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고 자식 없는 노인들만 만났다
일본의 60대 여성 지사코 씨와 결혼했거나 교제한 남성 여섯 명이 모두 그녀와 만난 지 얼마 안 돼 숨졌다. 경찰은 지사코 씨가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사진은 ANN뉴스 캡처.
그런데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경찰에 따르면, “지사코 씨와 결혼했거나 교제한 것으로 알려진 남성 6명이 모두 그녀와 만난 지 얼마 안 돼 숨졌다”고 한다. 이렇게 그녀가 물려받은 유산은 우리 돈으로 약 80억 원. 경찰은 유산이나 보험금을 노린 연쇄 살인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현재 수사를 벌이고 있다. 과연 지사코 씨는 온화한 주부의 탈을 쓴 연쇄 살인범인 걸까. 일본 언론 보도를 통해 유력한 용의자의 베일을 벗겨본다.
2013년 12월 28일 오후 10시. 일본 교토 무코시의 한적한 주택가에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들것에 실려 나온 남성은 이미 호흡이 정지된 상태였으며, 몸은 차가워져 있었다. 숨진 사람은 가케히 이사오 씨. 부검 결과 시신에서는 치사량이 넘는 청산가리가 검출됐다.
독살 가능성을 의심한 교토부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용의자는 여성 한 명으로 좁혀졌다. 2014년 11월 19일.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 사람은 놀랍게도 숨진 가케히 씨의 아내 지사코 씨였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녀를 향한 의혹이 이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1년 연말. 지사코 씨는 오사카에 사는 70대 남성 A 씨와 교제 중이었다. 주변 사람들에 의하면 A 씨는 무직이었으나 퇴직금과 물려받은 유산 덕분에 상당히 부유한 편에 속했다고 한다. 혼자 살던 A 씨는 곧잘 “어디 좋은 여자 없을까. 나야 돈만 많고, 외로운 사람이니까…”라며 하소연을 늘어놨다.
그러던 중 결혼상담소를 통해 온화한 미소의 지사코 씨를 알게 됐다. A 씨는 “71세에 이런 멋진 여자와 만나다니”라며 행복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몇 달 후 A 씨는 급작스런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만다. 당시 A 씨는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추정됐으나 경찰이 그의 죽음을 이상하게 여겨 수사에 착수한 결과, 그의 시신에서도 청산가리가 검출됐다.
이처럼 지사코 씨와 사귄 남성 여섯 명이 줄줄이 사망하자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게다가 숨진 남성들은 약속이라도 하듯 ‘그녀에게 유산을 상속한다’는 내용의 공정증서 유언을 작성해뒀다. 지사코 씨가 상속받은 유산만 최소 80억 원에 이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사코 씨는 손실 위험이 높은 금융상품 등에 돈을 투자해 통장에는 잔고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부드러운 화술로 남성들의 외로움을 달래줬다. 한 예로 숨진 가케히 씨에게는 결혼 전 “사랑하는 가케히 씨. 당신을 만나 무척 행복해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지사코 씨와 결혼한 남성은 바로 사망했다. 유산을 상속받은 그녀는 다시 결혼상대를 물색해야 했다.
네 번째 남편인 가케히 씨가 숨진 뒤에도 지사코 씨는 즉시 다음 상대를 찾고 있었다. 남편의 49재를 치르기도 전에 또 다른 남성과 교제를 시작한 것이다. 지사코 씨는 남편이나 애인이 죽을 때마다 새로운 결혼상담소에 가입했으며, 등록할 때는 “결혼은 한번 한 적이 있다”고 혼인 경력을 속인 것으로 경찰조사에서 밝혀졌다.
현재 지사코 씨는 “절대 죽이지 않았다”며 결백을 호소하고 있다. 그녀는 “어떻게 내가 독약을 구할 수 있는지 오히려 되묻고 싶다”라고 말하며 살인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사건 입증의 최대 관건은 청산가리의 입수 경로다. 경찰은 그동안 약국, 금속가공업체 등을 샅샅이 조사해 왔으나 지사코 씨가 구입한 흔적을 밝혀내진 못했다.
또 숨진 가케히 씨의 체내에서 청산가리가 검출되기는 했지만, 입이나 목 등에서는 독극물의 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은 점을 들어 용의자가 약물을 캡슐에 넣어 먹게 하는 방법으로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 오카모토 히데오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독극물 범죄에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그중 청산화합물은 유독 맛이 쓰다. 먹으려고 해도 뱉을 수밖에 없다. 과거 유사 사건에서 청산가리를 음료에 혼입하는 수법이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약물을 캡슐에 넣어 갑자기 내미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뭔가 사전에 공작을 벌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가케히 씨가 숨지기 전 용의자는 약국에 수면제를 사러 갔다가 처방전이 없어서 구매를 못하자 비슷한 효과를 내는 중국 약초를 산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수면 성분이 있는 약초를 먹인 뒤, 청산가리를 빈 알약 캡슐에 넣어 먹였을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경찰은 앞으로 “지사코 씨를 구속해 일련의 살인 사건에 대해 추가 수사를 계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용의자 지사코의 과거 회사 파산 뒤 돈 칩착 용의자 지사코 씨는 1946년 후쿠오카현 기타규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제철회사 근무, 어머니는 전업주부인 일반적인 가정에서 자라 현내 명문학교인 도우치쿠 고교에 입학했다. 당시 그녀의 인상을 동급생 남성은 이렇게 기억했다. “차분한 인상으로 성적도 우수해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팬을 자처하는 남학생들이 있을 정도였다. 본인은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했으나 가정형편으로 단념했고, 은행에 취직한 것으로 안다.” 이후 그녀는 첫 번째 남편과 만나 결혼했으며 두 아이도 태어났다. 종업원이 10명 정도인 작은 인쇄소를 운영하던 남편은 1994년 위암으로 사망. 그녀가 회사를 이어받았지만, 경영이 잘 되지 않아 빚더미에 올랐다. 결국 파산했고, 10년 전에는 집도 압류돼 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경험이 돈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 것일까. 그로부터 그녀는 결혼상대로 돈 많은 고령자 남성을 찾기 시작했다.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