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먹고 빼돌리고…’ 군납비리 정조준
▲ 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 4일 시무식에서 국부유출 비리 관련 대대적인 수사를 감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김준규 검찰총장은 4일 대검찰청 시무식에서 “나랏돈을 빼먹는 범죄, 국부를 나라 밖으로 빼돌리는 범죄를 상대로 힘을 쏟자”고 언급해 국부를 해외로 유출시키는 비리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감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김 총장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해 말 법무부와 검찰의 청와대 업무보고 당시 “방위산업 관련 비리를 근절하겠다”고 밝힌 것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검찰이 겨냥하고 있는 국부유출 비리 사건의 첫 타깃은 군납비리가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국방사업은 군사비밀이라는 이유로 사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무기 원가는 하느님만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첨단무기의 성능과 원가 관련 정보들은 군 내부 일부 전문가들이 독점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군 실무자 몇 명과 국내·외 방산업자가 결탁할 경우 막대한 세금이 리베이트로 새 나갈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그런 정황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올 국방부 예산(29조 5627억 원) 중 무기도입 등 방위력 증강 관련 예산은 무려 9조 1030억 원에 달한다. 따라서 수조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방위산업 분야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감독과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는 일찌감치 불거져 나왔다.
이번 사정에는 지난해 6월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종료된 후 사실상 휴업에 들어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직접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최근 중수부는 전문 수사능력을 갖춘 검사 25명을 상대로 매월 한 차례씩 소집훈련을 하는 등 사정 재정비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검찰은 중수부 수사요원으로 선발된 검사의 경우 매달 1회 이상 집합연수를 실시해 수사 전문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군 비리 의혹과 관련된 검찰의 수사현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계룡대 근무지원단 납품 비리 및 수사 방해의혹, 불곰사업 등 무기도입 사업 중개 수수료 비리 의혹, 해군 고속정 발전기 납품 비리 의혹, K-9 자주포 부품 납품과 과다계상 의혹, 야간표적지시기 납품 과정에서의 부당이득 의혹, 터키업체로부터 1000억 원대 공군 전자전훈련장비 도입과정에서 리베이트 조성 의혹, 국군지휘통신사령부 납품 비리 의혹, 한국형전투기 및 한국형 헬기관련 기밀유출 의혹 등이다.
국방부 검찰단이 지난해 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이한성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비밀엄수의무 위반으로 징계받은 군 장교는 2005년 513명에서 2008년 1159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으며 2009년 상반기만 647명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지난해 국정원과 군 기무사령부가 ‘한국형 전투기(KF-X)사업’ 추진 과정에서 벌어진 불법로비 의혹 및 군사기밀 유출에 대한 수사를 공동으로 진행한 결과 전직 장성급 등 군 고위 관계자들이 대거 개입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지난해 12월 1일 해외 군수업체의 용역과제를 수행하면서 군사기밀을 무단으로 수집한 혐의(군사기밀보호법 위반)로 예비역 공군 소장 김 아무개 씨(55)와 육군 대령 출신의 안보경영연구원장 황 아무개 씨(64), 안보경영연구원 전문위원 유 아무개 씨(56)를 구속기소하고, 또 다른 위원 이 아무개 씨(56)를 불구속기소한 바 있다.
스웨덴 군수업체인 사브그룹으로부터 1년간 월 1000만 원을 받는 조건으로 컨설팅 계약을 체결한 김 씨는 국방대학교 도서관 비문·특수자료열람실 등에서 ‘합동군사전략 목표기획서’ 일부를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는 등 세 차례에 걸쳐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관련 군사기밀을 수집한 뒤 이메일을 통해 사브그룹 측에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씨가 수집한 자료에는 수송기나 훈련지, 헬기 및 전투지원 물자들의 현황과 증강 계획 등이 담겨 있어 유출될 경우 전력 노출이 우려되는 2·3급 군사기밀 문서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황 씨 등은 퇴역 후 2005년 3월 사단법인 안보경영연구원을 설립한 뒤 미국 군수업체 노드롭 그루먼(NGC)으로부터 한국의 해상 감시정찰과 관련된 연구용역을 수주하면서 관련 군사기밀을 NGC에 유출한 혐의를 받았다.
군납비리·무기도입 리베이트와 관련된 사건도 상당수에 달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는 지난해 11월 18일 ‘불곰사업(구 소련에 빌려준 차관 일부를 러시아제 무기로 상환받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3억 1000만 달러(당시 한화 3400억 원 상당)의 러시아 무기 도입을 중개해 준 대가로 러시아 업체들로부터 수수료 명목으로 약 800만 달러(84억 원 상당)를 받아 은닉한 혐의로 국제 무기중개업체 일광공영 대표 이 아무개 씨를 구속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국방부가 발주한 대대급 교전훈련장비와 야간표적지시기 생산과정에 위장 업체를 끼워넣는 방법으로 국산화율을 부풀려 계약을 체결하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제출해 원가를 과다 계상하는 방법으로 장비 납품대금 220억 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는 일명 ‘로우테크놀로지 군납 사기사건’의 주역인 주관엽 씨는 현재 인터폴에 수배령이 내려진 상태다.
또 지난해 말에는 미국계 무기부품 제조업체인 한국무그가 우리 기술로 개발한 K-9 자주포의 부품을 납품하면서 10여 년 동안 단가를 부풀려 59억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나 업체 관계자가 구속기소됐다. 또 두산인프라코어 전 임원 2명은 해군 고속정 엔진의 납품 가격을 부풀리고, 국책과제 연구비를 횡령하는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군 검찰도 국군지휘통신사령부의 납품 및 하도급 업체 선정 과정 비리를 적발해 군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하는가 하면 기무사령부 청사 신축공사와 관련된 기밀 유출, 한국형헬기(KMH, KHP) 및 각종 군장비 입찰 관련 기밀유출 의혹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했거나 현재도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검찰은 특정 정치인이 특정 업체의 군사 장비가 채택될 수 있도록 군 당국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져 수사 추이에 따라 적잖은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율곡비리’ 이후 최대 군납비리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