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등의 전자기기로 영화를 보며 출퇴근하는 이들에겐 주의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야한 영화는 안 된다. 자칫 지하철에서 야동을 보는 변태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웃기거나 슬퍼도 안 된다. 무미건조한 지하철에서 혼자 튀는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자에겐 <우리는 형제입니다>가 그런 민망함을 건네준 영화였다. 야한 영화는 어느 정도의 기본 정보만 있다면 피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웃기거나 슬픈 영화에는 충분한 면역력을 갖췄다고 자신하는 터라 기자는 별 걱정 없이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이 영화를 봤다. 그렇지만 <우리는 형제입니다>를 보는 와중에 몇 번이나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다. 장진 감독 특유의 웃음 포인트에 기자는 몇 번이나 폭소가 터져버릴 뻔했기 때문이다. 웃음은 겨우 참았는데 울음까진 힘들었다. 상연(조진웅 분)과 하연(김성균 분)이 잃어버린 엄마 승자(김영애 분)를 만나는 장면에서 기자는 울어 버렸다. 그것도 방송 출연이 있어 풀 메이크업을 한 뒤 촬영이 끝나고 퇴근하는 늦은 밤 지하철에서 울어 버렸다. 남자였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마스카라가 번지는 참사(?)는 피했지만 주책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매우 곤혹스런 퇴근길이 됐다.
장진 감독의 영화다. 장진 감독은 영화계에서 천재라고 불릴 만큼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감독으로서도 자신만의 확고한 연출 철학을 보이는 그는 각본가와 제작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유감없이 자신의 천재성을 보여준다. 그의 영화에는 독특한 웃음의 코드가 있다. 너무 독특해서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웃음 코드가 아니라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기자는 개인적으로 그의 웃음 코드를 매우 즐긴다. 그가 연출한 영화 가운데 눈물을 쏟아낼 만큼 슬픈 영화는 드물다. 그렇지만 그의 영화 <아들>에서 한 번 가슴 찡한 슬픔과 감동을 경험한 기자가 <우리는 형제입니다>에서 비로소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해외로 입양돼 30년 만에 아들을 만나는 어머니가 아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 더욱이 그 어머니가 치매까지 걸린 상태라면 어떨까. 상연 하연 형제가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로 과연 어머니가 상연을 알아볼지에 관객들도 숨을 죽이게 된다. 같이 사는 작은 아들 하연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다. 30년 만에 만난 상연을 한번에 알아 봐도 말이 안 되고 몰라보면 영화의 재미가 반감되는 상황에서 장진 감독은 관객의 예상을 벗어나지만 가장 정답에 가까운 상황을 연출한다. 그 장면에서 어머니 승자의 대사에 기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 코드 역시 장진스럽다.
장진 감독의 영화는 독특한 자신만의 색깔이 있다.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 <킬러들의 수다> 등 데뷔 초 작품에서 그런 성향이 더욱 짙게 느껴지는데, 많이 대중화된 최근 그의 영화에도 독특한 그만의 색깔은 많이 남아 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그의 영화 가운데 가장 상업적인 성향이 짙다. <굿모닝 프레지던트> <퀴즈왕> 등 최근 몇 년 새 그의 영화에선 상업적인 성향이 조금씩 짙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이 잘 유지되고 있다는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사실 장진 감독의 재능은 상업적인 영역에서도 충분히 빼어나다. 오히려 자신이 연출하는 영화에선 자신의 색깔을 너무 강하게 유지하려다 보니 생각 만큼 흥행이 되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그가 대본을 쓰고 연출은 다른 감독이 맡은 영화 가운데 흥행작이 더 많다. <동감> <웰컴 투 동막골> <강철중: 공공의 적 1-1> 등이 대표적인 그런 영화들이다.
<우리는 형제입니다>의 강점은 그가 대본만 쓰고 연출을 맡지 않은 영화들처럼 상업적인 감각이 빼어나면서도 웃음 코드 등 본연의 연출 색깔도 잘 유지돼 있다는 점이다. 감독이자 대본가인 장진이라는 영화인의 장점이 응축된 영화라는 평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 줄거리
줄거리는 다소 많이 뻔하다. 그 이유는 설정 자체가 매우 인위적으로 보일 만큼 틀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형제가 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홀로 두 아들을 키우느라 고생하던 어머니는 두 형제를 고아원에 맡긴다.
