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인은 경찰에서 “남편이 이렇게 사느니 본인을 위해서도 죽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말 남편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사망 당시 남편의 두 손은 넥타이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경찰이 남편의 죽음에 대해 수상하게 여겼던 것도 손목에 남아 있던 상처와 비정상적으로 말라 있던 사체 때문이었다. 사고 전까지 10년 동안 자신과 살을 맞대고 살았던 부인에게 두 손을 묶인 채 지하의 좁은 방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야 했던 처지가 서러웠던 것일까. 반쯤 감긴 사체의 눈은 그저 허공만 응시하고 있었다.
지난 8월19일 오전 경기도 광명의 한 병원에 시신 한 구가 옮겨졌다. 키 174cm가량의 40대 남자의 사체였다. 원칙적으로 사망신고를 받은 경찰은 장례 전 반드시 사체의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사체 확인을 위해 병원에 찾아간 경찰이 목격한 것은 그야말로 ‘뼈만 남아 있다’고 할 정도로 바싹 말라 있는 시신이었다.
몸무게는 불과 33kg. 이 모습을 의아하게 생각한 경찰은 일단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사체의 부검을 의뢰했다. 정확한 부검 결과가 나온 것은 두 달여가 지나서였다. 부검 당시 사체의 안구는 완전히 건조된 상태였고 체지방은 전혀 없었다. 극심한 수분부족과 영양결핍에서 오는 현상이었다.
사체의 신원은 부인 이정미씨(가명?0)와 어린 딸(9)과 함께 방 두 칸짜리 지하 전셋집에서 살고 있던 평범한 가장 전형우씨(가명?2)로 확인됐다. 지난 93년 결혼한 이들은 이후 가구공장에서 일하는 전씨가 벌어오는 월급 1백여만원으로 생활을 꾸려왔다. 부부싸움도 있긴 했지만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 뒤 제 날짜에 받아오지 못하는’ 전씨 때문에 한 달에 3번 정도 말다툼을 하는 정도였다.
이들 가정에 불행이 찾아온 것은 지난 3월21일. 퇴근 후 술에 거나하게 취한 전씨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인적이 드문 새벽, 사고를 낸 차량은 중상을 입고 쓰러진 전씨를 방치해두고 그대로 내뺐다. 사고 이후 전씨는 지나가는 차량의 도움으로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이미 머리와 다리 등에 심한 부상을 당한 뒤였다.
의식까지 잃어 그 자리에서 영영 깨어나지 못할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전씨가 얼마간의 의식을 되찾은 것은 사고가 발생한 지 석 달이 지나서였다. 이들 부부의 절망적인 상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씨가 두개골 골절로 뇌까지 심하게 다쳐 정상적인 생활이 거의 불가능했던 것. 간신히 부인과 딸아이의 이름만 기억할 뿐 혼자 힘으로는 식사마저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전씨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누워있는 자세를 약간 바꾸는 것 정도였다. 이런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기 힘들었던 것일까.
경찰에 따르면 부인 이씨는 간병인을 고용해 둔 채 병원을 점점 멀리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전씨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퇴원해야 했다.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부인의 고민 때문이었다.
이때가 지난 7월29일. 경찰은 이즈음부터 이씨가 남편을 살해할 목적으로 빈 방에 가둬둔 채 굶기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씨는 경찰에서 “퇴원한 첫날에는 저녁을 지어 식사를 주었고, 그 다음날에도 남편이 국수를 좋아해 국수를 만들어 주었는데 먹고난 뒤 대소변을 보고 그걸 자기 얼굴에 칠했다”라고 말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남편이 죽으면 서로가 편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는 것. 이때부터 이씨는 넥타이를 이용해 남편의 두 팔을 방문 손잡이에 굳게 묶어놓고 식사를 끊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다리는 교통사고로 완전히 골절된 탓에 움직이기가 불가능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에는 의식도 또렷하지 않았고 그 소리 또한 너무 미약했다.
다행히 어린 딸이 중간에 자신이 먹고 있던 빵과 우유를 나눠주는 나름대로의 ‘호의’를 베풀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단 몇 차례로 끝났을 뿐이었다. 아직 어린 탓이었는지 아빠의 고통에 대해서는 알 턱이 없었던 것.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지하의 어두운 빈 방에서 남편 전씨가 사망한 것은 지난 8월19일. 남편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이씨는 이날 오전 경찰에 남편의 사망을 신고한 뒤 사체를 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처럼 완전범죄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매장 이전에 사망자의 상태를 확인하러 병원 영안실을 방문한 경찰이 한눈에 보기에도 사체가 비정상적으로 말라 있었던 것.
경찰은 남편이 퇴원 전까지 입원해있던 병원 담당의료진에게 사체의 사진을 보였다. 사체를 본 의사나 간호사들은 한결같이 “퇴원 전만 해도 상태가 많이 호전됐고 살도 비교적 많이 쪄 있었다”며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기보다는 굶어죽은 것 같다”고 소견을 피력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사체의 부검을 의뢰했고, 최근 전씨가 굶어죽었다는 결과가 나오자 부인 이씨를 검거해 범행 전모를 자백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