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교사 각본·기수 연출… ‘대역전 드라마’
경부대로가 14일 렛츠런파크서울에서 열린 그랑프리 경마대회에서 우승 후보 중 하나인 원더볼트를 제치고 결승선에 들어오고 있다. 사진제공=한국마사회
배당판이 열리자 한동안은 원더볼트가 단승식 1위를 유지했다. 아시아챌린지컵 준우승마의 관록이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10여 분 후부터는 벌마의꿈이 단승식 배당을 뒤집었고, 복승식에서도 축마로 부상했다. 여기에 노바디캐치미가 가세하면서 인기 3위를 차지, 복승식은 3파전 양상으로 바뀌었다. 경부대로는 생각보다 덜 팔렸다.
벌마의꿈은 익히 아는 것처럼 스피드와 지구력이 탁월한 말이다. 제 페이스대로만 선행을 간다면 이 말을 잡을 말은 아무도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벌마의꿈을 견제해줄 것인가.
대부분의 예상가들뿐만 아니라 필자도 선행마 매직댄서와 추입마 노바디캐치미를 동시에 출전시킨 김영관 조교사가 선행마인 매직댄서를 그냥 따라가는 작전으로 소모시킬 리는 없다고 판단했다. ‘앞선에 가세해야 더 뛰는 매직댄서인 만큼 선행에 실패하더라도 벌마의꿈을 압박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래야 노바디캐치미한테도 기회가 온다’고 봤다.
원더볼트는 뛰어난 스피드와 종반탄력을 자랑하는 말이다. 한 가지 우려가 있다면 아시아챌린지컵 대회에 주력하느라 최근 들어선 장거리 경주에 출전한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1400미터에 계속 출전하다 직전경주에서 1700미터를 뛰어본 게 고작이었다.
현장상태는 벌마의꿈, 원더볼트, 매직댄서가 양호했고, 노바디캐치미는 약간 흥분한 듯이 출장했는데 느낌은 썩 좋지 않았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듯 집중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우승마인 경부대로는 예전과 다르게 상당히 차분하게 나갔다. 느낌은 좋았는데, 씩씩하게 나가던 말이라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비인기들 중에서는 클린업조이가 최상의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필자는 견제를 받을 벌마의꿈은 3~4위권, 원더볼트는 2위 안에 유력, 노바디캐치미는 2~4위, 최상인지 아닌지 애매한 경부대로는 1~5위로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 1번 클린업조이만 혹시나 모를 이변 가능마로 결론을 내렸다.
필자와 주변 팬들의 최종결론은 이랬다. 주력마권은 2번 원더볼트를 놓고 9번 경부대로와 10번 노바디캐치미에 베팅하는 복승식이었다. 방어는 삼복승으로 갔다. 3번과 9번을 놓고 1번 클린업조이, 2번 벌마의꿈, 10번 노바디캐치미를 구매하고, 3번과 10번을 놓고 1번, 2번, 9번을 또 한번 구매하는 전략이었다. 내심 2번이 빠져주길 바라는 마권이었다.
레이스는 예상대로 진행됐다. 스타트가 워낙 좋은 2번 벌마의꿈이 초반에 제법 앞서갔지만 이내 4번 러시포스와 8번 매직댄서가 따라붙으면서 바짝 압박했고 레이스는 빨라졌다. 경주로가 상당히 무거운 상태에서 벌어진 경주였는데도 3코너 통과타임이 지난해 그랑프리 대회 때보다 더 빨랐다.
원더볼트는 선입권 바로 뒤에서 따라가고 있었고, 노바디캐치미와 경부대로는 후미에 위치해 있었다. 뒷직선에서 경부대로가 서서히 가속을 하면서 삼코너를 통과할 쯤에는 앞에 있는 노바디캐치미를 제치고 원더볼트 뒤에 위치할 만큼 추격했다. 이때가 고비였는데 원더볼트는 예상보다 반박자 빨리 움직였다. 4코너를 돌 때 선행마인 벌마의꿈, 매직댄서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경부대로는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 따라왔다. 노바디캐치미는 중위권에서 따라오고 있었는데, 거리가 좀더 벌어져 응원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윽고 결승주로 스퍼트! 원더볼트가 선행마 두 마리를 제압하며 한발 먼저 나가고 2번 벌마의꿈이 버티는가 싶었는데, 그 그림은 잠깐이었고, 경부대로가 빠르게 치고올라왔다. 순식간에 역전시키며 원더볼트마저 넘어섰고, 이후 3마신이나 벌리며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원더볼트가 2위, 벌마의꿈이 3위.
대상경주는 경주마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작전에 따라 순위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이 그런 경주였다. 조교사의 멋진 작전과 경주 흐름에 딱 맞게 마필을 유도한 최시대 기수의 승리였다. 원더볼트의 입장에선 최근 단거리 경주에 집중하는 바람에 장거리 적응력이 좀 떨어진 게 패인으로 분석됐다.
김시용 프리랜서
4위마 클린업조이 주목 늦발하고도 선전 추입마로 완벽 변신 그랑프리의 4위마는 누구일까. 많은 경마팬들은 1~3위 입상마는 잘 기억하지만 4~5위 말은 무관심하게 지나간다. 하지만 다음 출전 때를 대비하려면 4~5위 말의 경주 내용을 꼭 기억해두는 게 좋다. 재방송을 할 때 관찰하면 시간도 따로 필요하지 않다. 이번 그랑프리에서 ‘영예의 4위’는 1번 클린업조이가 차지했다. 애초 이변 가능마로 분류됐던 클린업조이는 고작 출전경험이 8전밖에 안되는 3세의 어린 말이지만 엄청난 잠재력을 보인 것이다. 발주고착성으로 심하게 늦발을 한 상황에서 일군 4위라 더욱 놀라웠다. 발주를 제대로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이런 성장세라면 내년에 큰 활약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클린업조이는 단거리에서도 뛰어난 순발력과 끈기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이미 드러난 것처럼 추입마로 완벽하게 변신을 해 장거리에서도 갈수록 위력을 더하고 있다. 혈통상으로도 4세가 되는 내년부터 더 큰 활약을 기대할 만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 마필의 도시지 파일은 [B I C S P : 4 3 11 0 2]로 최장거리 인자라 볼 수 있는 프로페셔널이 2다. 국내 경주마들은 대부분 이것이 0다. 클린업조이는 에이피인디 계열의 말이다. 부마인 퍼지(Purge)는 [G1]대회에서 우승을 한 마필이고 후대 활동도 왕성하게 했다. 모마는 더 눈여겨볼 만하다. 모마 그레타스조이는 실전경험이 없는 말이지만 그 아들들이 모두 경마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했으며 특히 한 마리는 블랙타입 경주에서도 우승했다. 클린업조이의 내년 활약을 기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