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예쁘다’ 하면 어디 덧나?
▲ 영화 <비스티 보이즈>의 한 장면. | ||
술자리에서 생긴 황당 에피소드. 4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동안인 유한마담 A가 지인들의 술자리에 나를 불렀다. 그날의 술자리 멤버는 이전에 소개받은 적이 있는 B와 또 한 명의 남자 C였다. A가 “아는 동생이야”이라고 소개한 C는 30대 초반의 댄서인데, 한때 연예인 지망생이었다고 했다. C는 유머러스했고 자상했으며 무엇보다 잘생기고 체격도 좋았다. 잘 차려입은 슈트를 보니 경제적 능력도, 감각도 고루 갖춘 듯했다. 연예인이 되기엔 2% 부족했지만 꽤 괜찮은 남자였던 것이다. ‘직업은 없는데 돈이 많아 보이는 걸 보니, 집이 부자인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C가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희야, 날 좀 바라부아~, 너는 나를 좋아했잖아…” 누군가 날 위해 노래를 불러준 것이 언제였나. ‘이 사람이 혹시 나에게 관심이 있나?’라고 착각하려는 찰나였다. 그때 룸에서 노래를 부르던 한 무더기의 아줌마 부대가 무대로 나왔다. 이내 그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가 무대 위를 장악하던 시끄러운 아줌마들 사이로 들어가더니 한 아주머니를 붙잡고 파트너 행세를 하면서 춤을 추기 시작한 것. 앗, 그는 호스트였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그의 잔이 빌세라 술을 따라주었으며 세 여자 사이에서 그가 어색할까봐 끊임없이 사적인 질문을 하고 심지어 그가 날 좋아한다고 착각까지 했으니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당당하게 대접받아야 할 호스트에게 대접을 하고 있었던 셈이지 않나.
호스트바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날 처음으로 호스트바에 간 것은 아니었다. 패션 잡지 에디터로 10년 동안 일하다보니 파티 뒤풀이, 동남아 여행의 한 코스 등으로 호스트가 나오는 바에 가볼 기회가 종종 있었던 것이다. 그때 호스트바에서 만난 호스트들도 C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리를 쫙 벌려 허벅지를 내 허벅지에 밀착하고, 어깨를 감싸며 귓속말을 하고, 때로는 허리를 과도하게 움직이면서 섹스를 연상시키는 코믹 댄스와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으로 여자들에게 서비스했다. 다만 내가 C를 오해했던 것은 A가 호스트바를 즐기는 부류의 여자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A는 대학교수의 딸이자 부자 남편의 와이프로 맨해튼에서 살고 있는 소위 ‘엄친딸’이었고 애처가 남편은 무뚝뚝하긴 하지만 가정적인 남자였다. 장난꾸러기 아들은 건강했고 가족은 화목한 듯 보였다. 놀라움을 애써 감추는 나에게 A는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끼리 가끔 놀러오곤 해”라고 말했다. A는 밋밋하고 재미없는 결혼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러 호스트바에 갔던 것이었다.
예전에는 호스트바의 여자 고객 90% 이상이 호스티스였지만, 요즘은 유한마담부터 사업가, 하룻밤을 즐기고 싶은 골드미스까지 고객층이 폭넓어졌다. 호스트바의 접대 역시 각양각색. 거액의 팁을 걸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마스터베이션을 시키는 여자도 있고, 심한 경우에는 룸 안에서 짝지어 섹스를 원하는 여자도 있지만 대부분 호스트바의 접대는 3단계로 진행된다. “어려보인다” “섹시하다” 등 여자의 기분을 즐겁게 하는 칭찬이 1단계, 갈고 닦은 춤과 노래로 분위기를 달구는 2단계, 왕 게임, 얼음 옮기기, 스트립 게임 등 야한 게임으로 여자의 숨겨진 본능에 불을 지르는 3단계로 차근차근 진행되는 것. 한 호스트는 “3단계에 이르면 수줍음이 많은 여자도, 까칠한 여자도 다 넘어와요. 게임을 핑계로 내숭을 깨버리는 거죠. 게임 벌칙으로 여자가 누워있는데 그 위에서 남자가 팔굽혀펴기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웃기잖아요. 왕게임의 경우, 왕이 된 사람이 키스를 벌칙으로 내리면 키스를 해야 해요. 속으로 은근히 키스의 대상이 되길 빌고 있을지도 모르죠”라고 말했다.
여자들이 호스트에게 바라는 것이 과연 진한 스킨십과 섹스일까? A는 “호스트바에 가면 고민이 없어지니까. 아무 생각 없이 놀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잖아. 솔직히 음치 남편이 노래 불러주는 거랑 호스트들이 노래 불러주는 거랑은 차원이 달라. 무엇보다 호스트바에서는 공주 대접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아. 남편은 더 이상 나를 아껴주지 않으니까”라고 말했다. A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나 역시 C의 배려에 솔깃하여 ‘사랑받는구나’라고 오해까지 했지 않은가.
나는 A가 돈을 주고라도 사랑을 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비록 거짓 사랑일지라도, 돈을 주고 산 애정일지라도, 남자의 따뜻한 배려를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가정이 아닌 곳에서 즐거움을 찾는 A의 남편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오늘밤 언니 위에서 푸시업이라도 해보는 건 어때요?’라고 말이다. 남편의 작은 봉사만으로도 여자는 크게 감동하니까. 감동한 여자는 마음과 몸을 활짝 열 테니까.
박훈희 칼럼니스트
박훈희 씨는 <유행통신> <세븐틴> <앙앙> 등 패션 매거진에서 10년 이상 피처 에디터로 활동하면서 섹스 칼럼을 썼고, 현재 <무비위크>에서 영화&섹스 칼럼을 연재 중인 30대 중반의 미혼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