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에이즈 윤락녀 사건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전남 여수 등지의 남성들 사이에서 오가는 자조적 농담이다. 물론 현재 여수에는 이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연을 가진 남성들 또한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가 지난 1년 6개월 동안 일했던 전남 여수의 윤락가를 찾아가 봤다.
‘에이즈 윤락녀’ 구씨가 있었던 여수시 공화동 일대의 윤락가는 속칭 ‘역전’이나 ‘휴게소’로 불린다. 여수역 바로 옆에 위치했다는 점에서 역전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예전 버스 휴게소가 있던 자리에 들어섰다고 해서 휴게소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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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수에선 6개월 전 가요주점 접대부의 ‘에이즈 복수극’ 얘기가널리 퍼졌었다. 결국 헛소문으 로 밝혀졌지만 이번 사건과 너무 흡사해 경찰 관계자들마저 놀라고 있다. 사진은 구씨가 ‘일’ 하던 여수의 윤락가 골목. | ||
사건의 여파 때문인지 지난 7일 기자가 찾아갔을 때 거리에 나와있는 사람들은 업주들뿐이었다. 구씨에 대해 묻자 업주들은 처음에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 어떠한 얘기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릴없이 손님만 기다리고 있기가 무료했던 탓인지 기자 주변으로 모여든 업주들은 점차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한 석 달 전인가. 보건소 사람들이 D교회로 교육 나왔을 때 김해에서 에이즈 환자가 도망갔다고 하더니만 그게 솔이 얘기였네.”
“×××(포주 지칭) 지가 나타나서 해명을 해야지 동네를 이 꼴로 만들어 놓고 꼬랑지 감추면 어쩌자는 거야. 하여간 그 집에 있던 ×들 전부 이상한 것들뿐이었어.”
구씨가 여수 윤락가로 오게 된 때는 지난 2000년 10월20일. 가출 이후 부산 구포에서 길을 걷던 그녀에게 신원미상의 50대 남자 B씨가 접근한 것도 그날이었다. 그는 바로 포주 김아무개씨와 ‘거래’를 트고 있던 사람이었다. 결국 그는 스스럼없이 “가출했다”고 밝히는 구씨를 꾀어 여수로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하지만 B씨는 구씨를 소개해주며 받기로 한 소개료 문제로 포주 김씨와 후에 소송을 벌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업주들에 따르면 구씨와 몇 마디만 나눠보면 그녀가 일반인과 다르다는 사실을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일단 그녀를 접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어딘가 나사가 풀린 듯했다”는 것. 이 같은 평을 받기는 그녀가 일하던 업소 ‘○○이네’ 동료 윤락녀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구씨의 포주 김씨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
“우리는 솔이 얼굴을 자주 보지는 못했어. 주변 업소 13곳 가운데 그 가게만 오후에 문을 열었거든. 아기들 얼굴이 안되니까 남들이 문을 안 여는 낮장사만 한 거야.”
업주들에 따르면 여수 윤락가는 크게 ‘업주’와 ‘비업주’ 업소로 나뉜다고 한다. 업주 업소는 3∼5명의 윤락녀를 데리고 직접 운영하는 형태고, 비업주 업소는 윤락녀 없이 업소만 가지고 있는 포주라고 한다. 비업주의 경우 남자 손님을 ‘히빠리’해오면 다른 업주의 아가씨들을 자신의 업소로 데리고 오는 대신 이 과정에서 1만원 안팎의 소개료를 받는다고.
구씨가 일하던 곳은 업주가 운영하는 업소이긴 했지만 ‘수질’면에서 가장 뒤처지는 업소였다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얘기. 이곳 업주들이 억울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또 있다. 그 집만 빼고는 대부분 자발적으로 매주 목요일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는 것.
“그 집도 건강검진에 참가하기는 했는데 이상하게 솔이만 꼭 빠지더라고.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솔이는 빚이 하나도 없었거든.”
이곳 업주들에 따르면 여수 윤락가의 윤락녀들은 대개 소개소를 거쳐 2∼3개월 단위로 선불계약을 해 들어온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윤락녀들은 그만둘 때까지 빚을 지고 있는 데 반해 구씨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
구씨를 데리고 있던 포주 김씨도 그녀에게 건강검진을 몇 차례 요구하기는 했다. 그때마다 구씨는 이런저런 핑계로 건강검진을 기피했고, 업주도 빚없는 그녀에게 최대한 편의를 봐줬다고 한다.
현재 구씨가 일했던 ‘○○이네’라는 업소는 사건이 터진 직후 업주는 물론 남아 있던 윤락녀 2명까지 모두 떠난 상태. 기자가 찾아간 지난 7일 밤부터 8일 오후까지도 파란색 유리문에는 자물쇠만 굳게 채워져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발견한 묘한 사실 한 가지. 여수에는 이미 6개월 전 에이즈 괴담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고 한다. 여수 윤락가 맞은편에 있는 역전파출소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여수 일대를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괴담의 전모는 이렇다.
‘여수 봉산동에 위치한 모 가요주점의 접대부로 일하던 여성이 자신을 거쳐간 한 남자로 인해 에이즈에 감염됐다. 앙심을 품은 이 여자는 복수를 위해 일부러 많은 남성들과 성관계를 맺고 다녔고, 급기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럴 듯하게 들리기도 하는 이 소문은 삽시간에 여수 시내에 파다하게 퍼졌고 급기야 경찰이 사실확인에 나서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헛소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나 유야무야되고 말았지만 새삼 실제로 그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자 경찰관계자들마저 놀라움을 나타내고 있었다.
새벽 1시를 넘어갈 무렵 자리를 역전파출소로 옮겨 사건 이후 상황에 대해 물었다. “별의별 문의전화가 다 옵니다. 그때마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면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합니다. 그 수밖에 더 있습니까. 한 이틀 에이즈 전화만 받다보니 내가 다 에이즈 박사가 되겠다니까.”
허탈하게 웃는 한 경찰관의 손에는 국립보건원에서 발간한 에이즈 관련 백서가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