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경찰청 외사과에 붙들려와 조사를 받고 있는 스리랑 카 출신 승려들 | ||
그들 앞에는 장부 몇 권과 예금통장, 전단지 따위가 놓여 있었다.이들은 모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기도 파주시에 자리잡고 있는 ‘○○도량’ 승려들이었다. ‘○○도량’은 주로 우리나라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마음의 평화를 찾아 모여들던, 일종의 안식처와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경찰에 끌려온 까닭은? 호젓한 산속에 자리잡고 있던 ‘○○도량’에서 그동안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스리랑카 출신의 미다야드(가명·33)와 싱(가명·32), 시브(가명·33)는 서로 단짝 친구들. 12세가 되던 해 나란히 불문에 귀의했던 이들 셋은 지난 94년 충북 진천 A사찰의 초청을 받아 동료 승려 15명과 함께 한국땅을 밟게 됐다. 당시 불교의 뿌리를 찾아 성지순례에 나선 A사찰 스님의 눈에 띄어 선발됐던 것.종교비자를 받고 한국에 입국한 이들 셋은 처음에 나란히 진천 A사찰에 적을 두게 됐다.
얼마간 그곳에서 머물며 기초적인 한국어 습득을 마친 이들은 같은 해 부산 B사찰로 옮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의 불교를 배우기 위해 입국한 이들의 순수한 목적은 변질되지 않았다. 미다야드와 싱은 이 기간 동안 각각 서울에 있는 E여대와 K대에서 마련한 언어연수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
한국 물정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이들은 지난 99년 6월 아예 자신들이 선원을 설립해 신도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모이는 경기도 파주시 ‘○○도량’은 이렇게 해서 생긴 선원. 주로 노동자들이 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린 종교행사에는 태국과 몽골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주변의 한국인들까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웃거렸다. 덕분에 신도는 갈수록 불어 평상시에는 30∼40명 선을 유지했고, 사월 초파일에는 수백명까지 모이는 제법 규모있는 선원으로 이름을 알려 나갔다.
▲ 스리랑카 출신 승려 3인방이 직접 설립해 운영해 오던 불교선원 입구 | ||
이들의 검은 속셈을 알 길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렵게 벌어들인 봉급에서 매달 1만원씩을 장학기금으로 기탁했다. 이렇게 신도 2백30여명에게 거둬들인 기금이 1년 사이 거의 1천만원에 육박했다. 대학의 불교관련 동아리나 종교단체에서도 이들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았다. 덕분에 이들의 손에 들어간 후원금은 모두 2천5백여만원.
하지만 이 돈은 애초의 목적대로 스리랑카에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대신 미다야드 등 이들 승려 세 명의 생활비와 유흥비 등으로 사용될 뿐이었다. 이들은 호텔이나 나이트클럽에서 승려가 아니라 ‘외국인 한량’ 행세를 했다. 특히 이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던 싱의 씀씀이와 그동안의 행각은 승려로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것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싱은 ‘○○도량’에 머무는 동안 모두 5명의 여신도에게 결혼을 미끼로 접근해 혼인빙자간음 행각을 벌였다. 심지어 도량 안에서 ‘색계’를 범하기도 했다. 태국과 몽골, 일본에서 건너온 세 명의 외국인 여성과 두 명의 한국인 여성이 피해자였다.
이 가운데 몽골 여성(37)은 “나와 결혼해서 몽골의 아들을 데려와 함께 살자”며 유혹한 싱에게 속아 두 차례의 임신중절 수술을 받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싱은 뒤늦게 자신과 같은 처지의 여성이 여러 명 더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몽골 여성이 이에 항의하자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자비로운 부처님도 이들의 행각을 더 이상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일까. 외국인 승려라는 신분을 이용해 이들이 벌였던 갖가지 사기극은 싱에게 속아 몸을 허락했던 한국인 여성 유아무개씨(32)가 인터넷에 이들의 행각을 폭로하면서 드러나게 됐다.
“실론이라는 나라에서 ‘땡중’ 3명이 우리나라로 건너왔죠. 그들의 개인적 생활은 수도자로서의 생활을 포기한 타락한 삶, 그 자체였죠. ‥ㆍ많은 선량한 사람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아 흥청망청 놀아났죠. 그네들은 스님들이 결코 하지 않는 육식과 술과 담배를 피우고, 나이트클럽에 가고 여자들을 사귀어 왔죠. 정말 엽기적인 얘기는 폭로의 글”결국 폭로의 글이 단서가 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이들의 간큰 행각이 밝혀지게 됐다. 이들은 ‘불법’과 속세의 법을 모두 어긴 범죄자가 된 것이다.환락에 빠져 승려이기를 스스로 포기했던 이들 세 명의 외국인. 애당초 이들이 꿈꾸었던 ‘코리안 드림’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