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가 가사만 바뀐 채 한국 군가로”
▲ 민족문제연구소가 건물 5층을 개조해 일제탄압에 대한 체험공간으로 바꾼다. 기미독립선언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민문연은 그 중 특별한 의미가 있는 유물 및 비공개 자료를 <일요신문>에 공개했다. 친일파 행적이 담긴 일본 경찰 인명부, 일제시대에 부르던 군가가 담긴 레코드 판, 일본 검사의 3·1운동 관련자 기소 자료 등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귀중한 자료들을 통해 일제 식민통치의 어두운 그림자를 되짚어 봤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한 날 특정한 장소를 찾아 떠난다. 민족의 명절인 설날과 추석에는 선산과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내려간다. 식목일엔 산에 가서 나무를 심고, 어린이날엔 아이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간다.
하지만 정작 일본 식민 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3·1절과 8·15 광복절,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한 경술국치(8월 29일) 등 일제 식민 역사와 관련된 중요한 날에는 사람들이 찾아갈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는 게 현실이다. 민문연은 어두운 민족사를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 식민통치와 관련된 역사의 날에 사람들이 일제 탄압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다. 연구소 5층에 있는 30평 공간을 개조해 전시 박물관을 마련한 것이다. 현재 이곳에는 일제 식민 통치 모습을 반영한 수천 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일단 3·1절을 기념해 언론에만 일부 자료를 공개했으나 곧 박물관을 전면 개방해 상설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이번 전시에서 민문연은 일본에서 입수한 만세운동 탄압 기록을 공개했다. 이는 조선총독부 검사였던 이시카와 노부시게가 함경도 지역 3·1운동 참여자를 기소하기 위해 기록한 자료다. 이시카와는 3.1운동을 보안법 위반으로, 독립선언서 인쇄 배포를 출판법 위반으로 독립운동가들을 기소했다. 조영신, 이구준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 때문에 가혹한 형량을 받고 사망하고 만다.
이 기소 자료는 재판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북한 지역 기록이란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이 자료 속에서 귀중한 ‘3·1독립선언서’ 원본이 나오기도 했다. 이는 보성사에서 인쇄한 2만 1000장 중 한 장으로, 선언서 뒷면에는 ‘순사가 습득한 종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특히 이 선언서 첫줄에는 ‘朝鮮(조선)’이 ‘鮮朝(선조)’로 잘못 인쇄돼 있었는데 이는 원본임을 입증하는 소중한 단서가 됐다고 한다.
▲ (왼쪽)기소자료집, (오른쪽 위)일본군가 음반, 조선지경무기관. | ||
연구소 지하 1층에는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수만 점의 유물이 잠자고 있다. 일본 경찰이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는 데 썼던 화승총을 비롯해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 잡지 등 5층 박물관보다 더 넓은 공간에 수만 점의 자료들이 소장돼 있다. 김승은 민문연 자료팀장은 일본 군가가 담긴 레코드판 전집을 꺼내 기자에게 소개했다. 김 팀장은 “많은 수의 일본 군가가 해방 이후 가사만 바꿔 한국 군가로 둔갑했다”고 말했다. ‘이 나라 지키자’며 목이 터져라 불렀던 군가 속에도 일제 식민 잔재가 남아있음을 아는 군인은 아마 몇 안 될 것이다.
민문연이 이처럼 방대한 양의 자료 를 수집할 수 있었던 것은 유물을 기증한 후손들과 일본 내 시민단체의 도움 덕분이었다. 민문연은 올해 가을께 일본 시민단체와 연합해 일본 여러 곳을 돌며 식민통치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김 팀장은 “민문연이 한일 역사 교류를 선도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증거가 부족해 보상을 받지 못했던 독립운동가의 후손 분들에게 연구소에 소장된 자료를 제공해 도움을 드리기도 했다”며 “역사란 지나가버린 과거가 아니다. 역사는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밝힐 등불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민문연이 식민통치 유물 공개에 이어 또 어떤 사회적 이슈를 이끌어 낼지 자못 궁금하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