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인 대저택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 으리으리 미국 알파인 저택 위성 사진. 이 저택의 부지는 2에이커, 약 2448평이며 올림픽 경기장 규격의 실외 수영장도 갖춰져 있다. | ||
<일요신문>과 재미블로거 안치용 씨는 지난호(908호)에 김 전 부장이 미국 망명 전인 70년대 초부터 미국의 호화주택과 대형 쇼핑센터를 매입하는 등 치밀하게 망명을 준비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김형욱 미국망명 전모’를 부동산 등기부등본 등 관련 서류를 바탕으로 단독 보도한 바 있다.
이번 호에는 김 전 부장과 그 가족들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등을 바탕으로 이들의 재산 규모를 추적해 봤다. 김 전 부장의 유가족들은 미국 알파인에 최소 600만 달러에 달하는 초호화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는 등 수천만 달러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30여 년 전 김 전 부장은 살아 있는 권력과 등을 지고 형체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의 유가족들은 초호화 생활을 영유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과연 김 전 부장과 그의 유가족들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은 얼마나 될까.
영구미제로 남아 있는 ‘김형욱 실종’ 사건을 둘러싼 각종 의혹 중 김 전 부장이 해외로 빼돌린 비자금 액수와 그 유가족들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 규모에 대한 궁금증은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박정희 정권 출범 이후 1963년부터 69년까지 5년간 중정부장을 역임하면서 권력 핵심 실세로 군림해 온 김 전 부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재산을 축적했고, 이 돈은 73년 4월 미국 망명길에 오르기 전에 대부분 해외로 빼돌린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본지 908호 참조).
그렇다면 김 전 부장이 축적한 재산의 총 규모는 얼마이고 해외로 빼돌린 액수는 얼마나 될까. 그의 재산 규모와 해외 밀반출 액수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미국 언론 보도와 국정원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과거사위)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김 전 부장과 유가족들의 재산이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미국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는 1978년 12월 8일자 기사에서 “김형욱의 은행 예금은 미국 은행인 시티뱅크에 2000만 달러, 아마도 스위스 은행인 듯한 해외계좌에 600만 달러가 예치돼 있다”고 추정했다. 김 전 부장의 은행 예금만 2600만 달러로 추정한 것이다. 이 신문은 또 “김형욱이 프레이저위원회의 비공개 청문회에서 한국에서 가져온 돈이 350만 달러였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신문 보도대로라면 김 전 부장은 해외 은행에 예치된 금액과 미국으로 직접 가져온 돈을 합해 모두 3000만 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재산을 보유한 셈이다.
김 전 부장의 사망선고 재판과정을 담은 미국 뉴저지주 일간신문인 <버겐레코드>에도 김 전 부장의 재산 내용이 언급돼 있다. 이 신문은 1981년 3월 31일자 신문에서 “김형욱이 법적으로 사망판결을 받음으로써 1500만 달러로 추정되는 그의 재산이 부인 김영순과 세 자녀에게 상속되게 된다”고 보도했다.
과거사위 보고서에도 김 전 부장의 재산이 기록돼 있다. 이 보고서에는 “프레이저위원회는 조사결과 김형욱이 1500만 달러에서 2000만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기록해 김 전 부장의 재산을 1500만~2000만 달러로 추정했다. 보고서는 또 프레이저위원회 조사 내용을 인용해 김 전 부장이 1977년 6월까지 친지들의 사업계좌를 이용해 한국에서 재산을 계속 반출하고 있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국내 일부 언론들은 김 전 부장의 재산이 3500만 달러에 달할 것이란 보도를 하기도 했다.
이처럼 김 전 부장과 그 가족들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 규모 및 사용처와 관련해서는 소문만 무성할 뿐 구체적인 자료나 물증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요신문>과 안치용 씨의 취재결과 김 전 부장의 유가족들은 김 전 부장이 실종된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초호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부장의 부인 김영순 씨(본명 신영순)는 남편이 실종(79년 10월)된 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1982년 5월 21일 미국 뉴저지 포트리에 있는 콘도 한 채를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하이트맨하우스로 불리는 이 콘도는 재미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저지 초입 포트리의 번화가에 위치해 있다. 콘도의 정확한 주소는 1600 CENTER AVE, FORT LEE, NJ다. 김 씨는 9만 1740 달러에 매입한 하이트맨하우스 콘도 5E 호를 1986년 2월 28일 14만 5000달러에 매도한다. 4년여 만에 5만 3000여 달러의 시세 차익을 올린 셈이다.
▲ 김형욱 연합뉴스 | ||
김 전 부장이 실종되기 직전에 또 다른 알파인 집 하이우드 플레이스에 살면서 “이 집이 도로 아래쪽에 있어 누가 차를 타고 가다 수류탄만 굴려도 죽는다”며 불안에 떨었던 점을 감안해 아마도 도로보다 한참 위쪽의 집을 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 저택은 2차선 도로가 끊기게 되는 마지막에 위치해 있어 이 집에 사는 사람이나 찾아오는 사람이 아니면 아예 이 집 앞을 지나다닐 일이 없는, 그야말로 접근이 차단된 ‘천혜의 요새’로 평가받고 있다.
잘생긴 소나무들로 둘러싸인 이 집은 길가에서는 쉽게 규모조차 짐작되지 않고 항공사진이나 위성사진 등을 통해서만 구체적인 집 구조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이 저택의 부지는 2에이커, 약 2448평이며 올림픽경기장 규격의 실외 수영장도 갖춰져 있다.
