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특급 S라인” 돈 2배 요구 황당
영화 <은교>의 한 장면.
노출을 대하는 배우의 자세도, 이를 받아들이는 대중의 관심도 과거보다 유연해진 분위기다. 이는 한국영화 호황과 함께 갈수록 팽창하는 인터넷 다운로드와 TV VOD 등 부가판권 시장에서 기인했다는 분석이다. 장르 대변화 속에 파격적인 설정과 이야기의 영화도 필요해진 분위기다. 수요가 많아지면서 이를 소화할 배우들도 절실해졌다. 하지만 여러 부담이 따르는 노출 연기를 감수할만한 배우는 많지 않다. 어떻게라도 이들을 출연으로 이끌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로 ‘높은 개런티’가 제시되고 있다는 평가다.
사실 배우들의 출연료는 ‘대외비’로 통한다. 배우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문제이자, 자칫 배우 간 갈등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출 연기를 소화하는 연기자들의 경우 평균 개런티보다 ‘웃돈’을 받는다는 사실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노출 연기에 대한 부담을 고려한 제작진의 배려이자, 그만큼 배우에게 노출은 쉽지 않은 선택이란 점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노출 개런티’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는 영화계의 오랜 관행이다. 스타 여배우들의 노출이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0년대 초·중반에는 평균 출연료보다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50%가량 많은 금액을 책정했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1990년대 모 여배우는 노출 연기를 하면서 평소보다 두 배 높은 출연료를 받았다”며 “배우가 먼저 요구했다기보다 어려운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그 입장을 고려한 제작진의 배려였다. 유명 배우일수록 노출 연기 사실이 알려지면서 마케팅 효과가 따른다. 영화가 얻는 여러 마케팅 효과를 고려하면 결코 큰 금액은 아니었다”고 돌이켰다.
이런 관행은 지금도 유효하다. 요즘 상업영화를 기준으로 신인급이 주연 등 비중이 큰 역할을 맡으면 출연료는 3000만~5000만 원 수준이다. 그런데 노출을 선보일 경우 1.5배 정도 출연료를 더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아무리 많아도 1억 원에 이르진 못한다.
신인 입장에선 꼭 돈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노출 연기를 통해 비중 있는 배역을 맡아 존재를 알리고 더불어 비교적 높은 개런티를 챙기는 기회를 마다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 성공사례도 여럿이다. 영화 <은교>의 주인공 김고은이나 <인간중독>의 임지연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전문적인 매니지먼트사의 관리 속에 실력 있는 연출자의 지도를 받아 파격적인 노출 연기를 소화했고 이후 스크린 기대주로 도약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연기보다 출연료에 욕심을 낸 탓이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에서 과감한 노출 연기를 펼친 연기자 A는 이 작품에 참여하며 평소 받던 개린터보다 1.5배 많은 금액을 챙겼다. 총액으로 치면 크지 않지만 평소 연기활동이 뜸했던 A에게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다. 이 영화는 극장에서 개봉하고 불과 열흘도 되지 않아 간판을 내렸다. 이후 부가판권 서비스를 시작했다. 애초 극장 상영이 목적이 아니었던 셈이다. 제작의도와 웃돈을 얹은 출연료를 원하던 A의 의중이 맞아 떨어져 가능했던 일이다.
부가판권 시장은 노출영화 제작을 부추기는 주요한 원인이다. 제작 횟수가 많고 출연할 만한 연기자 수는 적은 ‘불균형’이 계속되다보니 노골적으로 높은 출연료를 요구하는 연기자까지 나온다.
영화 캐스팅 매니저로 활동하는 한 관계자는 “작품성보다 노출에만 초점을 맞춘 영화에 참여하려는 무명의 연기자들도 심심치 않게 존재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요즘은 노출 연기를 받아들이는 대중 심리가 과거보다 관대해진 면이 있다”며 “노출 문제를 크게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기회로 삼으려는 연기자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그러다보니 엉뚱한 일도 벌어진다. 일부의 경우지만 자신 있는 신체 부위의 노출을 조건으로 직접 높은 개런티를 요구하는 연기자까지 등장했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얼마 전 S라인으로 유명한 한 연기자가 자신의 몸매는 특별하다는 이유로 제작진에게 두 배의 출연료를 요구한 일이 있었다”며 “제작진이 해당 연기자의 요구를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요즘은 노출과 관련한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밝혔다.
노출은 여배우에게 매력적인 도전 무대가 된다. 과감한 노출에 도전한 연기자들 가운데 “오랫동안 꿈꿔왔던 모습”이라며 기대와 설렘을 드러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11년 영화 <완벽한 파트너>에서 전라 노출을 감행한 배우 김혜선도 같은 경우다. 평소 드라마에서 단아한 모습으로 익숙했던 그이기에 노출 연기를 지켜보는 관객의 충격은 상당했다. 특히 당시 이혼과 몇몇 사업 문제를 겪기도 했던 김혜선을 두고 그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노출 연기를 연관 짓는 의심어린 시선도 존재했다.
하지만 김혜선은 당당했다. 영화 개봉 당시 그는 “젊은 시절엔 조금이라도 노출 장면이 있는 시나리오라면 거절하고 도망 다니기 바빴다. 나이 들어서 벗으면 추하다고 여기지는 않을지 걱정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20년 넘게 배우생활 하면서 왜 예뻤을 때 노출 장면 하나 찍지 않고 지나왔나 싶었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내 모습을 영화에 담아보면 좋을 것 같고 내게 의미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촬영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노출을 돈과 연관 짓는 주위의 시선에 직접 입장을 밝힌 셈이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