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밴드 공연 등 콘서트장 방불, 표결 끝낸 정치권 착잡한 모습…국민의힘 비대위 체제 돌입
#탄핵 축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온 강경이 씨(53)는 12월 3일 연남동에 있는 위스키 바에서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지인이 계엄령이 떨어졌다고 했다.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네이버 카페 접속이 안 됐다. 전화도 원활하지 않았다. 통신이 끊겼다는 생각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집으로 급하게 돌아가 TV를 켰다. 군인들이 국회에 침입하고 있었다. 강 씨는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한 정신병자’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강 씨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있으면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몰라 불안하다고 했다. 강 씨는 “해외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데모를 평생 해본 적이 없다. 평소 ‘남들이 해주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며 “TV 화면에서 군인들이 보이고 이런 것들이 비현실적이면서도 참담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계엄과 탄핵이라는 엄중한 시국에서도 웃음과 해학을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온 36세 남성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이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집회 장소로 나오기 전 작은 화이트보드를 샀다. 여기에 글을 적었다. “너는 나를 존중해야 한다”로 시작되는 축구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문자 메시지를 패러디한 내용이었다. 그는 “윤석열 너는 국민들을 존중해야 한다…(더보기)”라고 적었다.
인디밴드 ‘극동아시아타이거즈’ 팬들은 ‘호랑이 등 긁어주기 협회’를 결성했다. 팬들이 모두 협회장이었다. 한 팬은 밴드 이름에 있는 ‘타이거즈’와 집에 있는 효자손을 합성해서 이 같은 문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뭐라고 할지 말도 안 나오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 대통령에게는 “플랜B는 없다. 그냥 내려와라”라고 전했다.
‘개돼지전국연합’ ‘고양이 사료협회’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도 눈길을 끌었다. 이 팻말을 든 여성은 두 딸과 함께 집회 현장을 찾았다고 했다. 문구는 남편이 만들었다고 전했다. 그런데 남편은 날이 추워서 안 나왔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좋은 미래를 보여줘야 하는데 이런 대통령을 뽑은 것에 미안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에게 투표했는지 묻자 “절대 아니죠”라고 격하게 손을 흔들었다. 옆에 있던 딸이 “좋은 언어로”라고 말하며 발언이 격해지는 것을 제지했다.
‘전국 정각병 협회’ 깃발을 든 대학원생 한재륜 씨(26)는 “평소에 공부할 때 58분같이 애매한 시간이 있으면 정각으로 딱 미룬다. 거기서 딱 생각나서 깃발을 만들어서 왔다”고 했다. 한 씨는 ‘정시 출근 안 하는 윤 대통령’과 대비되는 문구라고 했다. 그런 대통령이 ‘우리의 대통령’이라는 것이 부끄러워서 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시국 선언문도 작성하고 대자보도 붙이게 됐다고 했다.
지난 탄핵 찬성 집회 때 주목을 받았던 응원봉도 등장했다. 시민들은 촛불 대신 응원봉을 들고 있었다. 친구 두 명과 함께 집회 현장을 찾은 이 아무개 씨(29)는 손에 보이그룹 ‘엑소’의 응원봉을 들고 있었다. 다른 두 사람은 보이그룹 ‘몬스타엑스’와 ‘세븐틴’의 응원봉을 보여줬다. 이 씨는 “엑소를 좋아하지만, 팬은 아니다. (몬스타엑스 응원봉을 든) 친구가 빌려줬다”며 “이 친구는 원래 엑소 팬이었다가 몬스타엑스로 갈아타서 응원봉이 두 개”라고 폭로했다.
게임 ‘덕후’들도 시위에 참여했다. 리듬 게임 ‘월드 다이 스타 꿈의 스텔라리움’을 좋아한다는 여성 네 사람은 게임 이름이 적힌 깃발을 들고 있었다. 이들은 동호회 차원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한 동호회원은 “이 시국에 모여서 집회에 나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아마 다른 회원들이 더 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편에서는 보수 단체의 맞불집회도 열렸다. 이들은 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한다고 했다. 현 상황에서 비상계엄 선포는 ‘거대 야당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꺼낸 ‘통치 수단’이라고 했다. 이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탄핵 반대 목소리는 탄핵 찬성 구호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양측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역설적인 장면도 있었다. ‘국민의힘을 해산하라’는 대목이었다. 탄핵 반대 측은 국민의힘이 제대로 윤 대통령을 보호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리 없는 정당은 해산해야 한다는 불만이다. 반면 찬성 측은 1차 탄핵 표결을 보이콧한 결정을 비판했다. 투표에 앞장서야 할 이들이 투표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비대위로
오후 4시 국회 현장은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국민의힘은 의원총회에서 ‘탄핵 반대’ 당론을 고수했다. 표결에는 자유롭게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7명의 국민의힘 의원은 본회의 전 공개적으로 탄핵 찬성 의사를 밝혔다. 이들을 포함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의결정족수가 성립됐다.
표결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집회 현장에는 계속 음악이 흘러나왔다. 시민들은 가수 김연자의 ‘아모르파티’나 아이돌 로제의 ‘아파트’에 맞춰 윤 대통령을 탄핵하라고 외쳤다. 클럽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결과를 발표했다. 재적 의원 300명 전원이 참석해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국민의힘에서 최소 12명이 찬성표를 던진 셈이다. 결과가 나오자 시민들은 환호했다. 노랫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졌다. ‘탄핵 파티’가 열렸다.
우원식 의장은 “국민의 생업과 일상이 빠르게 안정되고 경제 외교 국방 등 모든 면에서 대내외적 불안과 우려가 커지지 않도록 국회와 정부가 합심하고 협력하겠다. 정부 공직자들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맡은 소임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우 의장은 국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민 여러분들의 연말이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 취소했던 송년회 재개하시기를 당부드린다. 자영업 소상공인 골목 경제가 너무 어렵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의 희망은 국민 속에 있다. 희망은 힘이 세다. 국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다.”
탄핵 소추안 통과에 성공한 야당 의원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웃는 의원들은 없었다. 이들은 국회 본관 중앙 계단에 모여 인사를 올렸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들과 민주주의의 승리”라면서도 “12·3 내란 사태는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박 원내대표는 “내란수괴 윤석열의 직무 정지는 사태 수습을 위한 첫걸음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빠져나왔다. 공개적으로 탄핵 반대 의사를 밝힌 나경원 윤상현 의원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1차 표결 불참으로 빈축을 샀다가 찬성으로 돌아선 김재섭 의원은 고개를 숙였다. 브리핑은 없었다.
한동훈 대표는 오후 7시 브리핑을 열고 ‘무거운 마음’이라면서도 사퇴 의사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동혁 진종오 김민전 인요한 최고위원이 사퇴의사를 밝히면서 국민의힘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 수순으로 들어갔다. 선출직 최고위원 및 청년최고위원 중 4인 이상이 사퇴하면 비대위 전환 요건이 충족된다.
탄핵소추안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인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후 6시 15분 서울 종로구 헌재 민원실에 탄핵소추 의결서 정본을 제출했다. 의결서가 접수되면서 탄핵심판 절차가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탄핵심판사건 번호는 ‘2024헌나8’이다. 올해 8번째 탄핵 사건이다. 선고는 이날부터 180일 이내에 나올 전망이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