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떡궁합 정말 따로 있을까?
▲ 영화 <너는 내 운명>의 한 장면. | ||
며칠 전 후배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화. “선배, 저 속궁합이 딱 맞는 사람을 만났어요!” 우연히 만난 한 남자와 원 나이트 스탠드를 즐기던 중 인생 최고의 오르가슴을 느낀 그녀는 흥분된 목소리로 “잊지 못할 섹스”라고 고백했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속궁합이 맞는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신체적 조건, 즉 페니스와 질 입구의 굵기와 길이가 딱 맞아 떨어진다는 것일까? 좋아하는 체위, 애무의 부위와 테크닉 등 성적 취향이 잘 맞는다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피스톤의 속도, 애무를 주고받는 속도 등 호흡이 잘 맞는다는 것일까. 물론 이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되어 오르가슴에 이를 때 이른바 ‘속궁합이 잘 맞는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 나 역시 ‘이런 게 천생연분 궁합이라는 거구나’라고 느낀 경험이 있다. 새 남자친구를 사귀었냐고? No! 우습게도 내가 ‘궁합’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된 곳은 마사지숍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마사지만큼 궁합이 중요한 테라피도 드물다. 어깨가 뭉쳐서 마사지를 받으러 갔을 때, 마사지사가 어깨를 너무 세게 주무르면 몸이 더 아프고, 너무 약하게 자극하면 ‘장난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자극을 주어야만 ‘시원하다’고 느끼는 것. 그런데 그 ‘시원하다’고 느끼는 자극의 세기는 개개인이 다르다. 이것이 궁합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자극의 세기만큼이나 중요한 궁합의 조건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두 사람 사이의 호흡이다. 자극의 세기, 압의 정도가 적당하더라도 마사지사가 주무르는 속도가 너무 빠르면, 마사지를 받는 사람은 편안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마사지 전문가는 마사지를 받는 사람의 호흡의 속도에 맞춰 마사지를 하도록 교육받는다고 한다. 이 역시 남녀의 속궁합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어떤 여자는 “빠르게!”를 외치고, 어떤 여자는 “좀 더 천천히”를 외치니, 마사지든 섹스든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와 조화를 이루는 일일 것이다.
보편적으로 ‘여자는 부드럽게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강간 판타지를 가진 여자도 있다. 일반적으로 ‘페니스가 작은 것보다는 큰 게 낫지’라고 생각하지만 질 입구가 좁아서 페니스가 큰 것이 오히려 부담스러운 여자도 있다. 그래서 나는 섹스는 스포츠와 달리 룰이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어차피 신체조건, 성적 기호는 개개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속궁합이 잘 맞는 커플이 있다. 마사지 마니아인 나는 강남 일대의 마사지 숍을 전전한 끝에 나와 궁합이 잘 맞는 마사지 전문가 A를 찾아내었다. 그리고 지난 3년간 그녀에게만 마사지를 받아왔다. 그런데 얼마 전 그녀가 감기로 결근을 한 까닭에 급한 대로 같은 숍의 다른 마사지 전문가 B에게 몸을 맡겼다. 그런데 웬걸? B가 내 몸에 손을 댄 순간, 나는 ‘아, 이것이 진짜 궁합이구나’라고 실감했다. 자극의 세기, 속도, 테크닉 등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 전까지 잘 맞는다고 생각한 A와의 궁합에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B는 어깨를 주무를 때 ‘지긋이’ 힘을 주었다. 약하게 누르기 시작하여 손을 떼기 직전까지 힘의 강도를 서서히 더했기 때문에 아무리 세게 자극을 주어도 어깨가 아프지 않았다. 마치 부드럽게 삽입하여 강하게 움직여주는 남자 같았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앞으로 나는 누구에게 마사지를 받아야 하나’에 대한 것이었다. A를 택하자니 B의 탁월한 손맛을 느낄 수 없어서 아쉽고, B를 택하자니 우연히 A를 만나게 되면 보기 민망할 것 같았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한 번 B의 손맛을 느끼고 나니 A의 단점만 보였던 것이다. A에게 마사지를 받으면서 ‘B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나는 순간적으로 양다리를 걸친 카사노바, 섹스 파트너를 끊임없이 바꾸는 플레이보이, 바람을 피우는 유부남의 마음을 이해할 뻔했다^^.
그래서 마사지사를 B로 바꾸었냐고? 아니다. B의 테크닉이 탐이 났지만 3년간의 의리를 생각해서 A와 호흡을 더 맞춰가기로 결정했다. B를 만나기 전까지 A의 마사지에 불만이 없었고, 내가 잠시 B의 현란한 테크닉에 흔들렸을 뿐이라고 나를 다독였다. 대신 나는 A에게 “좀 더 지긋이 눌러 달라”고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압의 정도는 좋은데, 천천해 마사지해주세요”라고 구체적으로 제안하면서 A와 나의 호흡을 맞추었다.
남녀간의 섹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여자친구 혹은 아내가 있는데 새로운 상대와의 하룻밤 섹스에 눈뜨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짜릿한 섹스는 마약과 같아서 끊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원 나이트 스탠드의 상대와 속궁합이 맞으면 맞는 대로 고민에 휩싸이고, 속궁합이 맞지 않으면 하룻밤 해프닝을 경험한 후 허무함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강렬한 자극을 추구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상대와 대화를 통해 강렬한 자극을 찾아나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박훈희 칼럼니스트
박훈희 씨는 <유행통신> <세븐틴> <앙앙> 등 패션 매거진에서 10년 이상 피처 에디터로 활동하면서 섹스 칼럼을 썼고, 현재 <무비위크>에서 영화&섹스 칼럼을 연재 중인 30대 중반의 미혼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