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맥 아내라고? 과연 그럴까?
▲ 영화 <바람 피기 좋은 날>의 한 장면. | ||
능력 있는 남편과 화목한 가정을 이룬 친구 A의 입버릇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아, 어디 바람피울 남자 없나?”였다. A의 남편은 가정적이고, 커리어 우먼인 A를 물심양면 외조하는 멋진 남자이며, A 역시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 다만 A의 문제는 남편과는 더 이상 설레는 연애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 그러다보니 섹스 횟수도 줄어들었고, 올해에는 겨우 한 번 섹스를 했다는 거였다. 그리고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야. 하지만 남편과의 익숙한 생활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 일상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자극을 원하는 거지. 말하자면 연애 같은!”이라고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우연히 합석하게 된 넥타이 부대의 성토가 떠올랐다. 그들은 입을 모아 “와이프를 여전히 사랑한다. 하지만 와이프가 아닌 여자와 만나서 색다른 만남을 즐겨보고 싶다. 들키지만 않으면 되지 않나”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리고 한 남자는 처음 만난 나에게 “그럴 리는 없겠지만…”이라는 말로 흑심을 감추면서, “우리 중에 한 명을 사귀어야 한다면, 누구와 사귀고 싶어요?”라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대기업 샐러리맨들과 술을 마시다보면, 여자친구가 있는 유부남에게 “오, 능력 있는데?”라고 추켜세우는 장면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불륜을 권하는 사회가 도래한 것일까. 더 웃기는 것은 유부남이 여자친구를 고를 때의 기준이다. “내 가정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여자를 원해. 가정을 깨면서까지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은 것은 아니니까”라고 말하는 얄미운 남자를 숱하게 봐왔다. 가정도 지키고 싶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싶다? 대체 이들이 와이프를 속이면서 외도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내가 임신 후 섹스를 거부하자 실망한 남편 B. 그는 임신 초기에는 ‘위험하니까’라고 아내를 이해했지만, 8개월이 지나도 섹스에 응하지 않는 아내에게 더 이상 구걸하고 싶지 않다며 “결혼하면 매일 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더라고요”라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내와의 섹스가 지루해지면서 “결혼하면서 끊었던 야동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후배도 있었다. “아내와는 너무 익숙해졌어요. 섹스조차 너무 일상화되어버린 거죠.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뺏긴 것도 아닌데, 와이프에게 더 이상 예전처럼 흥분이 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남자도 있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남자들의 불평을 들으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쩌면 이 유부남들은 아내 아닌 여자와의 달콤한 연애, 짜릿한 섹스를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외로운 게 아닐까.
하지만 외도는 부부 문제를 타인을 통해 해결하는 시도이자 임시방편이다. 외도 역시 상대를 끊임없이 바꾸지 않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권태로워질 뿐이지 않나. 외도를 강렬히 원하는 유부남들에게 묻고 싶다. 아내가 아닌 여자친구에게 새로운 자극을 얻으려고 노력하기 전에 아내가 섹스를 거부하는 이유, 섹스에 시들해진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는지 말이다. “매일 밤 ‘피곤하다’며 거절하던 그가 술 마시고 들어와서 옷을 벗기려 들면 짜증나잖아요. 제 의사와 상관없이 그가 하고 싶을 때만 섹스를 하는 거예요. 언제부턴가 그가 너무 얄미워져서 매번 ‘No''를 하게 되더라고요.” “남편에게 애인이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애인이 있어요. 섹스만 하는 섹스 파트너죠. 남편에게는 요구하기 힘든 것들을 요구하면서 미친 여자처럼 섹스를 해요. 내가 정숙한 줄만 아는 남편에게는 절대로 보일 수 없는 모습도 있는 거니까요.” “평소에는 스킨십이 전혀 없다가 밤에만 덤벼드는 그와는 별로 섹스하고 싶지 않아요.” “남편은 내가 만족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전 오르가슴을 연기해요. 결혼한 지 10년이 다 돼가지만 남편에게 섹스에 대해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아내가 그리 많지는 않을 거예요” 등등 여자들의 섹스 거부는 대개가 남편에게 섭섭한 마음이 생겼거나, 남편에게 자신의 섹스 불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을 때 생긴다.
“와이프가 과감한 체위를 싫어해요. 그래서 저는 정상위로만 하죠”라고 말하는 남자도 있다. 그의 와이프는 진짜로 과감한 체위를 싫어하는 것일까? 혹시 부끄러워서 ‘싫어’라고 한 번 튕겼다가 남편의 단조로운 섹스에 지겨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편은 오랜 기간 동안의 섹스 경험을 통해 아내의 성 취향을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사실상 남편에게 자신의 성 취향을 솔직하게 고백할 때를 놓치고 고민하는 아내가 부지기수다.
오늘 밤, 연애 초기처럼, 신혼 때처럼, 다시 한 번 상대를 진지하게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섹스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하고, 상대의 요구 사항과 불만 사항을 제대로 들어보는 노력이 남편 혹은 아내의 외도 충동을 가라앉혀줄지 누가 아는가.
박훈희 칼럼니스트
박훈희 씨는 <유행통신> <세븐틴> <앙앙> 등 패션 매거진에서 10년 이상 피처 에디터로 활동하면서 섹스 칼럼을 썼고, 현재 <무비위크>에서 영화&섹스 칼럼을 연재 중인 30대 중반의 미혼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