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렉스 극장이 도입되면서 가장 기대됐던 부분은 상영관이 많아진 만큼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으리라는 점이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관객이 드는 영화에만 상영관이 편중되면서 오히려 몇 편의 대박 영화가 대다수의 상영관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은 부가판권 시장의 확대다. 인터넷 다운로드나 TV VOD 시장의 확대로 극장 개봉작이 아닌 영화도 대중들에게 공급되고 있다. 과거 비디오 대여시장 전성기 시절에도 극장 개봉작은 아니지만 비디오로 소개되는 영화들이 여럿 있었다. 그런 상황이 요즘 다시 연출되고 있는데 관건은 숨은 보석 찾기다. 그런 측면에서 <블렌디드>는 말 그대로 숨겨진 보석이다.
이 영화는 지난 10월 16일 개봉했으나 포털사이트에는 줄거리조차 제대로 소개가 돼 있지 않다. 제목도 의미가 아리송해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우선 극장 개봉작은 아니다. 할리우드영화 직배사 워너브라더스코리아가 IPTV를 통해 영화를 개봉하는 ‘IPTV 국내 최초 개봉관’을 오픈해 그 첫 작품으로 내세운 영화가 바로 <블렌디드>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가 ‘IPTV 국내 최초 개봉관’ 첫 작품으로 선정할 만큼 야심작이긴 하나, 아직까진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원제는 <Blended>, 러닝타임은 117분이다.
주연은 아담 샌들러와 드류 베리모어다. 지난 98년 <웨딩 싱어>에서 첫 호흡을 맞춘 뒤 2004년작 <첫 키스만 50번째>에서 또 한 번 최고의 앙상블을 보여준 이들은 <블렌디드>에서 다시 한 번 뭉쳤다. <첫 키스만 50번째>와 <웨딩 싱어>는 모두 검증된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이며 <블렌디드> 역시 이들 듀엣의 명성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명작이다.
사실 영화는 다소 뻔한 설정을 갖고 출발한다. 아내와 사별한 짐(아담 샌들러 분)은 홀로 세 딸을 키우고 있다. 그리고 이혼녀인 로렌(드류 베리모어 분)는 두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다. 딸만 키우는 아빠인 짐은 아내의 부재로 힘겨워하며, 아들만 키우는 로렌 역시 남편의 빈자리가 크기만 하다. 게다가 아이들이 서서히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어려움은 더욱 커져만 간다. 짐은 딸들을 아들처럼 키우다 보니 문제가 생기고, 로렌은 아들들을 딸처럼 키우며 너무 과잉보호하고 있다.
이런 두 집안이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연히 처음엔 티격태격하지만 짐의 딸들은 로렌에게서 엄마의 정을 느끼고 로렌의 아들 역시 짐을 통해 씩씩함을 배워간다. 그리고 짐과 로렌은 진정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건 굳이 영화 초반부만 봐도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결말이다. 관건은 뻔한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얼마나 아기자기하고 짜임새 있게 풀어나가느냐다.
영화 <블렌디드>는 뻔한 설정과 결말을 극복하기 위해 두 가족이 아프리카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을 활용했다. 남아프리카의 썬시티 리조트는 복합가족을 위한 행사를 마련한다. 여기에는 재혼 등을 통해 새로운 복합가족이 되는 이들이 여행객으로 모인다. 아이들은 충분히 여행과 관광을 즐기고 새롭게 부부가 된 부모들에겐 로맨틱한 순간을 마련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짐과 로렌은 복합가족이 되려다 재혼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지인들을 대신해 아프리카를 찾게 됐다. 결국 복합가족을 위한 행사에 참석한 가족들 가운데 유일하게 짐과 로렌의 가족만 복합가족과는 무관한 각각의 가족인 셈이다. 물론 그들 역시 결국에는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아프리카에서의 여행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며 뻔한 영화가 될 뻔한 전형적인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다. 또한 복합가족들을 위한 여행 상품이라는 소재도 꽤 신선하다.
