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주들 때려잡으며 주먹생활 시작했지…
▲ 박종선 씨와 그의 일대기를 소재로한 드라마 <무신>을 제작 중인 김성수 감독(오른쪽). | ||
몇 마디 안부만 오간 짧은 통화였지만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꼿꼿이 앉아 ‘아우’의 전화를 기다리던 백발의 노신사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 씨의 전화를 받은 노신사는 바로 호남주먹 1세대로 60년대 ‘명동 번개’로 명성을 떨쳤던 박종선 씨(74)다.
전쟁 후 내로라하는 한국 주먹들은 혼란하고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를 타고 정치판에 흘러들었다. 이권을 잡으려는 정치인들은 혈기왕성한 주먹들을 노골적으로 이용한 후 토사구팽시켰다.
유지광 이정재 임화수 이화룡 등 당시 한국 주먹계를 풍미했던 거물급 주먹들은 ‘정치깡패’로 비참한 최후를 맞거나 운명을 달리하는 등 이제는 모두 저세상 사람이 됐다. 이정재의 동대문 사단에서 활동할 당시 인연을 맺은 후 평생 박 씨를 친동생처럼 여기고 돌봐주던 낙화유수 김태련 씨마저도 3년 전 세상을 떠났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쟁쟁한 인물들과 교류하며 한국주먹사의 산증인으로 통하는 박 씨는 신상현(신상사) 정종원(오따) 등과 함께 현존하는 마지막 주먹으로 꼽힌다.
좀처럼 언론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던 박 씨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극구 만남을 거절하던 그와의 인터뷰는 며칠 전 있었던 후배 김태촌 씨의 출소를 계기로 이뤄졌다.
종로에 위치한 사무실에 들어서자 반듯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백발의 노신사가 기자를 맞았다. 나직하면서도 정중한 말씨는 그의 또 다른 별명인 ‘명동주먹신사’를 연상케했다. 잘못 사용하면 사람을 죽인다는 치명적인 기술인 ‘살수’를 연마한 박 씨는 일흔을 훨씬 넘긴 나이임에도 다부지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김태촌 씨에 대한 얘기로 시작됐다.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통화했어요.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한 게 기분이 이상하더라구요. 그날 밤 한숨도 못 잤어요. 태촌이 나이가 벌써 예순이잖아요. 안쓰럽기도 하고…. 속으로 ‘태촌아, 이제 두부 그만 먹어야지’ 그랬어요.”
김 씨의 추후 행보에 대한 질문에 박 씨는 “믿는다”는 말로 대신했다. “더이상 불미스러운 일로 언론에 나오거나 구설에 오르는 일도 결단코 없을 겁니다. 이는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선배만이 보낼 수 있는 신뢰예요. 태촌이도 자신을 향한 형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할 나이 아닙니까. 지켜봐줍시다. 아무리 자신을 손가락질해도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박 씨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고 사회에 피해를 주는 요즘의 조폭을 옹호할 뜻은 추호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최근의 조폭은 강자에게 착취당하고 설움받는 시민들을 보호하고 부정한 권력과 불의에 맞서 기꺼이 주먹을 휘두르던 박 씨 시대의 ‘건달’ ‘협객’과는 엄연히 다르며 백해무익한 사회악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박 씨는 전남 함평의 내로라하는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린시절부터 싸움 하나는 타고났다는 평을 듣고 지역사회에서 활동을 시작했지만 그가 정작 제대로 주먹을 쓰기 시작한 것은 고교시절, 교내 조직 우두머리가 급우들을 괴롭히고 포주들이 창녀촌 여성들을 착취하는 모습들에 울분을 느끼면서부터였다. 종로의 김두한과 동대문의 이정재가 주먹깨나 쓴다는 이들의 우상이었던 시절, 용산을 평정했던 박 씨는 동대문사단에 스카우트되고 유지광, 낙화유수 등과 인연을 맺으면서 이름을 날렸다. 맨주먹이 워낙 센 데다가 그 스피드를 따를 자가 없어 ‘번개’라는 별명이 붙여진 것도 그 무렵이다.
하지만 20년 넘게 주먹세계에 몸담았던 박 씨는 “작두날 위에서 살아온 인생이었다”고 회고했다. 타 지역 패거리들로부터 끊임없이 도전을 받았던 일, 정치권의 희생양이 되어 수모를 당해야 했던 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권의 하수인이 되라는 회유를 당했던 일 등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특히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구속될 위기에 처했을 때, 입대하는 작은 아들로부터 받은 “아버지를 남들에게 내보이지 못하고 숨기며 살아왔다”는 편지에 박 씨는 일순간에 무너져버렸다. 거액의 합의금을 내고 풀려났을 때 당시 30대 중반의 검사는 “합의금이 1억 5000만 원이라… 언제 시간 있으면 나도 좀 때려줘요. 나도 실컷 두드려 맞고 떼돈 좀 벌어 봅시다”라며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박 씨는 ‘이 순간부터 다시 태어나겠다’는 신념으로 치욕을 견디며 검사실을 나왔다고 회고했다. 아슬아슬한 위기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래도 아쉬울 것 없이 ‘폼나게’ ‘재미나게’ 살았던 그간의 삶을 미련없이 포기할 수 있었던 계기는 결국 가족이었다는 것. 이는 현재 박 씨가 정의사회실천모임(정사모)에 활동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사모는 1989년부터 범죄추방운동을 펼쳐온 민주시민연합의 전재혁 의장에 의해 결성된 단체로 박 씨는 2002년부터 이 모임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흔히 건달세계에 몸담은 사람치고 피가 뜨겁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 혈기를 참지 못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거예요. 그들에게 의협심을 불러일으킨다면, 그들 스스로 정의를 실천하게끔 한다면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리라 생각한다”는 게 박 씨의 지론.
정사모는 범죄예방 활동은 물론 한때의 유혹을 못 이겨 나락으로 빠져들었거나 출소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이들을 교화시키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박 씨가 정사모 이사장을 맡았을 때 그는 또 한번 냉소적인 시선을 감내해야했다. 조폭 소탕으로 유명한 한 검사에게 불려가 “여러 조직들을 모아 범죄조직을 결성하려는 것 아니냐. 찬조금·후원금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려는 것 아니냐”는 취조를 당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분하고 서글픈 마음이 들었지만 사회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야겠다는 신념으로 묵묵히 활동을 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주목할 만한 점은 현재 박 씨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 <무신>이 제작중이라는 사실이다. 제작을 담당하고 있는 김성수 감독은 “삼고초려 끝에 허락을 받아냈다. 총 54부작으로 제작될 이 드라마에는 박 씨가 주먹세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물론이고 60~70년대를 풍미한 주먹들의 인간미와 고뇌를 담을 예정이다. 또 자유당 정권과 5·16 군사정변, 유신헌법, 광주항쟁 등 나라를 뒤흔들었던 시대적 상황들도 고스란히 녹여내고, 이 작품을 통해 권력에 휩쓸린 주먹들과 그 이면에 가려졌던 진실을 밝혀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