같은 역할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인류의 위대한 도약’으로 여겨지는 달 착륙은 어떨까. 모티머는 달 착륙이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은 사실 별로 없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황량하고 단조로운) 달의 표면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게 된 것보다 사실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우주 비행사가 달의 궤도에서 촬영한 지구 사진이 그것이었다.
처음 알게 된 컴컴한 우주 공간에서 푸르고 흰 빛을 띠는 지구의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모티머는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진일 것”이라면서 “이 사진만큼 지구에 사는 우리들에게 지구가 얼마나 작고, 얼마나 연약하고, 또 얼마나 위대한가라는 메시지를 생생하게 전달한 사진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흑사병은 1360년대와 1970년대 반복해서 창궐했으며, 3세기 넘게 10년마다 발생했다. 1563년 런던에서는 전체 인구의 20%가 사망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흑사병으로 인해 웃은 사람들도 있었다. 급격한 인구 감소로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했던 것이다.
위대한 두 지식인인 찰스 다윈과 칼 마르크스 가운데 사람들의 의식을 가장 극적으로 변화시킨 인물은 누구였을까. 모티머는 마르크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모티머는 마르크스가 오늘날 사회주의의 핵심이 되는 계급 없는 평등한 이상 사회를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모티머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시대로 16세기와 19세기를 꼽았다. 이 시기에는 식량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으며, 난방 기술이 발달하고, 주택 건설이 증가했다. 이 모든 것들은 일반 사람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들이다. 또한 이로 인해 그 어떤 시대보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가장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때이기도 하다.
그럼 20세기는 어떨까. 모티머는 20세기는 기대수명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대라고 말했다. 또한 개인 재산(1인당 GDP)의 증가, 남녀평등, 범죄율 감소를 획기적인 변화로 꼽았다.
모티머는 다소 암울하게 미래를 예견한 마지막 장인 ‘왜 중요한가’에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오일, 가스, 물, 땅이 점차 고갈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비를 조절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혼란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충고하면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