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이라뇨? ‘생활’입니다
▲ 온라인 성인용품 쇼핑몰 ‘딴지몰’. | ||
대법원은 ㈜엠에스하모니(이하 MSH)가 인천국제공항 우편세관장을 상대로 낸 수입통관보류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통관보류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법상 성인용품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국 내 성인용품의 실태를 추적해보았다.
지난 2007년 MSH사는 남성의 성기를 본떠서 만든 여성용 자위기구 10개를 중국에서 항공편으로 들여와 인천공항 세관에 통관을 신청했다. 실리콘 재질에 길이 21.5㎝인 이 기구에는 진동기가 내장돼 있었다.
세관은 ‘헌법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공공의 안녕 또는 풍속을 해치는 물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관세법에 따라 통관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이에 불복한 MSH사는 “여성의 자위행위가 선량한 풍속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고, 정상적인 부부의 성행위에도 보조기구로 사용되는 점, 장애인 부부의 성문제 해결에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점에서 풍속을 해치는 물품으로 볼 수 없다”며 소송을 냈다.
MSH사는 1심에서 승소했지만 2심에서 패소하고 말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MSH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원 3부는 판결문에서 “관세법 제234조 1호가 규정하는 ‘풍속을 해치는’이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성풍속을 해치는 ‘음란성’을 의미한다”며 “표현물의 음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표현물 제작자의 주관적 의도가 아니라 사회의 평균인 입장에서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따라 객관적이고 규범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통관이 보류된 여성용 진동자위기구가 발기한 남성의 성기를 재현했다고는 하나 색상도 실제 사람의 피부색과 많은 차이가 있고 전체적인 모양도 일자형으로 남성의 성기를 개괄적으로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며 “물품 자체로 남성의 성기를 연상케 하는 면이 있더라도 그 정도만으로 사회통념상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쳐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MSH사의 이희승 본부장은 “일부러 노골적 표현을 한 자위기구를 수입했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업무상 해외 출장을 다니며 성 박람회 등에서 구입하게 된 물건을 들고 입국하려다 세관 통과에서 번번이 물건을 압수당했다고 한다. 인천세관에서 이 본부장은 이미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러다 남근의 모양과 전혀 비슷하지 않은 오리 모양의 자위기구를 가지고도 ‘모조성기’라는 이름을 붙여 수입 통과를 금지하려는 모습에 의문을 가지며 소송을 하게 됐던 것이다.
이 본부장은 “수입 통관의 유무는 세관원의 주관적 판단이 대부분”이라며 “‘음란성’이라는 통과 기준이 모호해 이번 기회에 명확한 기준을 잡아 보기 위해 극단적인 소재를 가지고 소송을 건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성인용품협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영업 중인 성인용품점은 3500개를 넘는다고 한다. 한국성인용품협회의 한 관계자는 “1980년대 보따리상의 암거래 수준에 머물렀던 성인용품 시장 규모도 이제는 1000억 원대를 웃돈다”고 추정했다.
기존의 성인용품점은 주로 40~50대 남성이 이용하며 비아그라나 포르노 등을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곳에서 판매되는 비아그라 등은 대부분 출처를 확인하기 힘든 것이다. 아직까지 성인용품에 대한 인식이 ‘음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 몰을 중심으로 밝고 유머러스한 콘셉트를 가지고 자위기구 중심으로 성인용품을 판매하는 곳이 늘고 있다. 한 성인용품 온라인 몰은 월매출 1억 5000만~2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주로 20~30대 남성들의 방문 비율이 가장 높고 구매로 까지 연결되는 것은 30대라고 한다. 특히 여성들의 구매율도 생각보다 높아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7:3 정도라고 한 관계자는 밝혔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등을 통해 여성의 자위기구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성인용품은 현행법상으로 공산품이다. 콘돔류와 성기 확대기 등이 의료기기로 분류되어 의료법의 통제를 받고 있고 러브젤은 화장품으로 승인받아서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다. 나머지 자위기구 등은 카테고리 분류 없이 공산품으로 팔리고 있다.
공산품으로만 분류되다 보니 명확한 수입 기준이 없어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성인용품들 중에는 소속이 불분명한 것도 상당수라고 한다. 해외에서 제조되는 것은 대부분 수입 통관이 어려워 비정상적인 방법이나 국내에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남성용 자위기구 등은 주로 일본에서 수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밀수 등을 통해 국내로 유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성용 자위기구는 독일 업체가 세계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자위기구는 국내에서 제조되는 경우도 있지만 제조업으로 허가받고 만들기보다 영세업자가 수공업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보니 질이 떨어지는 제품이 상당수다. 1000만 원이 넘는 걸로 알려진 ‘리얼돌’ 같은 경우는 기술력이 없어 100% 일본에서 직수입을 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만드는 유사 제품의 경우 100% 실리콘 제품인지 아닌지도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인체에 유해한 성분의 포함 여부도 알 수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많은 업체들이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성인용품을 수입하려했지만 모호한 세관법규 때문에 대부분 포기했다고 한다.
MSH사의 이 본부장은 “외국의 경우 성인에게 자위기구 등은 자유롭게 판매되며 일반적인 제품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한국은 아예 관심이 없다”며 “이번 판결이 성인용품에 대한 관심과 수입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이 세워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