형제 가운데 형 상연(조진웅 분)은 미국으로 입양되고 동생 하연(김성균 분)은 고아원에서 도망쳐 거리를 전전하며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낸다.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 형제가 다시 만난다. 미국에서 생활한 형과 달리 한국에서 지낸 동생은 계속 어머니를 찾아 다녔고 힘겹게 어머니를 찾았지만 이미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잠깐씩 정신이 돌아올 때가 아니면 아들도 못 알아본다.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만난 형제는 감격한다. 그런데 미국에서 온 형은 목사가 돼 있고 동생은 무속인이다. 둘 다 종교인이긴 한데 달라도 너무 다른 종교를 갖고 있다. 게다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방송을 앞두고 사라져 버린다.
이제 30여년 만에 만난 형제 상연과 하연은 어머니를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닌다. 결국 상연과 하연이 어머니를 찾아다니는 이야기가 영화의 주된 내용이며 스포일러랄 것도 없이 결혼은 어머니를 찾는 것이며 앞서 언급했듯이 상연 하연 형제와 어머니의 만남 장면은 눈물이 쏙 빠질 만큼 감동적이다.
30년 만에 만난 형제가 목사와 무속인이라는 설정부터 어머니는 이미 치매라는 설정 등은 매우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런 작위적인 설정은 모두 장진 감독이 설치한 웃음과 눈물을 위한 치밀한 계산이 깔린 장치들이다.
목사와 무속인이라는 상반된 직업만큼 30년 동안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상연과 하연 형제는 ‘만남’ 만으로는 치유되지 많을 시간의 공백을 서서히 메워간다. 각자의 상황과 상처로 서로를 오해도 하지만 결국 그들은 형제다. 그리고 치매에 걸려 전국을 헤매고 다니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두 아들을 고아원에 보낸 뒤 어떻게 30여년을 살아 왔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입양 등으로 부모 형제와 헤어져서 지낸 이들이 가족을 만나는 장면을 담아내는 TV 프로그램은 여럿 있다. 그렇지만 수십 년의 세월을 떨어져서 지낸 이들이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멋지게 만난다고 금세 다시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잃어버린 가족을 실제로 만난 이들이 다시 가족이 되는 과정의 사연은 목사와 무속인이 돼 만난 상연과 하연 형제보다 더 기구할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과거 ‘이산 가족찾기’부터 요즘의 ‘해외 입양인 가족 찾기’ 등 현실 속 가족 찾기 TV 프로그램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그려낸 영화라고 설명하는 게 가장 적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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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장진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무조건 강추다. 적어도 웃음 코드만큼은 최근 몇 년 동안의 장진 감독 영화 가운데 가장 좋았다. 조금 유치한 듯하지만 독특하고 기발한 장진 감독의 웃음 코드가 제대로 발휘됐기 때문이다. 상연 하연 형제의 어머니인 승자(김영애 분)가 치매로 우연히 장례 차량 버스에 타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나 무속인과 목사의 지갑을 훔친 소매치기 형제의 에피소드 등에서 장진 감독의 웃음 코드가 폭소를 유발한다. 게다가 울음 코드에서도 장진 감독은 자신만의 코드를 제대로 살려 냈다. 오랜만에 실컷 울고 웃은 영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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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웃음과 울음 등 대중적인 코드가 확실하며 대본의 완성도도 높다. 게다가 장진 감독 특유의 색깔을 바탕으로 작품성까지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요즘 영화계 최고의 신스틸러인 조진웅과 김성균은 공동 주연으로 영화를 이끌어 가며 주연배우로서도 손색이 없음을 입증해 냈다. 확실한 티켓 파워를 확보한 요즘 한창 잘나가는 최고의 주연급 배우들일 지라도 <우리는 형제입니다>에서만큼은 조진웅과 김성균만큼 잘 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김영애의 연기는 딱히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우리가 알고 있는 자신의 내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윤진이 역시 튀지 않고 조진웅과 김성균을 받쳐주는 조연 캐릭터를 적절히 잘 소화해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