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차지하고 들어앉자 사방에서 옥신각신
지난 9월 12일에 촬영한 서울 북아현동 이화여대 기숙사 신축공사 현장. 자동차 한 대 다닐 만한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단독주택가와 맞붙어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지난 12월 12일 오후 1시 40분께 논란이 되고 있는 이대 기숙사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언덕에 기존 기숙사 주변을 둘러싸고 높은 펜스가 설치돼 있고 한쪽에는 소음 방지를 위한 에어 펜스가 설치돼 있었다. 펜스 안쪽에는 기초 공사로 땅 다지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공사장 앞은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통행로를 사이에 두고 단독 주택들이 늘어서 있었다. 기숙사 공사장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그동안 공사 소음과 비산 먼지, 그리고 산지 훼손 등으로 인한 환경 파괴를 이유로 기숙사 공사를 반대해 왔다.
공사장 바로 건너편 주택에 거주 중인 한 70대 할머니는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벽 6시 전부터 공사가 시작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학교 측은 땅이 본인 소유라고 하지만 나라에서 숲으로 지켜온 땅이다. 생나무를 깎고 산에다 건물을 짓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계속 반대해 왔지만 이쪽에는 거주민 수가 적어 통하지 않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공사장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어린이집 보육 교사 A 씨(30세)도 “지금은 조용한 편이지만 땅을 뚫는 공사 같은 것을 하면 소리가 엄청나다. 어린이집 교실 내에서 소음 강도에 따라 체크리스트를 표시해 두고 있는데 일주일에 2~3회 정도 큰 소음이 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나. 펜스도 설치하고 건설사에서 공기청정기를 제공해 줬지만 환경이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다”고 우려했다.
“건물이 완공되면 기숙사 바로 밑에 있는 단독주택 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다”는 주장을 하는 주민들도 많았다. 기자가 보기에도 경계선 가까이에 건물이 올라간다면 공사장 바로 앞에 위치한 집들은 창문을 열어놓고 살기는 어려워 보였다.
주민들의 반발과 특혜논란은 있었지만 구청에서 건축 허가를 내줬기에 법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산림청이 이화여대 기숙사 신축공사 허가를 내준 서울 서대문구청에 ‘해당 공사를 중단한 후 허가를 재검토하라’는 시정조치를 내리면서 법적인 문제도 부상했다. 산림청은 학교 측이 건축 허가를 받은 부지가 산지관리법에 해당하는 ‘산지’로 판단하고 구청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위법 사항이 있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다. 산림청으로부터 산지전용허가를 받았어야 했다는 얘기다.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북아현동 숲 3만 149㎡는 학교 측은 산지가 아니라고 봤지만 산림청은 산지에 해당된다고 본 것이다.
산림청의 권고에 구청 측은 ‘해석의 차이’라고 대응했다. 해당 부지가 산지냐 아니냐는 부지를 둘러싼 벽을 ‘담장’으로 볼 것인가 ‘옹벽’(토사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구조물)으로 볼 것인가에 달려있다.
산림청은 부지를 둘러싼 벽을 담장이 아닌 옹벽으로 보고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해당 부지의 경우 도로가 개설되면서 설치된 벽이 옹벽에 해당되고 설치된 펜스는 토지의 경계로 해석해야지 담장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9월 16일 이화여대 인근 주민들이 이화여대 후문에서 기숙사 신축을 반대하는 집회를 가졌다.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그러나 구청 측은 그곳엔 기존에 이화여대 기숙사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는 것을 근거로 주변을 둘러싼 벽을 담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구청 측 관계자는 “우리는 산지가 아니라고 봤다. 산림청과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결정에) 큰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이 국민감사를 신청해 감사원에 의견을 다 제시했는데 감사원은 그것에 대해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 보는 시각에 따라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옳고 그르다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산림청에) 반박하는 질의서를 보냈으니 최종 결정이 나오면 그때 다시 검토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산림청과 주민들이 주장하는 원상복원 문제에 대해서는 “보시다시피 이미 공사가 상당부분 진행된 상황이라 어렵다”라고 선을 그었다.
산림청과 구청이 ‘담장’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결정권은 구청에 있다. 앞서의 산림청 관계자는 “우리가 강제할 권한은 없다. 법적 근거가 없기에 국민감사가 진행돼 우리에게 협조요청을 해올 경우 참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학교 측도 구청의 결정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이화여대 홍보팀 관계자는 “공사를 멈출 계획은 없다. 구청으로부터 공사 중단과 관련한 얘기는 듣지 못했다”며 주민들의 불만에 대해서도 “공사 민원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비산 먼지, 소음방지 등을 위해 펜스를 설치했고 공사 통행로도 교내로 돌려서 공사차량이 눈에 띄지 않도록 배려했다”고 해명했다.
이대 기숙사 신축부지 논란은 산림청이 나서면서 ‘환경’에 대한 문제도 촉발시켰다. 해당 사업은 박원순 시장이 2011년 취임 초부터 기숙사 신규 보급 정책에 역점을 두면서 추진됐다.
서울시는 지난해 5월 기숙사 확충을 위한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서울시 내 대학이 소유한 땅 118만㎡의 비오톱(Biotope) 등급을 하향조정했다. 이에 비해 상향조정된 면적은 42만㎡였다. 비오톱은 도시개발과정에서 최소한의 자연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생물군집 서식지의 공간적 경계를 뜻한다.
주민들을 포함한 우리생존권대책위, 국민행동본부 등의 시민·환경단체들은 “서울시가 이대 기숙사를 짓기 위해 2등급으로 하향 조정시킨 것은 명백한 특혜”라며 원상복구를 요구하기도 했다. 보수인사인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도 “박 시장은 환경론자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공약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숙사 부지 논란이 이처럼 확대되자 주민들도 보다 강력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주민대표 강호준 씨(61)는 “국민감사 청구서를 제출한 데 이어 지난 12일 변호사를 선임해 조만간 건물허가 무효 소송과 함께 공사중지 가처분신청을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