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면 집단자위권까지 한방에 직진
일본 아베 총리의 중의원 해산을 싸고 궁극적으로 평화헌법 개정을 위한 꼼수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위 사진은 한국 내 일본대사관 앞 집단자위권 반대 시위. 연합뉴스
무려 700억 엔(약 6600억 원)가량의 예산이 소요되는 선거다. 도대체 왜 아베 총리는 ‘의회 해산’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일까. 먼저 그가 내세운 명분은 소비세 문제다. 아베 총리는 내년 10월로 예정된 소비세 인상(8→10%)을 연기한다고 발표하는 동시에 “이에 대한 국민의 신임을 묻고자 총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론은 “혈세만 낭비하는, 명분 없는 해산”이라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일각에서는 “장기집권을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과연 아베 총리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지 일본 언론보도를 중심으로 짚어본다.
“이번 중의원 해산에 대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베 총리가 오직 자신만을 위해 내린 결정이다.” 일본에서 중의원 해산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교도통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중의원 해산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응답이 63.1%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응답(30.5%)을 압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의 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의회 해산 방침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의견이 65%로 긍정적인 평가(27%)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여론 악화를 의식한 탓인지, 아베 총리는 “연립여당이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238석)을 가져가지 못하면 사임하겠다”고 기자회견에서 배수진을 쳤다. 참고로 해산 전 중의원 의석 분포는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295석, 공명당이 31석(이상 연립여당)으로 전체 의석 가운데 3분 2 이상을 차지했다. 이에 비해 야당은 민주당 54석, 유신당 42석, 차세대당 19석, 공산당 8석, 생활당 7석, 사민당 2석 등이다.
아베 총리가 중의원 조기 해산을 밝히며 내세운 명분은 소비세율 인상 연기다. 경기회복을 위해 소비세 인상을 늦추고, 자신의 대표적인 정책인 ‘아베노믹스’에 대해 국민들의 심판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의원 임기가 아직 2년 이상 남아 있고,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했던 자민당 내부에 갈등도 없었다. 평소 저돌적인 아베 총리의 성격을 감안하면, 얼마든지 아베노믹스를 계속 추진할 수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12월 14일 투표가 치러지면 여당은 지금보다 표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 왜 이 시점에서 아베 총리는 선거라는 도박판을 벌인 걸까.
사실 이번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는 아베 총리가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꺼내든 ‘노림수’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올해는 유독 아베 총리에게 시련의 해였다. 돈을 잔뜩 풀어 경기를 부양시키고 이를 소비세 인상으로 충당할 계획이었지만, 지난 4월 단행한 1차 소비세 인상(5→8%) 이후 경기는 되레 크게 위축됐다.
2·3분기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연속 감소했고, 아베노믹스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커졌다. 지지율은 가파르게 떨어졌다. 반등카드로 북한 납치문제 해결에 주력했으나 이마저도 진전이 없었다. 한쪽에서는 “아베 총리가 북한에 농락당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설상가상 11월 초 장관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되면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정권 출범 후 최저 수준인 42%로 떨어졌다.
지지율 하락이 멈추지 않으면,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총리의 재선은 위험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야당의 선거 준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이때 선거를 치른다면 크게 이길 수 있다는 속셈이다.
실제로 “자민당은 초선의원들을 대상으로 선거필승 교실을 여는 등 선거 준비를 착실히 진행해왔으며, 연립여당인 공명당도 지역 책임자들을 모아 선거 시나리오에 대해 설명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반면, 야당은 존재감 자체가 미미한 데다 전열을 정비할 시간조차 부족해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자민당이 12월 총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아베 총리는 2018년까지 자민당 총재직을 유지하면서 장기집권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새롭게 ‘아베노믹스’를 추진할 동력을 얻게 되며, 정권 기반은 더욱 탄탄해질 것이다. 정치평론가 이토 아쓰오는 “이번에 이긴다면 4년간은 총선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4년의 시간을 다시 벌어들이는 셈”이라고 말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헌법 개정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산케이신문>은 “아베 총리가 헌법 개정을 위해 가능한 의석을 잃지 않으려면 지금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헌법 개정에는 중의원과 참의원이 각각 3분의 2 이상, 그리고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찬성이라는 높은 벽이 존재한다.
<동양경제> 역시 “총리의 진짜 목적은 장기집권을 통해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는 게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잡지는 “아베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용인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의 신임을 묻지 않고 강행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총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속한 자민당이 패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점쳐진다. 자민당을 원해서가 아니다. 이유는 야당이 지리멸렬해 ‘대안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 유권자 중 상당수는 “장기 독주를 위해 의회를 해산한 아베 정권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민주당은 더 못미덥다”는 의견이 많다. 어쩔 수 없이 자민당을 찍는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동양경제>는 “가까운 미래 일본 서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지고, 젊은이들은 전쟁터에 나가야할지도 모른다. 유권자의 심판이 중요하다”는 평을 내놨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잠깐 - 일본의 의원내각제 일본 의회는 참의원(상원)과 중의원(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의원은 해산이 불가능하지만, 4년 임기의 중의원은 총리가 언제든지 해산할 수 있다. 대신 중의원들에게는 총리를 포함한 내각불신임권이 존재한다. 총리 지명은 양원의 과반 이상 득표로 이뤄지는데, 의견이 갈리면 중의원 의결에 따르기 때문에 보통 중의원 다수당 총재가 총리에 오른다. [강] |
총선거, 주가 영향은 기존보다 20석 줄면 타격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 단독으로 300석 이상을 확보하는 대승을 거두면,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현재 자민당 중의원 수는 295명이다. 이에 반해, 이치요시 자산운용 대표는 “기존보다 20석이 줄어들 경우 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에 대한 우려가 높아져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