김 전 부장은 실종 직전인 1979년 8월 10일 프랑스 파리를 다녀오게 되고, 보름 뒤인 8월 24일 부인 명의로 17만 2500달러를 주고 이 부지를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1981년 5월 법원의 ‘김형욱 사망판결’로 유산 상속인이 된 부인은 82년 이 부지에 저택 신축공사에 착수한 뒤 84년 완공과 함께 입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저택도 다른 알파인 저택들과 마찬가지로 주소가 잘 알려지지 않은 채 우체국 사서함 번호로만 표시돼 있다. 뉴저지주 세무국 서류에서도 주소가 없이 사서함 번호만 기재돼 있을 뿐이다.
이 저택은 ‘김영순 소유’로 돼 있다가 2002년 9월 5일 장남 김정한 씨가 사망하자 20일 뒤인 9월 26일 ‘김영순 신탁’(KIMYOUNGSOON TRUST)으로 소유권이 바뀐다. ‘김영순’에서 ‘김영순 신탁’으로 집이 양도될 때의 가격은 단돈 1달러에 불과했다. ‘김영순 신탁’의 관리인(TRUSTEE)은 김 전 부장의 차남인 김정우 변호사(제임스 김)와 딸 김신해 씨로 지정돼 있다.
뉴저지주 세무국은 지난 2006년 이래 2009년까지 매년 세금부과를 위한 이 저택의 공시가격을 239만 달러로 평가하고 있다. 이중 대지가 180만 달러, 건물은 53만 9000여 달러다.
하지만 현재 이 저택의 시장 가격은 최소한 600만 달러를 넘어선다는 것이 주변 부동산 전문가들의 평가다. 뉴저지주 세무국 자료에 따르면 알파인 지역의 부동산은 지적도상 상가와 주택을 모두 포함해 정확히 800채, 이 중 500만 달러에서 1000만 달러 주택이 즐비하고 이 저택도 그 중의 한 채로 분류되고 있다.
김 전 부장의 큰며느리가 뉴저지주 법원에서 이 집의 건축비용은 1982년 당시 최소 150만 달러에서 200만 달러에 달하고 융자 없이 전액 현금으로 지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미뤄 김 전 부장의 유족들은 당시로서는 엄청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큰돈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김형욱 유가족의 집문서 모음. | ||
하지만 1989년 8월 25일 작성된 매매계약서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이혼을 하게 되고,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합의에 따라 이 콘도는 신해 씨 단독 소유로 바뀌게 된다. 이후 신해 씨는 1995년 5월 2일 이 콘도를 한 외국인에게 50만 달러에 매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뉴저지 포트리 하이트맨하우스 콘도를 매입했던 김영순 씨는 1989년 5월 9일 뉴저지 포트리에서 가장 유명한 콘도로 알려져 있는 아트리움 콘도를 사들였다. 이 콘도의 주소는 1512 PALISADES AVENUE, FORT LEE NJ. 호수는 15L호다. 이 콘도의 매입가격은 48만 3000여 달러다. 김 씨는 5년여 뒤인 1994년 4월 18일 약 16만 달러 정도 손해를 본 32만 8000여 달러에 이 콘도를 매각한다. 경기침체로 부동산 시세가 많이 하락한 탓에 손해를 감수하고도 매각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듬해인 1995년 9월 장남 정한 씨도 아트리움 콘도 한 채를 매입하게 되는데 매입가격은 김 씨의 매도 가격과 비슷한 35만 달러였다.
김 전 부장이 실종된 뒤 정한 씨가 크게 상심하며 방황하자 플로리다주에서 자그마한 농장을 경영하도록 도움을 준 김 씨는 2001년 8월 15일 자신이 51%, 정한 씨가 49%의 지분을 가지는 조건으로 알파인 처치 스트릿에 단독주택 한 채를 사줬다. 1.22에이커 대지의 이 주택 매입가는 99만 달러였다.
하지만 2002년 9월 5일 정한 씨가 사망하자 2년 뒤인 2004년 8월 13일 김 씨는 이 집을 153만 5000달러에 팔아치웠다. 이 과정에서 김 씨와 큰며느리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법정으로 가게 되고 결국 큰며느리는 자녀 3명과 함께 몹시도 힘든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김 전 부장의 유가족들은 김 전 부장이 실종된 뒤에도 미국에서 수 차례의 부동산 거래를 했고, 현재는 알파인에 600만 달러에 달하는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는 등 상당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부장과 그 가족들과 관련된 부동산을 조사한 결과 눈에 띄는 점은 김 전 부장이 거의 모든 부동산을 부인(김영순) 소유로 하고,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겼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집인 알파인 하이우드 플레이스의 주택을 구입할 당시인 1974년 8월 김 전 부장이 부인과 함께 융자서류에 서명한 것이 거의 유일한 부동산 서류였다.
미국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김 전 부장 유족들이 실종 1년 6개월 만인 1981년 4월 뉴저지 법원으로부터 받아낸 ‘김형욱 사망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유산 상속에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김 전 부장 명의의 부동산이 전무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인 김영순 씨가 유산 상속인으로 지정된 이면에는 부동산보다는 미국과 스위스 등에 예치돼 있는 예금을 갖게 됐다는 점에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란 얘기다.
미국 정부는 오는 12월 스위스 은행인 UBS로부터 미국 갑부 4000여 명의 계좌 내역을 넘겨받기로 예정돼 있다. 30년 넘게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김 전 부장의 스위스 계좌 진위 여부 및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재산 미스터리가 그 베일을 벗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뉴욕=안치용 재미블로거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