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교재 베끼기 또!…‘답이 안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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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수능 출제 오류 논란이 된 2014 세계지리 8번 문항과 2015 영어 25번 문항.
2015대입수능 시험이 끝난 지난 13일부터 수능 이의신청 마감일인 17일까지 평가원에 접수된 이의신청 건수는 1300건을 넘어섰다. 작년에 접수된 이의신청 건수(626건)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출제 오류 논란을 빚고 있는 문제는 수능 영어 25번 문항과 생명과학Ⅱ 8번 문항이다. 수능 영어 25번 문제는 2006~2012년 미국 청소년이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개인정보 유형을 묻는 문제였다. 수험생들은 지문을 읽고 도표를 해석한 다음 ‘틀린 보기’를 찾아야 했다. 평가원이 제시한 정답은 ④번이었다. 그런데 ⑤번 보기도 틀린 것이라는 이의제기가 쏟아졌다. 수능에 출제된 ⑤번 보기는 ‘휴대전화번호 공개율이 2%에서 20%로 18% 올랐다’였다. 하지만 %수치 차이를 비교할 때는 %가 아니라 %p(포인트) 단위를 써야하기 때문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오류는 EBS 수능 교재에서도 발견됐다.
영어 25번 문제와 더불어 논란이 되고 있는 생명과학Ⅱ 8번 문항도 고교 과정에서 배우지 않는 내용이라는 지적이다. 생명과학Ⅱ 8번 문항은 평가원이 이의 제기된 문항 중 유일하게 외부 학회 자문 절차를 밟고 있는 문항이기도 하다. 문제 오류와 관련한 혼란이 일자 평가원은 “심의위원회를 거쳐 오는 24일 오후 5시 홈페이지를 통해 최종 수능 정답을 발표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수능 출제오류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 대입 수능에서는 과학탐구 선택과목 중 하나였던 물리Ⅱ 11번 문항에 이의가 제기됐다. 당시 평가원은 당초 정답은 ④번이라며 정답을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한국물리학회는 ‘평가원이 다원자 분자인지 단원자 분자인지 여부를 제시하지 않아 복수의 정답이 가능하다’며 ②번도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평가원은 수능성적이 통지되고 대학 수시 전형이 마무리되는 시점이 돼서야 복수 정답을 인정했다. 이 때문에 1000여 명의 수험생 등급이 뒤바뀌면서 정시모집 일정이 연기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평가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오류를 인정한 사례도 있었다. 2010 대입수능 지구과학Ⅰ 19번 문제는 최초 정답이 ③번이었다. 하지만 정답 발표를 하기 전 지구과학 담당 교사들과 천체관련협회가 ‘실제현상과 교과서 설명이 다르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평가원은 이 문제의 오류를 인정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복수의 정답을 인정했다.
지난해 2014 대입수능에서는 세계지리 8번 문항이 논란이 됐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유럽연합(EU)에 대한 ‘옳은 설명’을 고르는 문제였다. 평가원은 ‘EU가 NAFTA보다 총생산액 규모가 크다’는 보기를 정답으로 출제했다. 그런데 일부 교사들과 학생들은 ‘세계은행의 2012년 통계에 따르면 EU의 총 생산액이 16조 5700억 달러이며 NAFTA는 18조 6800억 달러’라는 것을 근거로 정답에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교육부와 평가원은 “교과서 내용에 맞춰 출제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반복하며 예정대로 채점 결과를 발표했다. 결국 이 문제는 집단소송으로 법원까지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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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전경. 구윤성 기자
11개월을 끌어온 이 소송은 결국 지난 10월 16일 2심 판결에서 “수능시험은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는 답을 정답으로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며 “수능시험 출제의도에 의해 정답으로 예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객관적 사실을 오답이라고 해선 안된다”고 수험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평가원은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사실상 문제에 오류가 있었던 것을 인정하고 뒤늦게 피해구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에 지난 20일 평가원은 2014 대입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에 대해 모든 수험생들의 응답을 정답으로 처리하고 피해 수험생들의 성적을 재산정한 결과를 발표했다. 재산정 결과, 수능 등급이 한 계단씩 올라간 수험생은 9073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상위권 수시최저등급에 실질적인 피해를 봤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는 1등급과 2등급에는 각각 253명과 653명이 새로 진입했다. 이러한 피해 수험생들은 내년 3월 정원 외 추가 입학이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하지만 피해 수험생들의 ‘잃어버린 1년’을 보상받기 위한 민사소송과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2014 대입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오류를 처음으로 공식 제기했던 박대훈 전 EBS 강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미 재수를 시작한 학생도 있고 점수를 낮춰 다른 대학에 입학해 1년 가까이 다닌 학생도 있다”며 “평가원이 지난 20일 재산정한 성적을 다시 발표했다. 그런데 재산정한 성적을 등기우편도 아니고 홈페이지를 찾아와 확인하라는 무성의함을 보였다. 세계지리를 택한 1만 8000여 명 중에는 그 사실을 모르고 넘어가는 학생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험생들을 대리해 소송을 준비 중인 임윤태 변호사 측은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오류가 명백해지면서 피해를 본 학생들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하기로 한 손해배상 소송이 검토되고 있다”며 “재수비용 등도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앞서 소송에 참여한 22명의 학생 외 현재까지 340여명이 소송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학생들이라 착수금은 받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매번 수능 출제오류 논란이 반복되면서 평가원의 권위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논란을 키운 것도 결국 평가원이라는 지적이다. 이제껏 평가원은 문제에 이의제기를 할 경우 권위에 도전한다고 해석하거나, 혼란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출제오류 논란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박 강사는 “일단 문제 제기가 됐을 때 방어논리를 펴기보다 오류가 지적된 부분에 대해 공정한 절차로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며 “그런 공개적인 절차를 따르면 그래도 납득하기가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대입수능 출제오류와 관련 김성훈 평가원장은 지난 2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2014 대입수능 세계지리 문항 오류와 관련) 교육부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학과 협의하겠지만 추가 정원외 입학 조치로 학생들이 받는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2015 대입수능 출제오류 논란과 관련) 엄정한 절차를 거쳐서 투명하고 객관적인 결론에 도달하려고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