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부터 스님은 행여 부모 없는 설움을 느낄세라 이들 자매를 애지중지 키워왔다. 하지만 ‘자식과 부모’의 생각이 언제나 같을 수는 없는 법. 자매에게도 혹독한 사춘기가 찾아왔고 이들에게 조용하기만 했던 절 생활은 너무나 갑갑했다.
성장하면서 차츰 스님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이들 쌍둥이 자매는 중학교를 마치면서 결국 차례로 절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하지만 몰래 하산해 마주친 세상은 어린 자매가 꿈꾸던 이상향은 결코 아니었다.
먼저 절을 나간 것은 쌍둥이의 언니 김현주양(가명·19). 고1이 되던 해인 지난 99년 말 가출한 현주양은 줄곧 친구 양정아양(가명·18)과 함께 서울에서 지냈다. 친구와의 동거생활이 1년 넘도록 지속되자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왔던 생활비도 바닥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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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몇 잔 돌자 술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두 소녀의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른 건 당연한 일. 이미 딴 마음을 품고 있던 정씨는 이때쯤 ‘내일부터 일해야 하니 그만 자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현주양과 정아양이 막 잠에 빠져들려는 순간. 살며시 문을 연 채 “따로 할 얘기가 있으니 잠시 따라오라”며 정아양을 지목한 정씨는 그녀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음날 숙취로 묵직한 머리를 흔들며 잠자리를 떨치고 일어난 현주양 앞에는 정아양이 말없이 울먹이고 있었다. 지난 밤 정아양을 데리고 간 정씨가 거의 반강제로 성관계를 요구했었던 것.
둘은 그길로 이런 곳에서 일을 할 수는 없다며 짐을 싸 H다방 숙소를 빠져나왔다. 어젯밤 이미 받아두었던 선불 2백만원이 나중에 엄청난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란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이후에도 한동안 함께 지내던 현주양과 정아양은 지난해 10월께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하고 일단 헤어지게 된다. 현주양의 쌍둥이 동생 현정양(가명)이 산사에서 뛰쳐 나온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절을 벗어난 현정양도 처음에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티켓다방으로 취직하게 된다. 하지만 다방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나오는 것을 되풀이하는 동안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실제로 자신이 쓴 돈은 얼마되지 않아도 화장품값, 방세, 옷값 등이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계산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이렇게 전남 일대의 티켓다방 4곳을 옮겨다니면서 현정양의 빚은 엄청나게 불기 시작했고, 2천만원이란 거금이 빚으로 쌓일 무렵 그녀는 서울의 ‘미아리 텍사스’로 팔려가는 신세로 전락한다. 이때가 지난 4월이었다.
철없는 시절에 절에서 나와 엄청난 일을 겪은 현정양이 윤락가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순간적인 기지 덕분이었다. 미아리로 팔려간 다음날 은행 통장을 개설하자는 포주의 손에 이끌려 윤락업소를 나왔다가 포주가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 빈 택시를 잡아탄 것.
하지만 동생이 구렁텅이를 탈출한 그 즈음 언니의 사정은 더욱 나빠지고 있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나머지 현주양은 다시 전라도 전주의 S다방을 찾아 선불 3백30만원을 받고 일을 하기로 했다.
현주양은 이곳에서 얼마간 일을 해보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진 않았다. 선불금을 받았으니 일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보다 주위의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은 욕망이 더 강했던 것.
또다시 다방을 빠져나온 현주양은 대전으로 거처를 옮겨 PC방에 취직하게 된다. 이곳에서 차근차근 돈을 벌면서 S다방에서 받은 선불금을 갚을 요량이었다.
하지만 불행은 현주양 자신도 모르게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PC방에서 며칠을 보낸 그녀에게 친구로부터 뜬금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광주 사장이라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는데 작년 8월 네가 일하러 왔다가 도망가는 바람에 그 빚이 1천만원이 넘는다더라.”
그때까지만 해도 현주양은 최근의 전주 S다방 일만 생각하고 있었을 뿐 광주 H다방에서 있었던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현주양에게 ‘전주에서 일했던 현주씨가 맞느냐’며 빨간 트레이닝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가 찾아왔을 때 불행은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그 길로 현주양은 이 사내에게 반강제로 이끌려 인근의 S모텔로 갈 수밖에 없었다. 객실에는 얼마 전 자신이 선불금을 ‘땡기고’ 왔던 전주 S다방의 사장 박제황씨(가명·31)와 지난해 8월 친구 정아양에게 몹쓸 짓을 했던 광주 H다방의 정씨가 함께 앉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현주양은 말로만 듣던 ‘신체포기각서’란 것을 써야 했다. “야 이 ××야. 너를 잡으면 죽여버리려고 했어”라며 협박을 하는 정씨와 박씨 앞에서 그녀는 울음마저 떠트릴 수 없었다.
악몽 같은 몇 시간이 지난 다음날. 그들에 의해 부산의 M여관으로 끌려간 현주양 손에는 차용증 한 장이 쥐어졌다. 거기에는 광주 H다방에서 받은 선불 2백만원과 전주 S다방에서 받은 선불금 3백30만원 외에도 ‘올비(결근비)’와 도망다닌 자신을 붙잡는 데 사용한 경비를 합친 3백80만원, 그리고 친구 정아양의 빚 5백만원까지 포함돼 있었다. 모두 합치면 약 1천5백만원.
현주양은 지난달 5일 차용증의 빚 때문에 부산 완월동 윤락가로 팔려갔다. 이때부터 현주양은 졸지에 윤락녀의 삶을 살아야 했다. 가게에서 손님을 데려오면 싫든 좋든 성관계를 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하루에 3명 정도의 손님을 받았지만 이미 치른 빚잔치 때문에 돈이 자신의 손에 쥐어지지는 않았다.
악몽 같은 나날을 보내던 현주양에게 구원의 손길이 찾아온 것은 완월동 생활이 11일째로 접어들던 지난달 15일. 유난히 마음좋아 보이던 손님에게 “제발 나가게만 해달라”며 애원을 했던 것.
천운이었을까. 다행히도 그녀의 처지를 딱하게 생각한 손님은 재치를 발휘해 현주양에게 자유를 안겨주었다.오랜 방황의 시간을 마감한 그녀는 그 길로 자신을 길러준 서울의 모 사찰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걸어 결국 윤락가에 팔려갔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또다른 그녀, 동생 현정양이 기다리고 있었다.