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갈 때 ‘직할’ 체제 강화하나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이 지분 매입을 통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 위치한 SK케미칼.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최창원 부회장의 지분 취득에 대해 SK케미칼 측은 “신사업 추진을 위한 경영권 강화”라고 설명했다. SK케미칼 관계자는 “SK케미칼이 추진하고 있는 신규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사업이 지닌 비전과 가치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최 부회장의 SK가스 지분 전량 매도와 SK케미칼 지분 매입에 이은 최대주주 등극으로 두 회사의 관계와 최 부회장의 지배력에 큰 차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SK가스 대표이사이기도 한 최 부회장이 비록 SK가스 지분을 전량 매도했지만 SK가스의 최대주주가 SK케미칼(45.54%)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장과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작지 않은 충격이었다. 최 부회장의 지분 변동 소식이 알려진 지난 11월 20일 SK케미칼과 SK가스 주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SK케미칼은 8.60% 폭등한 반면, SK가스는 무려 13.53%나 폭락했다. 두 곳 모두 거래량이 평소 대비 수십 배 증가했다. SK케미칼과 SK가스 측은 별 것 아니라며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최 부회장의 파격 행보의 여운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잠잠하던 ‘계열분리’ 얘기가 새삼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 최신원 SKC 회장이 SKC 지분을 늘리거나 최창원 부회장이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거나 할 때 SK그룹엔 사촌(최태원 회장-최신원 회장·최창원 부회장) 간 계열분리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그때마다 SK그룹 측은 “절대 그럴 일 없다”며 강하게 부인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최신원 회장이 대표로 있는 SKC의 최대주주는 그룹 지주회사인 SK㈜로 무려 42.30%를 보유하고 있다. 최신원 회장의 지분은 1.80%에 불과하다. 최 회장이 아무리 틈날 때마다 SKC 지분을 늘려간다 해도 SK㈜를 제치고 최대주주로 올라서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최창원 부회장이 맡고 있는 SK케미칼·SK가스는 사정이 다르다. SK㈜가 가진 지분이 없다. 이 때문에 두 회사는 SK건설과 함께 일찌감치 SK그룹 내 ‘소그룹’으로 분류돼 최창원 부회장이 독립 경영을 하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다 지난해 9월 최 부회장이 경영 악화의 책임을 지고 SK건설 부회장·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소그룹’에서 SK건설은 제외됐다. 최 부회장이 SK건설을 떠나며 보유 주식 일부를 무상증여한 것, 지난해 12월 SK건설 유상증자에 SK㈜가 참여한 것 등 SK건설을 둘러싼 일련의 일들은 SK그룹 계열분리 시나리오에서 건설이 빠질 것이라는 의견에 힘을 보탰다.
게다가 SK건설 역시 SKC의 상황과 비슷하다. 현재 SK건설 최대주주는 SK㈜로 44.4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SK건설 역시 SKC와 마찬가지로 최창원 부회장이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최대주주로 올라서기는 힘들다. 반면 SK케미칼·SK가스의 최대주주는 이미 최창원 부회장이다.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계열분리해 나올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 부회장의 SK케미칼 지분 취득에 대해 경영권 강화·방어 차원이라고 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지금도 안정적인데 더 강화하겠다는 것은 직접 챙기겠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내다봤다.
SK그룹 다른 계열사들과 달리 SK가스·SK케미칼 실적이 좋다는 것도 최창원 부회장의 계열분리설에 무게가 실리는 요인이다. 지난 3분기까지 SK케미칼의 영업이익 1400억 원, 당기순이익 443억 원을 기록했다. SK가스는 1128억 원의 영업이익에다 66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해 실적 부진에 시달리며 지난 9일 대대적인 인사 태풍을 겪은 SK그룹 대부분 계열사들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SK그룹은 최창원 부회장의 계열분리 가능성에 대해 여전히 부인하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계열분리 할 이유도 없다”며 “사촌간 사이가 나쁘다면 모를까, 우애도 좋다”고 말했다. 최창원 부회장의 계열분리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재계 인사도 적지 않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독립해서 그저 그런 중견기업으로 인식되는 것보다 SK그룹 밑에서 사업을 해나가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며 “재무적으로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쇄신 인사’에 SK내부 침울한 까닭 직원 구조조정설 ‘솔솔’ 지난 9일 단행한 SK그룹 사장단·임원 인사는 ‘세대교체·쇄신’으로 표현되고 있다.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부회장(66), 문덕규 SK네트웍스 사장(62) 등이 물러나고 1963년생인 장동현 SK텔레콤 사장과 박정호 SK C&C 사장 등 50대 초반이 계열사 사장 자리에 올랐다. 통신업계 대표 인물 중 한 명인 1957년생 하성민 사장 역시 그룹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 SK그룹의 이번 인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SK하이닉스를 제외한 대부분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교체됐으며 승진자 수가 지난해에 비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특히 100여 명의 임원이 회사를 떠나게 됐다. 최태원 회장이 부재한 상태에서 SK그룹이 실적 정체·악화에 얼마나 극심하게 시달리고 있는지 대변한다. 인사 발표 직후 SK그룹은 침울한 분위기에 빠졌다. 직원들의 구조조정 얘기까지 나돌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SK그룹의 인적 쇄신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들의 구조조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지난 7월 임원들이 연봉의 10∼15%를 자진 반납한 데 이어 직원들 연봉도 삭감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SK그룹 실적 악화는 증권가 일각에서도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SK그룹 계열사들의 현금흐름과 재무구조를 우려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며 “인적 쇄신뿐 아니라 사업 구조조정도 필요할지 모른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SK그룹 관계자는 “재무구조에 대한 우려는 지나치다”며 “사내 유보금이 충분하고 자금 동원력에도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지난 7월 15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SK그룹 사내 유보금은 60조 853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