제목 <블렌디드(blended)>의 뜻은 ‘(차 담배, 술 등이) 혼합된’이다. 보통 혼합된 술을 얘기할 때 자주 사용하는 용어다. 그렇지만 가족 앞에 이 형용사가 붙으면 ‘복합된’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혼·재혼 등으로 혈연이 아닌 가족이 포함되는 복합가족을 영어 숙어로 ‘a blended family’라 표현한다. 이런 의미를 알고 있는 미국에선 <블렌디드>라는 제목이 쉽게 ‘a blended family’를 떠올리게 만든다. 세 딸의 아빠와 두 아들의 엄마가 재혼해 세 딸과 두 아들이 복합 가족을 이룬다는 영화의 줄거리가 녹아 있는 제목인 셈이다. 다만 이런 표현에 익숙지 못한 한국에선 <블렌디드>라는 제목이 많이 어색하다. 숨겨진 보석 같은 이 영화가 관객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제목’ 때문이다.
@ 줄거리
아내와 사별한 남자 ‘짐’(아담 샌들러)과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로렌’(드류 베리모어)의 첫 만남은 소개팅이었다. 그렇지만 인위적인 소개팅은 장소부터 음식, 대화까지 모든 게 엉망이 되고 만다. 이로 인해 짐과 로렌은 서로에 대한 최악의 첫인상만 공유한 채 헤어지게 된다.
사실 로렌의 절친 ‘젠’과 짐의 회사 사장 ‘딕’은 재혼을 앞둔 사이다. 딕은 젠과 함께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하지만 아이 양육문제 등으로 갈등이 불거져 아프리카 여행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이에 로렌은 젠의 여행 티켓을, 짐은 딕의 여행 티켓을 싼 값에 구입해서 대신 아프리카로 떠나게 된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아프리카를 보여주고 싶었던 짐과 로렌의 가족은 각각 남아프리카 선시티 리조트로 떠난다.
문제는 딕이 예약한 여행 상품이다. 재혼 등으로 새로운 복합가족이 되는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예약한 터라 현지 관계자들은 짐과 로렌을 예비부부로 알고 있으며 양가의 아이들이 새롭게 가족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모든 여행 상품을 마련해 놓은 것. 그리고 다른 여행객들은 모두 재혼 등으로 새롭게 복합가정을 이루는 이들이다. 이런 묘한 상황에서도 짐과 로렌은 계속 티격태격하지만 서서히 서로의 아이들을 통해 다가서기 시작한다.
@ 배틀M이 추천 ‘초이스 기준’ : 가족애와 로맨스까지 따뜻한 영화를 원한다면 클릭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 어울리는 영화들이 있다. <러브 액츄얼리>와 <로맨틱 홀리데이> 등이 대표적인 영화다. 올해는 <블렌디드>를 추천한다. 연말연시라면 겨울 영화를 얘기하지만 사실 <블렌디드>는 아프리카가 배경이라 굳기 구분하면 여름 영화다. 그렇지만 누군가 최고의 크리스마스는 하와이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경험이라고 얘기한다. 그만큼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도 이색적인 매력이 있다. <블렌디드>는 남녀의 로맨스부터 가슴 찡한 가족애까지 매우 따뜻한 영화다.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형적인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의 색깔이 유지돼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추운 겨울, 영화를 통해 아프리카 구경도 하고 따뜻한 가족애와 로맨스도 만나보면 어떨까.
@ 배틀M 추천 ‘다운로드 가격’ : 5000원
아무래도 엄청난 제작비를 투자해 볼거리가 풍성한 영화들이 다운로드 가격 책정에서도 조금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블렌디드>는 충분히 좋은 영화임에도 다소 낮은 다운로드 가격을 책정해야 하지만, 아프리카 여행이라는 소재를 통해 영화에 담긴 볼거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3000원으로 생각했던 추천가격을 5000원으로 올렸다. 로맨스 영화로는 이미 충분한 가치를 가진 영화다. 여기에 최근 들어 상품화가 되고 있지만 아직까진 쉽게 접하기 힘든 아프리카 여행을 대신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더욱 배가되는 영화다. <꽃보다 할배> 시리즈가 다음에는 아프리카를 가면 어떨까 싶은 괜한 생각까지 들게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